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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범수 Mar 03. 2019

朴대통령과 시진핑 그리고 국가정보원

<정상회담 결과를 평가하는 일은 쉽지 않다. 정상 간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알려지지 않으며, 양 정부가 서명한 서류의 전문도 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언적인 문구와 두리뭉실 넘어가는 기자회견 속 언어만으로 그 의미를 확정하려는 시도 역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래서 해당 국가 언론들은 대체로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모호한 언어나 정황들을 해석하는 경향을 띤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첫 중국 방문 역시 그랬다. 청와대는 매우 생산적이며 실효성 있는 정상회담이었다는 자평을 내놨고, 언론들은 그것을 뒤집어 해석할 만한 별다른 단서를 가지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실패로 돌아간 대중 외교는 그때 첫발을 잘못 내디딘 탓인지 혹은 향후 요동친 동북아 외교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아직도 정확히 알 수 없다. 한 가지 의심스러운 것은 당시 박근혜 정부 외교 참모들이 내놓은 설익은 평가와 자축 분위기가 대통령의 눈과 귀를 멀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그런 일은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지 모른다.>




<아시아경제. 2013년 7월 2일 자.>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 방문 한 번으로 여러 토끼를 잡았다는 긍정적 평가가 많다. '북핵불용(北核不容)'을 공동성명에 명시화 하지 못했다는 논란은 있으나 중국과 북한의 특별한 관계를 고려하면 애당초 무리한 목표였는지 모른다. "대화를 위한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우리 뜻과 달리, 6자 회담 틀에서 대화를 강조하는 중국의 입장을 우리가 어떻게 반영할 지도 중국에서 안고 들어온 숙제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3년 6월 27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사진=청와대


새로 취임한 한중 양 정상 간 신뢰와 친분을 쌓는 작업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비공개 대화는 '까지 않는 이상' 수십 년이 지나야 알 수 있는 일이니 속속들이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최소한 중국 측이 보여준 이례적인 환대, 경호상 배려 등을 고려하면 대체로 그렇게 받아들여진다.


더욱이 중국 서부를 거점으로 하는 양국 간 경제협력 확대, 경협 패러다임의 변화, 통화스왑 만기연장 및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본격화 등 실질적 성과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을 듯하다. 양국 국민이 성숙한 동반자 관계로 발전하기 위한 중요한 초석을 놓은 것도 큰 성과다. 중국 역사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 표명, 중국어 연설, 중국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적절한 인용은 치밀하게 계산된 것으로 보이는 훌륭한 전략이다.


한편 박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들과 달리 상하이가 아닌 시안을 방문했고, 베이징대학이 아닌 칭화대학을 찾아 연설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나름의 이유를 대고 있으나 시진핑 주석의 정치적 고향이며, 모교라는 측면을 고려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대등한 관계라면 '친분 쌓기용(用)' 행보이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굴욕' 아니냐는 건 해석 차이다. 같은 차원에서 중국의 도움 없이는 우리의 안위, 즉 북핵문제를 능동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현실도 '극복 대상' 혹은 '적응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차가 존재한다.


이번 중국 방문의 성과 혹은 일련의 과정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 내릴 몫이다. 후대에 미칠 영향을 회담 당사자들조차 예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삼자 입장에선 무엇보다 평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논란이 있다고 해서 5일밖에 안 된 한ㆍ중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자고 나설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정상회담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그 속에 등장하는 단어, 뉘앙스가 아닌 국가안위 등 국익에 미친 실체적 결과물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내릴 문제다. 굳이 시 수석의 고향과 모교까지 찾아가는 게 배려였느냐 굴욕이었냐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한 '딴지걸기'에 불과하다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8월 26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대선 때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사진=청와대


하지만 국가정보원 선거개입 논란에 대한 대응방식은 정상회담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국가권력이 저지른 부당행위의 결과는 즉각적이며, 뒤늦은 대응은 나쁜 선례를 반드시 만들기 때문이다.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는 해명 정도로 선이 그어질 문제는 아닌 듯하다. 대통령의 납득할 만한 설명과 재발방지책 마련은 설익은 정상회담 자평보다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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