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포큐파인 트리(Porcupine Tree)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 줄여서 prog rock 혹은 prog) 밴드 하면 떠오르는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킹 크림슨(King Crimson), 제네시스(Genesis), 예스(Yes),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merson, Lake & Palmer, ELP)가 음악성으로나 흥행성에서 모두 성공한 대표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입니다.
현대 프로그레시브 록 계에 미치는 대단한 영향력과 천재성에도 불구 우리나라에서 스티븐 윌슨의 위치는 그다지 많이 알려진 편은 아닌 듯싶습니다. 친구들 얘길 들어봐도 카멜(Camel)이나 러시(Rush), 파우스트(Faust)는 즐겨 듣지만 포큐파인 트리를 듣는 친구는 드물더라고요.
먼저 프로그레시브 록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프로그레시브, 말 그대로 '진보적인' 록을 일컫는 록의 장르 중 하나입니다. '진보적'이라고 해서 꼭 최첨단 기술력과 악기를 도입해 새로운 시대에 맞게 창작한다는 의미가 아닌 전통 악기를 도입한다거나 관현악, 심지어 오케스트라와의 협업으로 클래식의 요소를 기본 형식으로 삼는 밴드가 많아 '진보' 보다는 오히려 '회귀'이므로 새로운 시도나 실험이라고 보시는 것이 맞습니다. 이러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프로그레시브 록의 발생은 1960년대인데, 당대에는 '진보적'이었을지 모르겠으나 시대의 흐름을 늘 앞서갈 수는 없는 것이니 '프로그레시브 록적이다'라는 개념으로 이해하시는 것이 편할 것 같습니다. 클래식 요소의 도입이나 복잡한 구성과 긴 길이의 곡 구성으로 하나의 주제 안에서 만들어지는, 이른바 콘셉트 앨범을 지향하는 이유로 뭐라 딱 정의하기 어려운 아트 록(Art Rock)과 자주 혼동되기도 합니다.
프로그레시브 록의 태동은 60년대 말, 록이 가장 큰 발전을 이루었을 시기에 영국에서 시작됩니다. 이전 게시글에도 잠시 언급한 바 있지만 수많은 천재가 등장하고 또 사라지던 60년대 말, 미국은 2, 30대를 주류로 히피 문화가 급속도로 퍼지는 상황이었고, 주변 유럽 국보다 훨씬 경제 성장이 느렸던 영국은 파운드 하락에 따른 인플레이션의 지속과 연이어 실패하는 정부의 정책으로 큰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젊은이들의 목소리와 갈망이 뜨거웠던 시기인데, 이들의 이상은 곧바로 예술적 창의력이 되어 과거의 형식에서 완전히 탈피한 형식의 자유로운 록음악으로 성장을 거듭합니다.
비틀스(The Beatles)는 공연을 중단하고 새로운 사운드 창조에 집중하였고, 하드 록 그룹 후(The Who)는 최초로 오페라를 차용하였으며, 롤링스톤즈(The Rolling Stones)는 특유의 록 스타일에 여러 시도를 함으로써 팬들에게 입지를 굳혔고,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전신 야드버즈(Yardbirds) 등의 록 또한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었습니다.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들의 공통점은 새롭고 독창적인 음악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가짐이었지요. 여러 시도와 실험 가운데 이전의 록과는 전혀 다른 프로그레시브 록이 탄생합니다.
비틀스의 명반 중 하나인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1967)가 장르의 탄생에 일조하였고, 역사상 가장 훌륭한 곡이라는 프로콜 하럼(Procol Harum)의 1967년 발표한 싱글 'A Whiter Shade Of Pale', 역시 같은 해에 발표한 무디 블루스(The Moody Blues)의 싱글 'Nights In White Satin'이 초기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간주됩니다.
활발하게 확산되던 장르는 70년대 중후반으로 넘어오면서 짧고 강력하게 불어 온 펑크의 바람과 창작력의 한계 그리고 거대 미디어 그룹의 등장으로 복잡한 음악보다는 쉽고 대중적인 음악에 주력해 쇠퇴기를 걷게 됩니다. 이후 마릴리온(Marillion)을 위시한 팔라스(Pallas), 펜드래곤(Pendragon) 등이 네오 프로그레시브 록의 시대를 열지만 곡을 만드는 능력이나 연주 실력이 탁월함에도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프로그레시브 록은 단순히 테크닉만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있나 봅니다. 혹자는 '진보적인 록'이 아닌 '정체된(전성기 때) 록'이다.라고 하더라고요.
