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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범수 Mar 04. 2019

교황이 준 위안과 절망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4달 여가 흐른 2014년 8월, 우리는 깊은 슬픔에 잠겨있었고 그 끝이 어디인지 아무도 가늠할 수 없었다. 그리고 교황이 찾아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딸을 잃은 김영오 씨의 손을 잡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당시 우리가 받은 유일한 위로임과 동시에 처절히 절망적인 장면이었다. 쏟아지는 비판과 호소에도 대통령은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아시아경제. 2014년 8월 18일 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별말을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알 수 있다. 교황의 손을 잡고 머리를 숙인 김영오 씨(고 김유민 양 아버지)가 깊이 위로받고 있음을. 그리고 이 모습을 지켜봤을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 아니 정상적인 우리 모두는 교황으로부터 큰 위안을 얻었음을.


김영오 씨는 “다시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특별법 제정을 도와주시고 기도해 달라”고 교황에게 말했다. 사진=천주교 교황방한위원회


교황이 세월호특별법을 통과시켜 줄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하라고 새누리당 혹은 박근혜 대통령을 설득할 리도 없다. 그럼에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는 교황의 짧은 한 마디, 그리고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에 우리가 감동하는 것은 그것이 진심이기 때문일 것이며, 진심을 알리는 데는 굳이 희생자들을 호명하거나 한 줄기 눈물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왜 우리는 스스로를 위로하지 못하는 것인가. "언제까지 슬퍼만 할 순 없다"고 분연히 일어설 만큼 충분히 울었고 위로받았다고 느끼지 못하는가. 왜 그들은 단식하며 광화문 앞에 노숙해야만 하며, 어째서 우리의 지도자들은 그들을 외면하고 방치하는가.


박 대통령은 국정의 중심을 세월호에서 경제활성화로 완전히 전환시켰다. 당장 이번 주에도 많은 경제 관련 일정들을 소화할 것이다. '경제회복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절박함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은 민생이란 말로 세월호를 덮고 싶어 하는 것이라 의심하고 있다. 이런 의심은 '가해자'인 국가로부터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충분히 위로받지 못했다고 느끼기에 드는 것이다. 


세월호 침몰 및 구조 실패의 원인 그리고 책임소재 규명에 국민들이 집착할수록 현 정부에게 무엇인가 불리한 일이 생길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의심도 분명히 존재한다. 세월호특별법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포함시키는 데 집권여당이 반대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라고 많은 사람들은 느낀다. 이것이 지나친 생각이라 탓하기에 앞서, 왜 많은 국민들이 이 같은 비관과 음모론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힘겹게 할 수밖에 없는지, 이 나라의 지도자들은 깊이 생각해야 한다. 


교황은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멀리하고 싶은 유혹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에게 도움을 간청하는 사람들을 밀쳐내지 말라"고 했다. 경제활성화도, 관피아 척결도, 국가혁신도 여기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더 많은 경제회의를 주재하고 경기부양 대책을 쏟아낸다고 해서 세월호 정국이 자동으로 종료되는 것은 아니다.


더 늦기 전에 박 대통령은 광화문 광장으로 가야 한다. 세월호 유족 농성 천막은 청와대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 대통령의 최대 임무는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왜 단식하는 그들을 내버려 두는가. 15일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하기 위해 바로 옆 세종문화회관에도 가지 않았던가. 왜 차에서 내려 그들의 손을 잡지 않고 그대로 지나치는가. 가서 가진 만큼의 진심을 보이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 그런다고 해서 경제의 불씨가 꺼지는 것도 아니고 세월호특별법에 관해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것을 모두 수용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먼 나라에서 온 종교지도자의 두 손에 머리를 묻고 흐느껴야만 했던 우리는 위로받으면서 동시에 절망한다. 치유되지 못한 슬픔이 분노로 바뀌고 있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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