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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고사직 이후 남편이 변했다

by 곰아빠

*상담 사례를 각색했습니다.


남편은 꽤 잘 나가던 직장인이었어요.

늘 고과도 좋았고 승진도 빨랐는데 평판도 좋아서 다른 회사에서 높은 자리로 스카웃해갈 정도였어요.

저도 남편이 자랑스러웠고 뭘하든 응원했어요.

문제는 회사가 갑자기 어려워지고 기조 변화가 생기면서 남편이 사실상 권고사직을 당하면서 시작되었어요. 6개월 정도 커리어에 공백이 생기면서 남편은 가장으로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너무나도 힘들어했어요.

다행히 지금은 다시 취업을 해서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남편이 좀 변했어요.

예전에는 조금 여유롭고 가정에도 최선을 다하는 성격이었는데 조급해지고 일중독이 되었어요.

회사일은 물론이고 기회만 되면 투잡이며 쓰리잡이며 마다하지 않고 작게 사업도 시작했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집에서 저와 아이를 보는 시간도 줄어들었고 건강도 나빠졌어요.

진지하게 힘들지 않냐 물어보니 직장이 안전한 울타리도 아니고 내 인생은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걸 깨달았다면서 본인이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전까지 이럴 수 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든가 그런건 아니에요.

다만 힘들어하는게 눈에 보이고 아이 못보고 하는것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저러는게 안타까워요.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남편이 지금처럼 일에 몰두하고 조급해진 모습을 보면 안타깝고 걱정되는 마음이 드는 건 정말 자연스러운 감정이에요.


남편은 아마도 한 번의 커리어 단절을 겪으면서 가장으로서의 무게와 두려움을 뼈저리게 느꼈을 거예요.

‘누구도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생각은 남편이 얼마나 불안한 마음을 품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죠. 지금 남편은 생존 본능처럼 일에 매달리고 있는 거예요.

가족을 위해 버텨야 한다는 책임감이 커져버린 나머지, 정작 본인과 가족이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것들을 놓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상태인 거죠.


이럴 때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남편의 불안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감정에 깊이 공감해주는 거예요.

“왜 그렇게까지 해?”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오히려 방어심이 생기기 쉬우니까요.


남편이 다시 일어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두려움과 싸워야 했는지 얼마나 치열하게 자신을 몰아붙였는지를 먼저 이해해주는 말이 먼저 가야 해요.

그러면서도 그가 그렇게 지키고 싶어 하는 가족이 단지 책임져야 할 짐이 아니라 쉬어갈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게 정말 중요해요.


가끔은 남편이 놓치고 있는 것들, 특히 아이가 자라는 소중한 순간들을 담담하게 들려주는 것도 도움이 돼요.


“오늘 아이가 이런 걸 했는데, 당신이 보면 정말 좋아했을 거야” 같은 말처럼요.

그 말이 비난처럼 들리지 않고, 그리움과 공유의 언어로 전해질 때 남편 마음 한켠이 조금씩 열릴 수 있어요.


가족은 경쟁도 성과도 없이 있는 그대로 서로를 받아주는 유일한 공간이잖아요. 남편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도 결국 그 곁에 묵묵히 있어 준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지금처럼 다정하고 단단하게 옆을 지켜주되, 남편이 스스로도 조금은 속도를 늦춰도 괜찮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천천히 대화를 이어가 보세요.


지금은 남편이 ‘혼자 싸우는 중’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고 있을 테니까 그 싸움에 같이 있어주는 사람이라는 걸 자주 작게라도 표현해주는 게 큰 힘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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