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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Hoult Feb 09. 2016

또 한 명의 영국 여왕, 록 밴드 퀸(Queen)

나의 록 음악 입문, 그대는 퀸!


밴드 퀸은 록을 팝의 반열에 올려놓아 가장 대중적인 록 음악을 선보인 장본인이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니, 지금도 여전히 그들의 음악은 건재합니다.


구성원으로는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보컬, 1946∼1991), 브라이언 메이(Brian May, 기타, 1947∼), 존 디콘(John Deacon, 베이스, 1951∼), 로저 테일러(Roger Taylor, 드럼, 1949∼)이고 1970년 - 공식적인 결성 시기는 존 디콘이 합류한 1971년 - 런던에서 결성하였습니다.

우선 프레디 머큐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946년생으로 본명은 파르크 불사라(Farookh Bulsara)이고, 탄자니아 자치령 잔지바르(Zanzibar)에서 출생하였습니다. - 잔지바르는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963년 독립 - 양친 모두 인도인(파시계 인도인)이고 불사라 또한 고교시절까지 인도 뭄바라에서 학교를 다녔으니 아시아인입니다. 17세에 잔지바르에서 일어난 혁명을 피해 영국으로 이주, 일링 대학(Ealing Art College)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인도에  기숙학교로 유학을 갈 만큼 집안이 넉넉했지만 급하게 쫓겨나다시피 영국으로 이주하는 바람에 사정이 나빠지자 프레디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도왔는데, 함께 일하는 주위 동료들에게 자신이 유명한 뮤지션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미 그때 자신의 미래를 예견했던 걸까요? 이후 밴드 활동을 잠깐씩 하다가 유년 시절 파르크 발음이 어려워 애칭으로 쓴 프레디와 그리스 신화 속 전령의 신인 헤르메스(Hermes)에서 따온 머큐리를 조합하여  프레디 머큐리로 개명하였는데, 퀸의 되기 전 어린 시절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무척 싫어했습니다. 프레디가 에이즈에 시달렸던 것도 사망 하루 전날 사실을 밝힐 정도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심지어 함께해 온 멤버들에게 조차 오랜 시간을 숨겼다는 건 많이 알려진 사실이고요.

학창 시절의 프레디 머큐리 (한 번에 찾겠어요!)


so what?

프레디 머큐리의 과도한 치장과 도저히 이해불가 난해한 의상으로 수년간 옷 못 입는 아티스트 1위의 영예(?)를 안았고, 외모 역시 세간에 화제를 모았습니다. 출중해서가 아닌 가장 입이 많이 튀어나온 보컬리스트 혹은 그 외모에 학사출신이라는 것까지 화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보컬리스트로서의 위엄과 천재적인 재능은 누구도 부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참고로, 당시 프레디 머큐리는 일링 예술 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 학위를, 브라이언 메이는 임페리얼 대학 (Imperial College London)에서 천문학 박사과정을, 로저 테일러는 의대 출신으로 치의학을 전공했고, 존 디콘은 2집 때까지 중학교 교사와 병행하였습니다.



스마일 시절의 브라이언 메이, 팀 스타펠, 로저 테일러

퀸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아마추어 밴드 스마일(Smile)을 임페리얼 대학의 학생이었던 브라이언 메이와 팀 스타펠(Tim Staffell)이 1968년에 만들었고, 광고를 통해 드러머 로저 테일러가 합류해 스쿨 밴드였지만 탄탄한 실력을 인정받아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등과 같은 유명 뮤지션의 무대에 서기도 했습니다. 얼마 후 머큐리 레코드(Mercury Records)와 계약하여 음반 작업에 들어갑니다. 1969년 팀 스타펠은 미술을 전공하던 친구 프레디를 밴드에 소개하였고, 정식 음반 발매에 앞서 내어놓은 싱글의 반응이 미미하자 팀 스타펠은 밴드 스마일이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여 탈퇴를 선언합니다. 팀 스타펠 탈퇴 후 머큐리 레코드마저 손을 놓아버리자 프레디를 정식으로 영입하여 밴드 명을 퀸으로 바꿉니다. 그리고 1971년 몇 번의 베이스 주자 교체 끝에 존 디콘이 들어와 드디어 전설의 라인업을 완성합니다.


