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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Hoult Nov 18. 2015

뉴 오더의 전신 조이 디비전, 이안 커티스를 기억하며

포스트 펑크 록 밴드 조이 디비전(Joy Division)


영국 인디 씬과 브릿팝을 말할 때 중요하게 거론되는 밴드는 스미스(The Smiths)와 뉴 오더(New Order)입니다. 뉴 오더는 이런저런 이유로 해체 위기가 있었지만 재결성하였고, 신스팝(Synthpop)의 거물 그룹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뉴 오더 하면 음악 색깔은 다르지만 조이 디비전 얘기가 나오기 마련인데 조이 디비전의 멤버였던 버나드 섬너, 스티븐 모리스, 피터 훅(뉴 오더 2007년 탈퇴)이 조이 디비전 해체 후 모리스의  여자 친구 키보디스트 질리언 길버트(Gillian Gilbert)를 영입해 뉴 오더를 결성합니다.


포스트 펑크(Post-punk)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음악을 접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장르가 참 많기도 하지요. 두드러지게 특징이 잡혀있기는 하나 한 장르에서 파생된 것도 많아서 사실 듣다 보면 그게 그거 같고 구분이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포스트 펑크에서 파생된 장르를 살펴보면, 고딕 락(Gothic rock, 혹은 고스 Goth), 다크웨이브(Darkwave), 슈게이징(Shoegazing), 인더스트리얼 음악(Industrial Music), 신스팝(Synthpop) 등이 있습니다. 대충 어떤 음악이구나 라는 감이 오는지요? 


먼저 펑크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 제대로 알려면 시대적 환경과 분위기부터 파악해야 하지만 태어나기 훨씬 전의 일들이라 이론에 의지해 써야 함을 미리 밝혀둡니당~ ^^; - 70년대 중, 후반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 정확히 말해 1977년)가 펑크 록의 선봉장으로 나서게 되지요. 싱글, 컴필, 라이브 앨범 외에 정규 앨범이 달랑 한 장인 참 특이한 밴드입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강한 인상으로 남은 건 다 이유가 있겠지요. 


밴드 명도 그렇고 실제로 기행을 일삼았는데, 1977년 7월 15일 일명 '템즈강 대소동'

무정부주의를 전면에 내걸었던 그들은 여왕 즉위 25주년을 맞이해 소속사에서 선상 파티를 기획하였다고 합니다. 배(퀸 엘리자베스호)가 국회의사당 앞에 도착하자 'God Save the Queen' - 이들의 싱글 제목이기도 합니다. - 을 외치고 의원들을 향해 'Anarchy in the U.K.'라는 곡을 열창(?)하여 모두 경찰에 연행되었다는..... ;;;

당시 영국 정부의 정책 실패로 청년 실업 등 사회 문제가 말이 아니었는데, 이에 대한 분노를 표출할 만한 적당한 것이 바로 펑크였지요. 그 중심에 섹스 피스톨즈가 있었던 거고요.


말이 나왔으니 재미있는 일화 하나를 더 소개하겠습니다. 섹스 피스톨즈는 베이시스트 글렌 매틀록(Glen Matlock)을 77년에 해고하였는데, 이유가 참... 훌륭한 연주와 비틀스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새로 영입한 시드 비셔스(Sid Vicious)는 연주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고 하지요... 헐... 시드와 관련된 엽기적인 사건이 있는데 1986년 영화 'Sid and Nancy'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좌절과 분노를 대변한 펑크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엄청난 바람이 불었지만, 역시 변질(상업적)이라는 어쩔 수 없는 순서를 밟게 되지요. 80년대로 넘어가면서 펑크에서 파생된 여러 장르와 디스코가 등장해 쇠퇴기를 걷게 되는데, 이렇듯 뉴웨이브로 넘어가는 시기에 등장한 것이 포스트 펑크입니다. 비상업적이지만 강경한 음악은 아니고 실험적인 면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렸지만, 포스트 펑크는 장르라기보다 좀 더 포괄적인 의미로 쓰입니다. 현재는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밴드가 꽤 되지요.


아휴~ 말이 길어졌는데요, 그럼 포스트 펑크의 시조 밴드인 조이 디비전을 소개합니다!! ^^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은 영국 맨체스터 출신의 포스트 펑크 록 밴드로, 1976년 맨체스터에서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의 공연을 보던 1956년생 버나드 섬너(Bernard Edward Sumner/ 기타, 키보드)와 동갑 피터 훅(Peter Hook/ 베이스)이 만나 밴드 스티프 키튼스(Stiff Kittens)를 결성하고, 이후 같은 나이인 이안 커티스(Ian Kevin Curtis/ 보컬)가 합류해 밴드 명을 바르샤바(Warsaw)로 바꾸어 77년에 데뷔 공연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57년생 스티브 모리스(Stephen Paul David Morris/ 드럼)가 들어오면서 라인업을 완성하고 'Warsaw'와 비슷한 이름의 밴드가 있어서 다시 조이 디비전으로 이름을 바꿉니다.


