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글에 이어서 이야기를 계속한다.
... 앞의 글의 서두에 부자청년의 이야기를 적었다. 사실 부유한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얘기기도 하고 , 특히 필자가 다니는 교회와 비슷하게 부유하거나 보수적인 성향의 교회들에서는 피하고 싶은 성경말씀이기도 하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불편한 말씀일 수록 더 집요하게 연구하고 , 그것을 가지고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말씀만 아멘 할렐루야로 받아들이고 , 불편하면 애써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태도는 분명 아닐것이다. 하나님은 나에게 이롭고 좋을때만 하나님이 아니고 , 나에게 고난을 주시고 나에게 십자가를 지고 살라 하시고 , 십자가에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히라고 하실때에도 하나님이시다. 아니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은 진정한 하나님의 모습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연인 즉은 이러하다. 돈이 많은 청년이 예수의 가르침에 매료되었다. 한편 그는 독실한 유대교 신자이었던 것 같다. 해서 자신은 다른 이들과 다르게 율법을 다 지켰고 , 그런 면에서 흠이 없음을 나타내었고 , 어쩌면 주위의 군중들이 그것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헌데 예수님은 그 청년의 가장 핵심을 찔렀다. 그 청년의 가장 약한 고리는 재산이었고 예수님은 그것을 버리라고 하셨다. 청년은 그 말을 듣고는 슬프게 돌아갔다 ... 뭐 그런 얘기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이 하신 얘기가 충격적이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들어가는 것 보다 어렵다고 하셨다. 이 얘기는 주위에 매우 큰 충격을 주었다. 왜냐구? 구약시절에는 사실 내세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현세에서 복을 누리는 것을 뜻했고 , 가장 확실하게 하나님으로 부터 축복받았음을 나타내는 것이 부유해 지는 것이었다. ( 이래서 유대인들이 돈을 좋아하나? )
헌데 구약의 가르침과 기준으로 부유하다는 것은 하나님으로 부터 축복을 가장 크게 받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인데 , 예수님은 그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라고 말씀을 하신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물은 것이지 ... "그럼 데체 어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까..." 라고
뭐 이 말씀에 대해서 아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수 있지만 필자는 맨 마지막에 예수님이 남긴 말씀에 주목하고 싶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시다" 라는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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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청년은 자신의 가장 약한 지점을 찔렸다. 그건 확실하다. 아마도 그 약한 지점을 예수님은 알고 찌르신것이 분명하다. 사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바울 요한 베드로 야고보 ... 같이 성경상에서 꽤 잘나가고 괜찮은 인물과 유사하다고 생각할른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오히려 성경상에 나타나는 부자청년 , 거지 나사로 , 우물가의 여인 ... 이런 사람들에게 많은 동질성을 느끼곤 한다.
사실 예수를 믿고 살아간다고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제발 이것만큼은 하나님 건드리지 마세요' 라고 이야기 하는 것들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지위 ... 명예... 재산 ... 평판 ...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자녀가 될 수도 있겠다. 헌데 예수님이 바라시는 것은 명확했다. '그것을 내려 놓을 수 있어야 한다' 라는 것이지.
그 시점에 들어가면 너무 무거운 것을 들고 있으면 내려놓기 어렵지만 , 조금 가벼운 것을 들고 있으면 내려 놓기가 용이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씀이 아닐까 한다. 해서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것을 내려놓는데 비교적 가볍게 움직일 수 있지만 , 부자청년과 같이 가진 것이 너무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그것들을 내려놓기가 어려울 수 있다 ... 라는 메세지를 필자는 느낀다.
정말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려고 했던 메세지는 '하나님을 네가 의지하고 자랑하는 재산보다 우위에 두어라' 가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하고 싶다. ( 뭐 이건 개인적인 묵상이니 당연히 오해의 여지는 있지만 어쨌거나 말이다. ) 그리고 하나님은 네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라는 얘기로 마무리 하신 것 같더라는 그런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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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성경에는 부유하지만 하나님의 충실한 종이자 제자로서 살아간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초대교회가 존속할 수 있도록 자신의 집을 과감하게 열어 개방했던 마가가 그러하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동산을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모여서 삶을 공유할 수 있도록 기꺼이 기증했던 바나바도 그러하다. 바울이 세운 교회들 중에서도 그 지역의 부유한 자들이 바울을 도와 자신의 집을 기꺼이 예베의 장소로 내어주고 , 경제적으로 바울을 후원했던 사실들이 많이 나타난다. 대표적인 인물이 빌립보 교회를 세운 루디아 되겠다.
