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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범수 Mar 06. 2019

아베가 내민 손, 어떻게 잡을 것인가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일본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 반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박 전 대통령을 만나러 청와대까지 직접 찾아오기도 했다.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기 전까진 일본에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는 원칙을 박 전 대통령은 강조했다. 그러나 남북문제를 풀기 위해서라도, 중국에 지나치게 경도된 것 아니냐는 미국의 우려를 씻기 위해서라도, 과거사 문제에 '당차게' 임하는 것과 외교안보 전략은 분리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많이 나왔었다. 결과적으로 박 전 대통령은 아베 일본 총리로 하여금 무릎을 꿇게 하지도,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아내지도, 심지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마음을 위로해주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아시아경제. 2013년 10월 17일 자.>

 

옆자리 자신을 외면한 박근혜 대통령을 바라보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이 스쳤을까. 올바른 역사인식의 중요성을 절감했을까. 이번 주로 예정된 신사 참배를 취소하기로 결심한 중대한 '이유'로 작용했을까.


일견 굴욕적인 느낌을 감수하며 아베 총리는 왜 '박 대통령과 대화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고 있는가. 박 대통령이 브루나이 아세안+3(한ㆍ중ㆍ일) 정상회의에서 아베 총리의 손을 '잡을까 말까' 주저하는 듯 보인 그 사진이 찍힌 날, 현장에 있던 고위 관료에게 물었다.


아베 일본총리가 손을 내밀자 박근혜 대통령은 주저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당시 어색했던 한일관계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잠시 후 두 정상은 손을 잡고 촬영에 임했다. 사진=연합뉴스


"일본은 국제 정치 무대에서 리더십을 잡고 싶어 한다. UN과 같은 곳에서 말이다. 그런 일본이 주변국과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큰 단점으로 작용한다. 일본은 그 점을 우려하는 것이다."


그렇게 단순한 문제라면 해법은 간단하다. 계속 외면하면 된다. 아쉬운 쪽은 일본이니 '올바른 역사인식' 혹은 '진정성 있는 사죄'를 하게 될 테니까. 마치 비슷한 방식의 전략이 북한을 '굴복시킨 것처럼' 보였듯.


일본 언론은 아베 총리의 행보를 '전략적 외교'라고 부른다. 아베의 전략적 외교는 특히 영토나 역사 문제에 있어서 '타협'하지 않는 것이 주 내용이라고 한다. 주로 내치에 집중하는 일본 총리의 임기 첫 해, 한 달에 한 번꼴로 해외순방을 떠나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박 대통령뿐 아니라 아베 총리 역시 자신만의 '원칙'을 고수하되, 실리가 걸린 문제라면 대화하고 협상하겠단 투트랙(two-track) 전술을 펼치는 것이다.


수렁에 빠진 한ㆍ일 관계는 우리에게 어떤 이익 혹은 불이익을 가져다줄 것인가. 한ㆍ일 문제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현지 언론을 통해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놓았다. 박 대통령의 '냉정함'은 한국이 어렵게 쌓아온 국제 사회에서의 긍정적 이미지에 손상을 줄 수 있다고.


일본과 사이가 멀어질수록 한ㆍ중 연대는 강해지며, 이는 북핵이나 경제 문제를 풀어가는 데 한국에게 도움이 된다. 반면 일본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미국과 협상하는 데는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미 많은 미국 지도자들은 한국의 대일본 외교 태도가 적합하지 않은 수준에 이르렀다는 시각을 갖기 시작했다고 이 전문가는 전했다. 우리는 원자력협정, 방위비 분담, 전작권 전환 등 민감한 분야에서 미국과 만나야 한다.


위 분석이 일본 입장에서 쓰인 것이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일본 관계에서 비롯된 불필요한 외교적 비용을 떠안는 일만은 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청와대는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국내 여론이 박 대통령의 원칙 고수를 힘겹게 만들 것이라 반발하겠지만, 아베 총리와의 줄타기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국민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제회의 옆자리 이웃나라 정상을 외면하는 우리 대통령의 '강단'에 통쾌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그 상대가 우리와의 외교ㆍ경제적 이해관계에서 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나라의 정상이란 사실은 엄연한 현실이다. 박 대통령이 주창한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라도 일본과 협력은 피할 수 없다. 원칙은 지켜야 하되, 만남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신뢰는 외교의 기본이지만 대화를 통해서만 싹 틔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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