1979년 데뷔 앨범을 발매하였지만 정규 앨범이 단 두 장입니다. 1980년 5월 보컬 이안 커티스가 우울증과 지병(간질을 앓고 있었습니다.)에 시달리다 사망(자살)합니다. 당시 나이가 겨우 23세였는데 말이죠. 23세라니... 얼마나 할 일이 많은 나이인데 그런 선택을... 이미 그는 75년에 고교 친구인 데보라 우드러프(Deborah Woodruff)와 결혼하여 79년에 딸 나탈리(Natalie)를 얻은 한 가정의 가장이었죠.


영화 '컨트롤' 

이안 커티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있는데요. 

U2, 디페쉬 모드(Depeche Mode), 콜드플레이(Coldplay) 등 수많은 뮤비를 연출한 안톤 코르빈(Anton Corbijn) 감독의 컨트롤(Control, 2007)입니다. 안톤 코르빈 감독이 70년대 중반 런던에서 사진작가 활동을 할 때에 조이 디비전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죠. 


제목은 조이 디비전의 노래 'She's Lost

Control'에서 따온 것입니다. 부인인 데보라의 책을 토대로 하여 만들었다고 하니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것이겠군요. 주인공역을 맡은 샘 라일리(Sam Riley)가 이안 커티스의 강렬한 퍼포먼스를 재현하는데, 내용과 상관없이 공연을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2007년 영화 컨트롤 사운드 트랙으로 'Shadowplay'가 흐르는데 킬러스(The Killers)가 커버하였죠. 이안 커티스가 쓴 곡이고요(조이 디비전의 가사는 모두 이안 커티스가 썼습니다.), 가사 중 In the shadowplay, acting out your own death, knowing no more~,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가사입니다. 드러머 스티브 모리스는 이안이 쓴 가사를 그가 사망 후에 보면서 가사 속에 숨겨진 메시지를 미처 알지 못했다며 후회를 했다고 합니다.




1978년 EP 앨범 'An Ideal for Living'으로 데뷔하였는데, 소속사가 분명치 않습니다. 이듬해 정규 1집부터 팩토리 레코드(Factory Records)에서 발매하게 되는데, 팩토리 레코드는 맨체스터 기반의 인디 레이블로 이들을 눈여겨보았던 토니 윌슨(Tony Wilson)과 공동 창업자 앨란 에라스무스(Alan Erasmus), 프로듀서 마틴 해넷(Tony Wilson), 그래픽 디자이너 피터 새빌(Peter Saville)이 모여 만든 레코드사입니다. 


팩토리 레코드는 다른 레코드사와 아주 다른 스타일이죠. 비주류를 주류로 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사운드를 만들어냈으며, 클럽 운영 그리고 'FAC numbers'라는 카탈로그 시스템을 도입, 음악은 물론이고 예술 작품에도 번호를 매깁니다.


참고 Factory Records discography 

http://en.wikipedia.org/wiki/Factory_Records_catalogue


정규 1, 2집 외에 싱글은 앨범의 완성도를 위해 수록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한국에서 정발 되지 않아 음반을 구하기 어렵고, 라이브 혹은 컴필 앨범은 외국에도 흔치가 않더라고요.


음악을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결코 편안한 음악은 아닙니다. 일단 조악한 사운드에 놀라실 것이고, 듣기에 따라선 기분 나쁜(?) 목소리에 정지 버튼을 누르시는 분도 많을 거고요. 저도 처음 들었을 땐... 조금 무, 무서운데... 했습니다. ㅎㅎ 쉽게 친해질 수는 없겠지만, 조이 디비전 아니 이안 커티스의 음악을 들어보시지요.



어떤 예술가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면 아무래도 많은 관심이 쏠리기 마련이고, 더욱 조명이 되곤 하지요. 사망 후 명작이 되는 예도 종종 있고요. 자연스럽게 일생을 살았다면 그만큼의 관심을 받았을까요? 아니면 생각지 못하게 떠났기 때문에 부풀려지는 것인지... 음...


조이 디비전 팬인 친구와 얘길 나누다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이안 커티스는 죽음을 동경했다!? 그는 우울하죠. 염세적입니다. 그의 목소리와 가사를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또 10대 시절부터 데이빗 보위(David Bowie)를 동경했지만, 죽지(?) 않은 그를 싫어했다고 전해지고요, 보컬이 묘하게 닮은 27세에 요절한 짐 모리슨을 존경했다고 합니다.


조이 디비전의 두 개의 앨범 모두 명반이기도 하지만 전설로 남을 수 있었던 건 이안 커티스의 강렬한 삶이 한몫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음악적 성과로만 본다면 조이 디비전을 뛰어넘은 뉴 오더가 살아있으니까요. 비극은 또 다른 기회를 만드는 걸까요?


오늘은 이 말이 딱이지 않나 싶네요. 

Oldies But Goo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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