자, 그럼 한때 제가 좀비처럼 듣고 다니던 밴드 포큐파인 트리를 소개합니다! ^^
위에 간단하게 소개한 바와 같이 스티븐 윌슨(Steven Wilson)이 주축이 되어 리처드 바르비에르(Richard Barbieri, 키보드), 콜린 에드윈(Colin Edwin, 베이스), 개빈 해리슨(Gavin Harrison, 드럼 - 2002년부터, 이전에 Chris Maitland)으로 구성되었는데, 스티븐 윌슨이 85년부터 포큐파인 트리라는 이름으로 데모 테이프를 자체 제작하였고 93년에 라인업을 갖추게 됩니다.
모던 사이키델릭 음악을 주로 다루는 잡지인 프릭비트(Freakbeat)의 발행인이었던 리처드 앨런(Richard Allen)의 레이블 델레리움(Delerium Records)에서 원맨 밴드 형식으로 데뷔 앨범 On the Sunday of Life... (1992)를 발매합니다. 86년부터 90년까지 데모로 만들었던 노래 총 18곡을 담아 인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합니다. 이듬해 라인업을 구성하여 4인조로 첫 작품이자 두 번째 앨범 Up the Downstair (1993)을 발매해 '1993년 최고의 앨범이자 사이키델릭의 명반'이라는 찬사를 받습니다. -사이키델릭 록은 프로그레시브 록의 직계 선배 격입니다.- 2년 후 이들의 정체성을 확립한 명반 세 번째 앨범 The Sky Moves Sideways (1995)를 발매하는데, 장장 18분 37초의 'The Sky Moves Sideways'는 프로그레시브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3집 발매 후 이듬해 발매한 4집 앨범 Signify (1996)는 프로그레시브와 모던 록을 결합해 대중적으로도 인정받은 앨범이고, 국내에 라이선스 되어 첫 선을 보였던 사이키델릭과 80년대 팝을 아우르며 역시 실험적 시도를 마다하지 않은 5집 앨범 Stupid Dream (1999), 같은 해에 발매된 라디오헤드(Radiohead)의 네 번째 앨범 Kid A (2000)와 종종 비교가 되곤 하는 이들의 6집 앨범 Lightbulb Sun (2000)은 전작보다 대중적이며 진보적 사운드와 아름다운 선율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2002년에 발매한 일곱 번째 앨범 In Absentia는 프로그레시브 록 마니아들이 가장 지지하는 앨범이라고 합니다. 스웨덴의 프로그레시브 데스 메탈(Progressive death metal) 밴드 오페스(Opeth) 앨범을 프로듀싱 하였는데 그 영향으로 묵직한 사운드와 기존의 사이키델릭, 팝록을 적절하게 섞어 팬들과 평단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었습니다. 여덟 번째 앨범 Deadwing (2005)은 Opeth의 보컬리스트 미카엘 아커펠트(Mikael Akerfeldt)가 다섯 곡에 백킹 보컬로 참여해 보다 박진감 넘치는 사운드로 채웠습니다. 아홉 번째 Fear of a Blank Planet (2007)는 음악 잡지 클래식 록 매거진(Classic Rock Magazine)이 2005년 최고의 앨범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열 번째 앨범인 The Incident (2009)입니다.
2개의 CD로 구성되어 있고 전작들에서도 볼 수 있었던 형식의 전곡이 하나의 테마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싱글 음원 시장에서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임에도 여전히, 꾸준히 콘셉트 앨범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포큐파인 트리를 가장 많이 수식하는 말은 '뉴 핑크 플로이드'인데 - 핑크 플로이드, 킹 크림슨, 예스 등의 색채가 짙게 배어있지만 정작 스티븐 윌슨은 이러한 평가를 아주 못마땅해한다고 하지요 - 어릴 적 아버지에게 처음 받았던 선물이 바로 핑크 플로이드의 여덟 번째 앨범 The Dark Side of the Moon (1973)이라고 하니 이해가 가는 부분입니다. 10집 앨범을 끝으로 포큐파인 트리 활동은 잠시 중단한 상태이고, 스티븐 윌슨이 이끄는 서브 밴드도 많을뿐더러 자신의 솔로 커리어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어 해체 이야기는 없었지만 다시 모여 음악을 할지는 미지수입니다.