순서대로, 브라이언 메이 - 프레디 머큐리 - 존 디콘 - 로저 테일러


1집 Queen (1973)입니다.


 위에서 언급하였지만, 밴드 스마일이 1969년 머큐리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고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1970년 해산합니다. 프레디 머큐리의 합류로 퀸이 탄생하고 존 디콘이 마지막으로 합류하여 대망의 첫 앨범을 공개하는데 정통 하드 록의 레드 제플린과 프로그레시브 록의 핑크 플로이드 사이에서 데뷔 당시에는 위치가 분명치 않았으며, 하드 록과 글램 록의 성격을 띤 이들의 음악은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으나 예외적으로 일본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었습니다. ('Keep Yourself Alive'는 일본 Greatest Hit에 올렸다고.) 이를 계기로 퀸은 특히 일본에서 꾸준한 지지를 받게 되지요. 


첫 앨범은 퀸 특유의 음악 색깔이 부족한 것을 느낄 수 있는데, 밴드 스마일 시절에 만들었던 곡을 넣었고 프레디 머큐리 역시 퀸을 만들기 전 아마추어 밴드에서 작곡한 곡을 수록하였기 때문입니다. 1번 트랙 'Keep Yourself Alive'가 먼저 화제를 모은 후 뒤늦게  인정받은 3번 트랙 'Great King Rat'과 프레디가 합류 전 만든 5번 트랙 'Liar'는 훗날 퀸의 상징과도 같은 곡 'Bohemian Rhapsody'의 서곡 역할을 합니다    


  

2집 Queen II (1974)입니다. 


데뷔 앨범은 평단과 마니아 층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냈으나 대중적으로 그리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면 2집부터 퀸의 저력이 서서히 나타납니다. 2집은 메가 히트곡은 없지만 퀸의 팬이라면 꼭 들어보아야 할 앨범입니다. 꼭! 데뷔 앨범 때부터 언론과의 갈등이 있었는데, 확실한 색깔이 부족했던 퀸의 음악을 '글램 록의 찌꺼기'라며 혹평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이 앨범은 White Side와 Black Side로 나누고 수록곡도 White Side엔 'White Queen'을 Black Side엔 'The March Of The Black Queen'을 배치했습니다. 전작에 연주곡이었던 마지막 트랙 'Seven Seas of Rhye'를 가져와 가사를 붙이고 보완하여 최초의 히트곡을 배출합니다. 건즈 앤 로지즈의 액슬 로즈가 '무덤까지 가지고 가고 싶은 앨범'이라고 극찬한 앨범으로 유명하며 퀸의 처음이자 막지막 콘셉트 앨범입니다.  

The March Of The Black Queen




3집 Sheer Heart Attack (1974)입니다.


'퀸'이라는 밴드를 세계적으로 알리게 되는 바로 그 앨범입니다. 2집 앨범과 같은 해에 발매한 3집 앨범은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앨범인데, 미국 시장에 퀸을 알리고 일본 첫 공연을 성황리에 마치게 되지요. 


2집 앨범 이후 브라이언 메이의 건강이 안 좋아져 어려움을 겪었지만, 첫 싱글 'Killer Queen'이 영국 차트 2위에 오르며 상업적 성공도 함께  가져다줍니다. 이미 이전부터 평단과 사이가 벌어졌는데 음악적, 상업적 성공에도 불구 평단의 껌이 된 앨범입니다. 이 앨범 덕분에 메이저로 떠오르는 계기가 되었고 숨어있는 명곡이 많아 가치가 높은 작품입니다.



