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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Jan 22. 2021

최강창민, 2AM 창민 이전에 최창민이 있었지!

TV 캐릭터 박물관 ② 최제우로 돌아온 최창민

 

드라마 <육남매>의 말순이, <국희>의 어린 국희 등 문득문득 그리운 추억 속 스타가 내겐 많다. 지금은 최제우라 불리는 최창민도 내겐 그런 인물이었다. 친구들 아무도 최창민을 몰랐지만, 나는 뚝심있게 그의 이름을 외쳤다. 동방신기의 최강창민, 2AM의 창민 이전에 최창민이 있었다고.





그의 이름 석자만으로도 연말 가요 시상식에서 누가 대상을 탈지 전전긍긍하던 어린 시절의 아련한 감성이 떠오른다. MBC '무한도전'의 '토토가', JTBC '슈가맨'이 방송됐을 때 제작진이 최창민을 소환해주기를 마음 속으로 바랐다.


원조 잘생김의 대명사


요즘은 음원차트를 멜론이나 벅스뮤직, 가온차트 등이 실시간으로 알려주지만, 1990년대 말에는 음악프로그램(인기가요, 음악캠프, 뮤직뱅크)이 그 몫을 했다. 특히 한창 ‘사이버’ 열풍이 불어 차트 소개도 그 영향을 받았는데, 무대 중간에 상위 10위권에 오른 가수와 노래를 빠르게 요약해주는 CG 기반의 코너가 있었다.




10대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남녀 신인 가수 둘이 번갈아가면서 콩트를 하듯 오글거리는 대사를 이어나갔는데 그때 얼굴을 알린 게 보아와 최창민이었다. 그 시절 10대의 솔로 가수로는 보아와 최창민이 유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보호본능을 일으킬 정도로 앳된 최창민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입술 옆 양 보조개, 밀가루를 펴바른 듯한 새하얀 피부, 청순만화 주인공 느낌을 주기 위해 젤로 매만진 듯한 헤어스타일, 유독 까맣고 똘망똘망하게 빛나던 눈동자가 그를 설명하는 전부였다. 외모가 출중하다보니 개인적으론 로봇처럼 공장에서 찍어낸 인조인간이라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1997년 잡지 모델로 데뷔한 그는 배우 송혜교와 ‘S’사 교복 모델을 하고 SBS 시트콤 ‘나 어때’(1999년)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지금은 어엿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GNCO의 첫 의류브랜드 ‘SPORT REPLAY’의 초창기 모델로도 활동했다.  


많은 이들이 최창민을 기억하고 있지만 사실 최창민이 가수로 활동한 기간은 길지 않다. ‘make me a HERO’(1998년), ‘The Way’(1999년), ‘너에게’(2000년) 이렇게 총 3개의 앨범을 냈다. 그 유명한 ‘영웅’과 ‘짱’이 들어있는 데뷔앨범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빛을 보진 못했다. 그리고 2000년 3집 앨범을 발표한 이후 가요계에서 자취를 감췄다.


대신 그는 2000년대 초부터 연기자로 모습을 비췄다. KBS 2TV 일요아침드라마 '언제나 두근두근', MBC 일일드라마 '황금마차', MBN 수요드라마 '연남동 539', 영화 ‘강적’ 등에 출연했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최창민은 어딘지 모르게 우리가 기억하는 그 ‘청춘스타’와 조금 달라 보였다. 순둥순둥한 눈빛은 날카롭게 변해있었다.


아무래도 캐릭터에 몰입하다보니 그랬겠지만, 추억 속 한 페이지가 더러워진 것 같아서 속이 상했다. 그가 자신의 이미지를 내려놓고 주어진 일을 해야할 정도로 카메라 밖에서 힘에 부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지 걱정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그가 2019년 ‘시간을 달리는 게임’ ‘오늘의 운세’를 시작으로 또 한번의 컴백을 했을 때, 최창민을 걱정했던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는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콘텐츠를 갖고 있는 스타였으며, 단단한 내면으로 자신을 가꿔온 어른이었다. 특히 명리학자 ‘최제우’가 되기까지 최창민이 겪어온 일들이 내 마음을 울렸다.


잘 버텨준 최창민에게 박수를!


그는 소속사에게 사기를 맞고 3년 간 일용직을 해서 대신 빚을 갚았다. 자신을 믿고 소속사 식구가 된 친구 김승현의 몫까지 짊어졌고, 모든 빚을 갚은 후 소속사 대표를 찾아가 다시 일을 해보자고 제안까지 했다.


그 사연을 이야기하는 최창민의 눈빛과 주름에 그 모든 세월이 담겨있는 게 보여서 가슴이 아팠다. 그 다음으로는 스타성으로 쉽게 돈을 벌 수도 있었지만 직접 땀 흘려 돈을 벌 정도로 사람에게 데였구나,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에게 기회를 줄 정도로 포용하는 심성을 지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룹 ‘터보’의 백댄서출신 가수로서 H.O.T, 젝스키스, S.E.S 등 아이돌 그룹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과시하고 김민희, 김효진, 신민아 등 모델들과 호흡을 맞춘 화려한 면모 뒤에 누구에게도 말 못할 아픔이 있었다는 걸 왜 어린시절에는 눈치채지 못했을까.




처음에는 최창민이 최제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최창민이 최창민이지. 그러나 카메라 밖 그의 인생이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최제우란 이름에도 서서히 익숙해졌다.  


10대 초반부터 장의사 보조 알바, 전단 알바 등 가족을 위해 보탬이 되려고 열일한 기특한 소년은, 10대 후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사회를 경험했고, 20대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했을 정도로 성장통을 겪었다. 30대에는 자신이 누군지 알기 위해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고, 40대가 되어 다른 이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됐다.


1990년대 말, 지금의 ‘임영웅’보다 한발 앞서 히어로라는 콘셉트의 앨범을 내고 ‘영웅’이란 곡으로 활동한 최창민은 2020년대에 들어 국민을 위로하고 힘을 주는 연예인이 될 준비를 마쳤다. 백댄서에서 가수로, 모델에서 배우로, 또 명리학자로 몇 번의 변화를 거치면서 최창민은 둥글게 깎이고 성숙해졌을 것이다.  


‘강호동의 밥심’에 출연해 어머니로부터 손편지를 받고 흘린 눈물, ‘불타는 청춘’에 나와 ‘시청률 요정’ 삼인방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춤을 출 때 보여준 미소에는 생각보다 아주 많은 것이 담겨 있으리라.


그가 최창민이든 최제우이든 상관없다. 앞으로 보조개 보이게 활짝 웃을 일만 가득했으면. 한때 ‘초딩팬’으로서 진심어린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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