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 시리즈온 <회장님네 사람들>(2022)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방송된 1088부작 드라마 ‘전원일기’가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새로운 콘텐츠로 재생산되고 있다. 지난해 MBC 다큐플렉스가 창사 60주년 특집으로 ‘전원일기 2021’ 4부작을 내놓은데 이어 지난 10일부터는 tvN story가 8부작의 예능프로그램 ‘회장님네 사람들’로 ‘전원일기’를 변주시켜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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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2021’이 회고록의 포맷을 띄고 있다면 ‘회장님네 사람들’은 현재진행형의 프로그램이다.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데서 나아가 출연진이 현재 시점의 근황을 나누고 새로운 관계성을 만들어간다.
20대 후반에 노역을 분장을 했던 김수미는 김용건과 이계인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며 촬영 당시의 기억을 떠올린다. 또 며느리 역의 김혜정과 있었던 갈등을 드러내고 사과를 건네면서 쩔쩔매는 면모를 보여준다. 김 회장(최불암)의 성실한 장남 역을 맡았던 김용건은 늦은 나이에 자식을 낳은 파격 근황으로 극 중 이미지를 깼다. 이계인은 촬영 파트너였던 이숙의 수다스러움에 고통스러워하는 듯한 표정으로 코믹함을 드러낸다.
전화연결로 목소리만 출연한 김혜자도 2022년 김혜자의 매력을 뽐냈다. 그는 최불암을 흉내 내는 이계인의 첫 마디만 듣고도 최불암이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파악, 22년간 함께 촬영했는데 목소리를 어떻게 잊겠냐며 되려 꾸짖으면서 김용건에게는 태연하게 최신 화제를 모았던 안부를 물어 폭소를 자아냈다. 이 같은 장면들은 시청자들에게 재탕이 아니라 처음 보는 신선한 것으로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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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가지 궁금증이 인다. ‘전원일기’를 재조명하는 프로그램이 계속해서 생산되는 이유는 뭘까. ‘전원일기’는 대중의 어떤 갈증들을 담고 있는 걸까.
농촌드라마의 대표작품이라는 데서 그 답을 유추해볼 수 있다. 예를 들면 3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이 여럿 등장하고, ‘회장님네 사람들’ 1회에서 언급되기도 한 노총각 귀동이(이계인)와 슈퍼아줌마 쌍봉댁(이숙)의 사랑이야기라든지, 일용 아내(김혜정)와 일용 어머니(김수미)의 고부갈등 등이 MZ세대가 열광하는 뉴트로의 한 종류로 분류될 수 있다. 장르물에서 볼 수 있는 극적 사건은 없지만 우리네 사는 이야기를 물 흘러가듯 담아 ‘불멍’ ‘물멍’을 하는 듯한 편안함을 선사한다. 따뜻한 가족애가 주는 편안함은 요즘처럼 핵가족화되고 나아가 나홀로 가구들이 급증하고 있는 세태에 오히려 강력한 유인으로 작용한다.
많은 이들이 산업화 시대에 발맞춰 전원에서 도시로 이동하면서 농촌은 구시대적인 것이라는 인식이 커진 때가 있었다. 하지만 힐링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도시인들은 자연으로 회귀하고 있다. ‘1박2일’ ‘삼시세끼’ ‘나는 자연인이다’부터 최근 종영한 ‘텐트밖은 유럽’ 같은 프로그램들 역시 농촌과 자연을 찾아 떠나는 포맷을 취하고 있다.
한마디로 농촌에서 살아보지 못한 젊은 세대의 관점에서 ‘전원일기’의 영상들은 낡은 것이 아니라, ‘시간의 가치’가 얹어진 것으로 재해석되는 것이다. 지금은 없는 ‘농촌드라마’라는 장르가 가진 고유함, 그 안에 담긴 김 회장댁 가족들이나 일용이네 가족들이 겪는 서사의 특별함도 이 작품의 가치를 높인다.
‘전원일기’가 20년의 세월을 넘어 소환된 배경에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그로 인해 생겨난 새로운 시청 패턴도 깔려 있다. ‘전원일기’는 MBC ON, 엣지티비, 채널 유, KTV 등 7개 채널에서 내보내고 있는 드라마이고, 한때 웨이브와 네이버 시리즈온 등에서 인기 드라마 톱10에 오를 정도로 화제성이 크다.
이는 OTT 덕에 과거에 방영됐던 명작 드라마들을 ‘취향별’로 골라 볼 수 있게 되면서 연령대가 높은 시청자들이 향수와 추억이 묻어나는 작품에 대한 요구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과거의 콘텐츠를 현시대의 관점으로 재조명하는 것에 대해 시청자들이 열렬한 환영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회성의 방송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은 콘텐츠의 수명이 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뒷세대의 작품들에겐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