스티븐 윌슨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면, 1967년 생으로 밴드 포큐파인 트리 외에 많은 프로젝트 밴드를 거느리고 있는데, 그중 대표적 밴드가 포큐파인 트리이고 1987년, 싱어송라이터 팀 보네스(Tim Bowness)와 2인 체제의 프로젝트 밴드 No-Man에서 현재까지 활동 중입니다. 노-맨의 음악은 포큐파인 트리보다 편안하게(쉽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니 아트 록이나 드림 팝을 좋아하시는 분께 추천드립니다.
솔로 활동으로는 포큐파인 트리의 개빈 해리슨, 킹 크림슨의 토니 레빈(Tony Levin), 드림 시어터의 조단 루데즈(Jordan Rudess) 등이 참여한 첫 솔로작 Insurgentes (2008)을 시작으로 제네시스의 스티브 해킷(Steve Hackett), 킹 크림슨의 팻 매스텔로토(Pat Mastelotto), 뉴 웨이브 밴드 카차구구의 닉 베그스(Nick Beggs) 등의 거장이 참여한 두 번째 솔로 앨범 Grace for Drowning (2011), 비틀스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와 핑크 플로이드의 The Dark Side of the Moon 등의 앨범을 제작한 명실공히 최고의 엔지니어 알란 파슨스(Alan Parsons)와 공동 제작한 솔로 3집 The Raven That Refused to Sing (And Other Stories) (2013)은 명반 대열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지난 2015년 네 번째 솔로 앨범 Hand. Cannot. Erase. 는 조이스 캐롤 빈센트(Joyce Carol Vincent, 1965. 10. 15 – 2003. 12. 11)라는 여인의 고독사를 테마로 한 콘셉트 앨범입니다.
자택에서 사망한 그녀의 시신이 3년 동안이나 방치되었고, 이 때문에 사인조차 밝히지 못해 적잖은 사회적 파장을 가져온 사건으로 사회적 단절에 대해 다소 무겁고 진지하게 풀어놓았습니다. 프로그레시브 록 음악가로서 스티븐 윌슨의 역량이 고스란히 담긴 앨범입니다.
프로그레시브 록은 단연 영국이 강세였고, 독일(크라우트 록)과 이탈리아, 프랑스까지 흐름이 이어졌습니다. 프로그레시브가 자리 잡게 된 배경으로 클래식을 꼽을 수 있는데, 전통적으로 클래식 문화가 강한 유럽 국가 중심의 조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미국에도 캔자스(Kansas)를 중심으로 애매하기는 하지만 프랭크 자파(Frank Zappa 짬뽕음악?), TOOL 등이 이름을 떨치고 있습니다. 진보적인 록이라는 유럽 국가의 인식과는 달리 청년들의 저항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록에 어떻게 클래식을 도입할 수 있느냐의 이유로 미국에서는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는 비운의 프로그레시브 록이 되어버렸지요.
여타 장르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많지만 프로그레시브 록은 정말 극강인 것 같습니다. '본좌' 불리는 밴드의 음악은 따로 용어를 만들어야 할 만큼 고유의 사운드와 분위기가 뚜렷하기도 하고, 프로그레시브 록의 세계는 우주와 같다고 하잖아요. 그리고 잊을 만하면 불붙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범주 논쟁. 어디까지가 프로그레시브 록이냐, 아트 록이 프로그레시브 록에 속하느냐, 아님 반대냐... 과연 결론이 나기는 할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feat. 김상중아저씨)
친구와 음악 장르에 대해 이야길 나누다가 점점 복잡해지자 대뜸, 됐고! 잘 모르면 다 얼터너티브라고 우기면 돼! 아니 이런 명쾌한 답변이! 장르가 아님에도 너바나의 영향으로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얼터너티브라니!!!
얼터너티브 또한 논쟁거리가 만만치 않은 건 사실이잖아요. 씁쓸함이 맴돌았지만 이제는 주류가 되어버렸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음악은 지식이 아닌 느낌이니까 여러분이 좋아하는 곡이 바로 명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