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름은 선화입니다.
베풀 '선'에 온화할 '화'입니다.
글을 쓰다 보면 가끔 저를 숨기고 쓰고 싶을 때가 생깁니다. 다른 사람이 제 글을 읽으면 제 일기장을 읽는듯한 느낌이 들어서에요. 제 속마음을 다 드러내 놓고 진실되게 쓴 글일수록 저를 숨기고 싶은 기분은 더 듭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 브런치를 아는 지인은 한 명도 없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지나가다 제 글을 읽는 건 괜찮은데, 아는 사람이 '선화가 쓴 글 이래.' 하면서 읽으면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제 감정을 숨긴 채 겉핥기식으로 쓴 글은 제가 쓴 글이라고 드러내도 아무렇지가 않고요. 참 신기하죠. 나를 드러낼수록 숨고 싶은 마음이라니. 저도 제 마음을 잘 모르겠습니다. 글을 많이 써서 베테랑 작가가 되면 나를 숨기고 싶은 마음이 적어질라나요.
요즘 부캐와 본캐라는 말을 많이 쓰더라고요. 저는 유재석 씨 나오는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에서 부캐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습니다. 원래 이름을 놔두고 별명 같은 또 다른 이름을 만들어서 부캐릭터라고 하더라고요. 본 캐릭터는 본캐, 부캐릭터와 부캐. 이러면서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본캐와는 완전 다른 성향의 부캐를 만들어 전혀 다른 분야에서 마음껏 하고 싶은 데로 하더라고요. 본캐라면 못했을 것들을요.
'그까짓 부캐 별거 아닌데, 나도 한번 만들어보자.' 부캐를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부캐를 만들면 선화로써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우선 평소 분위기와 다른 글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부캐 이름으로 경제와 투자 관련 글을 써보고 싶었거든요. 며칠을 고심하다가 '뭐든지 다 이룬다.'를 뜻하는 '이루다'라는 이름을 만들어봤습니다. 그러고선 '이루다'라는 가짜 이름으로 평소에 쓰지 않았던 글을 써봤습니다. 브런치에 와서도 '선화' 대신 '루다'라는 이름으로 바꾸었습니다. 나의 원래 이름을 버리면 나를 드러내는데 용기가 날 것 같았어요. 일기장 겉표지에 내 이름만 없으면 누가 와서 내 글을 봐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하지만 제 착각이었습니다. 부캐 만드는 거 별거 아닌 게 아니더라고요. 저는 그냥 선화로만 살아야 할 성격인가 봐요. '이루다' 이름으로 쓰던 경제 관련 글은 겨우 완성해 놓고 깊은 서랍 속에 그냥 넣어두었습니다. 초기의 왕성했던 의욕과는 별개로 제가 좋아하는 글이 아니다 보니, 글 쓸 때도 재미가 없어서 겨우 마무리 졌습니다. 그런 글이다 보니 글 쓴 사람인 제가 봐도 영 아니더라고요. 경제 관련 전자책을 내려고 했던 원대한 포부는 고이 접어 넣었습니다. 하다못해 브런치에도 글을 못쓰고 있었습니다. 대체 '루다'가 뭡니까. 이름 때문에 또 혼자 부끄러워지네요. 나를 숨기면 뻔뻔스럽게 저를 잘 드러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선화가 아니다 보니 제 이야기를 못하겠는 거예요. 이건 아니다 싶어 원래 이름으로 바꾸려고 보니, 브런치에서는 작가명을 바꾼 후 30일 이후에나 변경이 가능하더라고요. 네. 30일 동안 기다렸습니다. 본캐로 돌아올 때까지요.
제 이름으로 쓰인 글을 지인이 안 읽었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막상 제 이름을 숨기고 다른 이름으로 글을 쓰려고 하니 그건 또 그거대로 글이 안 써지더라고요. '부캐를 갖고 계신 분들은 정말 능력자 시구나.'라는 혼자만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깜냥이 안 되는 저는 본캐인 '선화'라도 잘 잡고 있어야겠습니다. 부캐 만든다고 두리번거리다가 부캐와 본캐를 모두 놓칠 뻔했습니다. 앞으로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선화'라는 이름대로 '베풀면서' '온화하게'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겠다고 다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