4집 A Night At The Opera (1975)입니다.


대중적으로나 음악적으로 퀸의 최고의 작품이자 역사상 명반 중 하나로 손꼽히는 앨범입니다. 

'Bohemian Rhapsody', 'Love Of My Life', 'You're My Best Friend' 등... 어떤 말로도 수식이 불가능한 곡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고, 특히 세기의 명곡 'Bohemian Rhapsody'는 영국 싱글 차트에 9주 동안이나 정상을 지켰으며 퀸을 전혀 모른다고 해도 이 4집 앨범 하나면 모든 것이 설명이 됩니다. 들어보면 압니다. 진짜로.


하드 록 성향의 'Death on Two Legs'로 앨범의 시작을 알리고 - 나중에야 가사를 이해했습니다. 전 매니저 노먼 셰필드(Norman Sheffield)야 빅엿을 받아랏! 의 내용이라는 걸 - 귀엽고 발랄한 2번 트랙 'Lazing On A Sunday Afternoon', 공연에서 프레디가 유일하게 연주에만 참여하는 3번 트랙 'I'm in Love with My Car', 널리 알려진 곡 'You're My Best Friend', 브라이언 메이가 만든 곡으로 천문학에 대한 관심을 숨기지 않은 '39'에 이어서 색다른 록 스타일의 6번 트랙 'Sweet Lady', 단번에 프레디의 곡이라고 알 수 있는 경쾌하고 클래시컬한 'Seaside Rendezvous', 곡 길이가 8분이 넘고 여러 실험을 시도한 8번 트랙 'The Prophet's Song', 한때 프레디의 연인이었던 메리 오스틴(Mary Austin)을 생각하며 만든 퀸의 대표곡 중 하나로 꼽는 'Love of My Life', 한 사람의 인생을 이야기한 'Good Company', 록 역사상 최고의 명곡이라는 데에 아무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을 'Bohemian Rhapsody', 브라이언 메이가 영국의 국가를 편곡한 연주곡으로 훗날 여왕 즉위 50주년 기념식(Queen's golden jubilee in 2002)에서 연주하게 되는 마지막 트랙 'God Save the Queen'까지  앉은자리에서 전곡을 다 들었고, 광고나 영화에서 가끔 접했던 퀸의 유명 곡이 다는 아니었구나! 정말 충격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입니다. 


퀸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롤링스톤지(대표적인 퀸은 씹어야 제맛이지! 언론)마저 세계 10대 명반으로 선정하였습니다.

Queen- Bohemian Rhapsody (Live In Budapest, 1986)
Brian May - 'God Save The Queen' on the roof of Buckingham Palace (Golden Jubilee 2002)



 

5집 A Day At The Races (1976)입니다.


전작의 대성공에 아마도 부담감이 있었으리라 생각되는데, 실제로 전작에 비해 앨범 판매량이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고 매너리즘에 빠졌다며 무참하게 혹평이 쏟아진 앨범입니다. 앨범 커버를 살펴보면 4집과 매우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을 텐데, 앨범 제목과 커버에서 연작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음악적으로 그다지 연관성은 없습니다. 작품성에 치중했던 전작에 비해 가볍고 쉬워진 5집이지만 전작의 성공에 슬쩍 숟가락을 얹어보겠다는 얄팍한 속셈은 보이지 않습니다.


전작의 성공이 우연이 아님을 증명하는 6번 트랙 'Somebody To Love', 피아노 선율과 잘 어우러진 프레디의 애절하고 슬픈 발라드 2번 트랙 'You Take My Breath Away'는 당신은 날 숨조차 멎게 해, 당신은 내 숨을 가져갔어요. 더 좋은 표현이 없을까요?  우리말도 다른 언어로 번역하면 뜻을 완전하게 전달할 수 없듯이 이 노래가 그렇지 않은가 합니다.  


