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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범수 Mar 03. 2019

담뱃값 인상과 거위털 뽑는 도리

<2019년 현재 담뱃값은 4500원이다. 2014년에는 2500원이었다. 당시 2000원을 올린다는 계획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발표했다. 담뱃값 즉 그 세금은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한다. 아니 대통령이 '결단'하는 일이다. '증세는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아끼고 아껴 본 다음에 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공약 혹은 원칙은 지켜야겠고, 늘어나는 복지 재원은 마련해야겠고(그것 역시 공약을 지키기 위해), 그래서 박근혜 정부 공무원들은 담배를 희생양으로 골랐다. 그러고 내놓은 해명은 박근혜 정부가 국민을 어떤 수준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아시아경제. 2014년 9월 15일 자.>


담뱃값 인상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발표토록 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한 일이다. 증세 계획을 왜 복지부 장관이 발표하는가. 담배 소비를 줄여 국민건강을 증진시키려는 정책인양 포장하려는 의도가 아니면 무엇인가.


문형표 복지부 장관은 담뱃갑에 '섬뜩한' 사진을 넣는다거나 편의점 담배광고를 금지한다는 등 금연정책도 발표했다. 이것 역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다. 이미 국제 담배규제 기본협약(FCTC)에 다 나와 있던 것들이다. 우리나라에게도 이행 의무가 부과돼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담배가 적게 팔릴까 봐 차일피일 이행을 미뤄왔다.


2014년 9월 11일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담뱃값 인상을 포함한 금연 종합대책을 발표하기에 앞서 권덕철 보건의료정책실장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아시아경제


일례로 담배 포장 및 라벨 규제는 2008년에 실행해야 했던 것인데 무려 7년이나 '지각 이행' 하면서 마치 새로운 정책인양 발표했다. 반면 FCTC 결정 중 상당수를 한국 정부는 여전히 무시하거나 소극적으로 흉내만 내고 있다. 담배회사의 스포츠 마케팅 금지나 담뱃값 인상 등이 그런 것들이다.


담뱃값을 2000원이나 올렸으니 그것은 빼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도 괘씸하다. 왜 하필 2000원일까. 담배는 끊기 어려운 마약이기 때문에 가격이 올라도 웬만해선 소비가 줄지 않는다. 반면 세금 징수액만 늘어난다. 그러나 너무 비싸지면 금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어느 시점에선 총징수액이 감소한다. 2000원보다 더 올리면 그렇게 된다는 조세재정연구원의 연구결과를 정부는 참고한 것이 분명하다. 2000원은 세금이 최대로 늘어나는 한계 인상액이다.


'담뱃값을 올려 금연을 유도하겠다'는 게 아니라 '담배에서 세금을 최대한 뽑아내겠다'는 게 이번 담뱃값 인상의 속내다. 우리와 소득 수준이 비슷한 나라들에 맞춰 6000원 정도 올렸다면 국민 건강을 위한다는 복지부 장관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었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4년 9월 17일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국민들을 헷갈리게 해 놓고 이번엔 "20년간 손대지 않았던 일부 세금을 현실화한다"는 이유를 대며 주민세와 자동차세 등의 인상 계획을 발표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방법에 대해선 불쾌해한다. 담뱃값 인상과 같이 '동의하지만 괘씸하다'는 것이다.


증세가 불가피하다면 정부는 국민들에게 배경과 계획, 대책 등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 뒤 결정해야 한다. 예컨대 과세 형평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며 무슨 순서에 따라 증세가 이루어질 것인지 기본방향을 제시해야 함이 마땅하다.


2013년 8월 조원동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은 기자 브리핑에서 이른바 '거위털 세금 징수' 발언을 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사진=아시아경제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공약을 실천하기 위해선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박 대통령은 "증세 이야기부터 꺼내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도, 도리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여러 번 말했다. 증세를 말하려면 도리를 따져야 하니 증세라 하지 않고 세금을 올리면 도리에 맞는다는 게 이 정부의 생각인가?


조원동 전(前) 청와대 경제수석은 "거위 깃털을 아프지 않게 살짝 뽑는 식으로 세금을 더 거두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란 말을 했다가 호된 질타를 받았다. 담뱃값 인상을 복지부 장관이 발표해 핵심을 가리면 깃털 뽑히는 국민들의 고통이 덜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인가? 그런 것이 아니라면 아예 대놓고 깃털을 뽑아 갈 테니 아프든 말든 알 바 아니란 것인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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