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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Apr 18. 2021

강철 심장을 갖고 싶어!

좋은 사람이 되자

어? 분명 바로 전 정류장에서 내림버튼을 눌렀는데. 버스는 내가 내려야할 곳을 지나쳐 다음 정류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삑-”


버튼 불빛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구두의 또각거림 하나 없는 조용한 버스 안.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침묵을 깨고 운전석을 향해 입을 뗐다.


“기사님, 왜 좀 전에 문 안열어주셨어요? 저 버튼 눌렀었는데.”


대개 이런 경우 거칠게 답을 하거나 무시하고 갈 길 가는 기사님들이 많기 때문에 큰 기대는 안했다.


“엇 제가 내릴 곳을 깜박 놓쳤나보네요. 그런데, 버튼을 누르셨었나요? 앞으론 주의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손님”


순간, 내가 내림버튼을 누른다고 생각만 해놓고 실제로는 누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요즘 깜빡깜빡 잘 한다. 세상에, 아무리 그래도 이런 걸 착각하다니.


“아니에요. 생각해보니 제가 안 눌렀나봐요.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도 크게 문제 없습니다”


나와 기사님 사이에 서로 ‘미안하다’라는 말이 오고갔다. 그때 바로 앞 의자에 앉아있던 아줌마 한 분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보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두 분 다 정말 좋은 분이네요”


나는 좋은 사람 아닌데... 겸연쩍은 미소로 화답했다.


타인에게 인정을 받는 게 인간 본연의 욕구라고 하지만 특별히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한 적은 없다. 그런데 막상 인정을 받으니까 조금 뭉클해졌다.


가슴 속에서 쿵쾅쿵쾅하는 심장떨림이 시작되고,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살면서 누군가로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강철 심장을 갖고 싶어


나는 종종 이런 상상을 해본다. 내 심장이 어떠한 가시 돋힌 말에도 찔리지 않도록 딱딱하고 차가웠음 한다고.


요즘 들어 특히 타인의 말에 상처를 받는 일이 자주 있었다. 직장 후배는 내가 잘못된 것을 지적해주자 테니스 속공을 날리듯 바늘 돋힌 말로 대답했고, 아는 동생은 내가 건넨 도움을 작은 것으로 여겨 비아냥거렸다.


그럴 때마다 그날 하루를 망쳤다. 누군가가 던진 작은 돌멩이에 맞아 숨을 헐떡였다. 그런 결과를 가져오게 한 원인 제공자는 나였다. 왜 그런 부질없는 말과 행동을 했을까 하면서 자괴감에 빠졌다.


밤새 생각에 잠겨서는 ‘잘못하지 않고도 혼나고, 잘해주고도 좋은 소리를 못 듣는 건 내 처신이 야무지지 못해서구나’ 하는 결론에 다다르곤 했다.


이번 경우 같은 낯선 이의 칭찬은 어색하다. 하늘로 붕 뜬 것 같은 느낌은 안 마시던 술을 오랜만에 마셨을 때처럼 빠르게 혈관을 타고 몸 전체를 감쌌다. 심장을 툭 치고 지나간 것인지 눈에 눈물이 맺혔다.


정말 좋은 사람이 돼야겠구나. 누구한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뿌듯하기 위해 더욱 말과 행동에 신중하고 배려를 해야겠구나. 하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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