 

좌 : 6집 커버 / 우 : 과학 잡지 커버

6집 News Of The World (1977)입니다.


퀸의 대표곡으로 꼽을 수 있는 'We Will Rock You'와 'We Are The Champions', 'Spread Your Wings'가 수록된 앨범으로 혹평으로 일관되었던 전작을 의식했는지 하드 록을 지향한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앨범 커버는 SF 마니아인 로저 테일러가 과학 잡지 'Analog Science Fiction'의 표지를 보고 저작자에게 동의를 구했고 흔쾌히 수락함은 물론, 일러스트까지 그려주어 커버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3번 트랙이 눈에 띄는데, 3집 앨범 제목이었던 'Sheer Heart Attack'을 수록하였습니다. 위에 곡들은 많이 알려져 익숙한 곡이니 10번 트랙 'It's Late'를 추천합니다. 

It's Late


   

7집 Jazz (1978)입니다.


앨범 제목이 Jazz? 갑자기 음악적 외도라도 하는 건가... 는 아니고, 앨범 제목을 고민하다가 마지막 트랙이 'More of That Jazz'인데 단순하게 마지막 단어 Jazz라고 정했습니다. 하지만 이 곡 역시도 재즈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70년대 퀸의 음악 스타일이 마지막으로 담긴 이 앨범 역시 'Fat Bottomed Girls', 'Bicycle Race', 'Don't Stop Me  Now'의 히트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10번 트랙 'Fun It'과 13번 'More Of The Jazz'는 드러머 로저 테일러가, 11번 트랙 'Leaving Home Ain't Easy'은 기타 브라이언 메이가 리드 보컬을 맡은 작품입니다. 



8집 The Game (1980)입니다.


프레디 머큐리가 가장 아끼는 앨범이며 2곡이 처음으로 미국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합니다. 퀸의 앨범 중 최초로 신시사이저를 사용해 곡 구성이 단순해짐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상업적인(노림수?) 음반이 되었습니다.


1번 트랙 'Play the Game'부터 영미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던 3번 트랙 'Another One Bites the Dust', 5번 트랙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를 비롯해 프레디의 절규가 인상적인 웅장한 록 넘버 10번 트랙 'Save Me'까지 70년대의 퀸과 80년대의 퀸의 접점 앨범입니다. 이후 프레디의 목소리는 거칠어져 이전과는 또 다른 이미지를 형성합니다. 콧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때도 이때입니다.

Another One Bites the Dust



9집  Flash Gordon (1981)입니다.


영화 'Flash Gordon'의 사운드 트랙 앨범입니다. 보통 영화를 통해 노래가 알려지는데 안타깝게도 영화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바람에 퀸의 앨범만 전작의 성공에 힘입어 좋은 차트 성적을 기록하였습니다. 전 트랙을 퀸이 담당했지만 18곡 중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가 들어간 곡은 단  2곡뿐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연주곡이므로 패쓰!



10집 Hot Space (1982)입니다.


실패작... 이라고 불리는 'Hot Space'입니다. 8집 앨범이 미국에서 성공하자 80년대 유행한 디스코에 편승해 만들어진 앨범으로 퀸스럽지 못하다, 퀸답지 않은 음악이다, 일종의 배신감은 들 수 있겠지만 새롭다, 흥미롭다로 대신하면 어떨까요? - 덕심 폭발 맞고요! ㅎㅎ - 사실 팬들이 실망한 앨범이고, 존 디콘과 로저 테일러도 이 앨범을 싫어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앨범의 커버 아트를 블러(Blur)의 히트곡 모음 컴필레이션 앨범 'The Best Of'에 오마쥬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Blur의 The Best Of


마지막 트랙 'Under Pressure'의 원제는 'People on The Street'이고, 절친 데이빗 보위(David Bowie)와 듀엣곡 형식으로 부른 노래인데 정작 데이빗 보위는 이 곡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이제 다시는 원곡자들의 목소리로 듣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11집 The Works (1984)입니다.


