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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Dec 24. 2021

제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

한 달의 휴식, Day4


퇴사짤로 유명한 것 중에 해맑은 손짓과 표정으로 세상과의 이별을 고하는 소녀 이미지가 있다. 언젠가는 꼭 그걸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해놔야지, 하고 휴대폰 갤러리에 저장해뒀는데 아직까지 쓰진 못했다. 현실에서는 그 소녀처럼 마음 편히 회사와의 이별을 고할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건강상의 이유로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소견서를 회사에 제출하고 한 달이라는 무급 휴가를 얻었다. 


일을 쉰 지 나흘째.


생각이 많아서 4시간 잠자고 새벽에 깼다. 가고 싶은 설산인 문유산과 오늘 할 미팅 장소의 메뉴들을 검색해보다가 노트북 앞에 앉았다. 새벽 4~5시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나로서 자유를 만끽할 수 있어 좋다. 고독은 회사 일에 매진할 때는 미처 누리지 못한 것 중 하나기도 하다. 


매일 사람을 만나고 그와 연락하는 게 직업이다보니, 휴대폰을 안보고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속세와 단절된 곳에서, 자연을 벗삼아 휴식하고 싶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러기엔 내가 문명인인지라, 큰맘 먹고 간 여행에서도 휴대폰 검색과 카톡질을 멈출 수 없었지만. 그래서 고독이란 일종의 로망 같은 거였는데, 그걸 지금 누리고 있다니 꿈만 같다.   


그토록 바라던 휴식이 시작되기에 앞서 대전제를 세웠다. 


누군가에게 구속받지 않고, 특정 상황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의지가 이끄는 대로 하자. 내 본능, 원하는 것, 순간의 감정이 뭔지에 집중하고 그에 따라보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갈 생각이다.  


제법 잘 지켜지고 있는 것 같다.


며칠 전에는 꽤 오래전에 잡아둔 저녁약속을 깼다. 몇 번을 미뤄 잡은 친구들과의 약속이어서 그날 오전까지만 해도 설레는 마음이 컸다. 그런데 막상 약속시간이 다가오니 외출하기가 귀찮아졌다. 약속장소가 집에서 1시간 반 거리로 멀기도 했지만, 한번 나갔다가 들어오면 에너지 소진이 클 것 같았다. 게다가 요즘 밥 한끼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보니 백수입장에서는 이래저래 집에 콕 박혀있는 게 경제적으로 이득이다. 


어제는 그간 꼭 해보고 싶다고 생각해온 연탄나르기 봉사활동을 할 기회가 생겼는데 그것도 포기했다. 이번에도 에너지를 쓰는 방향이 타인을 향해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참가비가 3만5000원인 점도 큰 이유였지만.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쓰자는 게 이번 휴식의 목표니까 연탄봉사는 내 심신이 회복되고 나서 하기로 했다. 대신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한 친구와 등산 약속을 잡았다. 우리 둘한테 맞는 수준의 낮은 산을 오를 거다.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는 고독과 고립의 경계선이 혼자 있는 상태를 만끽하는지 여부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혼자 있어도 안락과 위로를 느낄 수 있으면 ‘고독’이고, 그렇지 않고 타인에 의해 지금 내 상태가 결정돼 불만과 불안감을 느끼면 ‘고립’이다. 이 판단에서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나’다. 어떤 행동을 할 때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인지, 아님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서 하는 것인지 잘 인지를 해봐야 한다. 그동안엔 후자가 참 많았는데, 이번 휴식 기간에 만큼은 모든 걸 나를 중심에 두고 결정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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