전작의 쓴맛을 본 퀸이 심기일전하고 2년 만에 11집 앨범을 발표합니다. 국내에서도 높은 관심을 보이며 앨범 판매량이 좋았던 앨범이지요.


레이디 가가(Lady Gaga)의 이름이 된 1번 트랙 'Radio Ga Ga'와 많이 알려진 존 디콘의 작품 6번 트랙 'I Want To Break Free'는 영국의 인기 시트콤을 패러디해 멤버 전원이 여장을 한 뮤비로도 유명합니다.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모두 뛰어난 아티스트이지만 존 디콘이 없었다면 퀸은 어떤 색깔이었을까? 생각도 합니다. 전작의 실패로 지나치게 안정적인 앨범이라는 평이 있었고 여전히 신시사이저가 상당 부분 쓰였음에도 혹평은 없었습니다. 점점 퀸의 음악에 신시사이저가 잘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이야기이겠지요.



12집 A Kind Of Magic (1986)입니다.


왕성한 라이브 활동과 활발한 음반 판매량으로 퀸의 위치가 점점 견고해질 때 즈음 영화 '하이랜더(Highlander)'의 사운드 트랙 작업과 앨범 제작을 동시에 한 'A Kind Of Magic'을 공개합니다.


영화 속 대사를 그대로 옮긴 2번 'A Kind Of Magic', 6번 'Who Wants To Live Forever'는 70년대 이후 미국 영화음악계의 거장 마이클 케이먼(Michael Kamen)이 지휘한 The National Philharmonic Orchestra와의 협업으로 만든 웅장한 발라드 곡입니다. 10 ~ 12번 트랙은 보너스 형식으로 수록되었는데 10번 'A Kind Of 'A Kind Of Magic'은 2번 'A Kind Of Magic', 11번 트랙 'Friends Will Be Friends Will Be Friends...'는 5번 'Friends Will Be Friends'를 다른 버전으로 그리고 12번 'Forever'는 6번 'Who Wants To Live Forever'의 피아노 연주곡 버전입니다.



13집 The Miracle (1989)입니다.


후반기 퀸의 앨범 중 높은 평가를 받은 앨범입니다. 

라이브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퀸이었지만 지난 앨범 '매직 투어' 이후 투어는 없을 것임을 밝히게 되는데, 1989년도라면 프레디의 병세가 어지간히 진행되었을 시기이고, 상황을 모르는 사람도 상당수였지만 이미 소문은 소리 없이 퍼져 영국의 기자들에게 무척 시달리던 때입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브라이언 메이의 이혼 문제도 겹쳐 전체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에 발매한 앨범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곡은 4번 트랙 'I Want It All' 당시 브라이언 메이의 여자친구인 아니타 돕슨(Anita Dobson)의 말버릇에 영감을 얻어 만든 곡으로 본작 뿐 아니라 80년대 퀸의 대표적인 하드 록, 메탈 곡입니다.




14집 Innuendo (1991)입니다.


프레디 머큐리 생애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사실상 퀸의 마지막 앨범이고요. 마지막... 아쉽고 또 아쉽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앨범은 엄숙하고 비장하고 슬픕니다. 앨범의 백미는 단연 마지막 트랙 'The Show Must Go on'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브라이언이 데모 녹음을 하였고 프레디의 병세 악화 탓에 녹음을 끝낼 수 있을까 했는데 기어코 한 번에 녹음을 끝냈다고 합니다. 그것도 보통의 보컬리스트가 평생 내지도 못할 고음으로요. 정말 의지가 대단합니다.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프레디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말이었겠지요.

The Show Must Go On (Official Video), 이전까지의 뮤직비디오를 이어붙여 만들었습니다.



15집 Made In Heaven (1994)입니다.


1991년 11월 24일 프레디 머큐리가 세상을 떠납니다. 이 앨범을 준비할 당시 이미 프레디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던 상황이었지요. 공식적으로는 'Innuendo'가 퀸의 마지막이었고, 프레디가 생전에 녹음해 둔 음성으로 'Made In Heaven'을 완성하였습니다.


4번 'Mother Love'는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 마지막 음성입니다. 2분  05초쯤 ~Mama please let me back inside를 끝으로 프레디의 음성이 끊기고 브라이언 메이가 이어가다가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듯한 음 - 전성기 때 라이브 공연 - 이 흐른 다음 잠시 프레디의 'Going Back'이, 그리고 아기 울음소리로  마무리됩니다. 매우 의미심장하고 우울합니다. (Going Back은 프레디가 72년에 Larry Lurex의 객원보컬로 참여해 부른 노래입니다.)

Mother Love






프레디 머큐리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 1992년 4월 20일, 웸블리 스타디움(Wembley Stadium)에서 톱스타들이 모여 공연을 펼쳤습니다. 


브라이언 메이의 주도로 U2, 데이빗 보위(David Bowie), 건즈 앤 로지즈(Guns N' Roses),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 엘튼 존(Elton John), 익스트림(Extreme) 등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7만여 관중 앞에서 퀸의 히트곡들을 열창하였는데, 에이즈 퇴치를 위한 자선기금 마련 및 프레디 머큐리 추모의 성격도 있어 이 날 공연 영상을 비디오와 앨범으로 제작해 발생한 수익금은 에이즈 퇴치 자선기금으로 쓰였습니다.







위에 1집 소개 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데뷔 당시에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잡탕 음악이라는 평가하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퀸이 발전한다면 내 모자를 먹겠다'했던 평론가도 있었는데, 평생 모자만 먹어도 모자랄 정도로 발전, 아니 전설이 되었지요. 여러 음악 색깔이 있는 건 퀸을 구성하는 멤버 한 명 한 명이 뛰어난 음악적 재능이 있어 당연한 일입니다. 프레디 머큐리의 존재감과 비극적 사망으로 끝을 맺은 그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져 나머지 멤버들은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인데, 간단하게 구성원을 살펴볼까요?

음악가이자 천체물리학자, 학창 시절 돈이 부족해 그의 아버지와 18개월 동안 제작한 수제 기타 '레드 스페셜(Red Special)'로 유명한 브라이언 메이의 기타 연주는 세계에서도 손꼽힐 만한 실력으로 롤링 스톤지 선정 '역대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100명 (100 Greatest Guitarists of All Time)'에 26위를 기록하였습니다.

드러머 로저 테일러는 다른 구성원과 마찬가지로 작사, 작곡 능력이 뛰어났으며 브라이언 메이와 함께 백업 보컬도 겸하였지요. 레드 제플린의 드러머 존 본햄(John Bonham) 사망 후 이제는 자신이 최고의 드러머라고 했다는데, 정작 영국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릅니다. 확실한 이야기는 아닌 듯싶습니다.


구성원 모두가 뛰어나지만, 특히 베이시스트 존 디콘이 없었다면 퀸의 음악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성격에 백업 보컬에 참여하는 일도 없었지만, 베이스 연주자로서의 능력은 한 번도 의심받은 적 없습니다. 밴드 내에서 가장 적은 곡을 만들었음에도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되는 곡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고요.

('You're My Best Friend', 'Another One Bites the Dust', 'Spread Your Wings', 'I Want to Break Free' 등) 1997년에 발매한 컴필레이션 앨범 'Queen Rocks'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고 현재는 가족과 함께 조용히 살고 있다고 합니다.



몽트뢰 광장의 프레디 머큐리



I won't be a Rock Star, I will be a Legend.

나는 록스타가 되지 않을 거야, 전설이 될 거야.




그가 말한 대로 전설이 된 불세출의 스타 프레디 머큐리.  그때 그 시절 영국에는 두 명의 여왕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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