이들과 부자청년의 차이점은? 하나님이 자신의 재산보다 먼저였다는 것이다. 자신의 재산을 하나님을 위해 쓰는 것을 마땅하게 여겼고 또한 그것을 기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만일 예수님이 마가나 루디아에게 나타나서 '너는 오늘로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을 다 정리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 너는 나를 따라서 쌩고생을 좀 해야겠다' 라고 하셨다면 저들이 어떻게 했을른지는 잘 모르겠지만 ... 뭐 예수님 정도 되면 사람에 따라서 이 사람에게는 이말 하시고 , 저 사람에게는 저 말 하시더라도 상관 없는 일 아니겠는가 ㅎㅎ ( 누구 허락 받거나 , 누구에게 비판 받을 짬이 아니시지 뭐 )
필자가 투자에 있어서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태도"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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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투자라는 개념은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개념이다. 앞의 글에서 언급하였듯이 ... 투자는 결국은 빚이다.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는 , 그에 따라 적절한 이자 또는 배당 ... 을 나눠주고 또한 적절한 권한을 나누어 준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축적한 자산으로 과거 한 두 사람이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세상에 있어서 유의미한 일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가진 조직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다.
여기서 필자는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힘"에 주목하고 싶다. 투자를 통해 만들어진 조직은 단순히 이윤만을 추구할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그 조직이 하는 일은 세상을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 형태로 동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들면? 주식회사의 기원을 흔히 동인도회사 ... 로 보는 역사학자들이 많은데 , 이 동인도회사 같은 경우는 그 자체가 무력을 갖추고서 동양의 부를 털어먹는 형태로 행동한 경우들도 꽤 많았다는 얘기다.
헌데 여기서 인간의 속성 하나를 떠올릴 수 있는데 ... '간접적으로 행해지는 폭력은 인간의 양심을 둔하게 만들 수 있다' 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내가 회사의 경영자인데 , 수익을 극대화 하고자 직원들을 폭압으로 다그쳐서 쥐어짜고 또 짜는 일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 내가 어떤 회사에 투자자로 나서서 투자를 하고 경영자에게 실적을 압박하고 , 그 압박을 받은 경영자가 직원들을 쥐어짜고 또 짜는 일이 벌어졌다면 나는 상대적으로 양심의 가책을 덜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헌데 잠깐. 만일 이런 일이 벌어져서 직원중의 하나가 쥐어 짜이고 짜이다가 망가지는 일이 발생되었다고 셈 치자. 자신이 사장으로 직접 쥐어짜는 일을 행한 경우에는 아마도 크게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투자자로 나서서 경영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쥐어짠 경우에는 '나는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기에 내 잘못이 아니다' 라는 태도가 가능할 수도 있을거다. 헌데 ... 그런 경우가 정말 나에게 아무런 죄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필자는 이 명제를 놓고서 생각해 보니 딱 떠오르는 인물 한명이 있다. 본디오 빌라도 ... 그는 직접 예수를 죽이지는 않았다. 그냥 유대인들의 등쌀에 못이겨서 정치적으로 결정을 내려 주었을 뿐이지 예수에 대해서 그는 일말의 존경심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빌라도는 아직까지도 사도신경을 통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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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라는 것은 단순히 수익을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투자는 세상을 바꾸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세상을 유의미하게 뒤흔들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내가 투자한 금액이 어떤 일을 만들어 내는지에 대해서는 한번쯤 생각해 보고 투자라는 것도 하는 것이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에게는 필요하지 않을까 ...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일이라면 수익률이 잘 나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기꺼이 투자를 할 수 있는 마음. 그리고 투자의 대상이 제 아무리 많은 수익을 가져온다 하더라도 그 대상이 세상에 끼치는 영향력이 선하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을 경우에는 고수익을 포기할 수도 있는 마음 ...
이것이 어쩌면 부자청년이 가지지 못했던 마음이 아닐까 한다. 자신의 재산보다 하나님을 더 위에 놓을 수 있는 마음. 그리고 자신의 재산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되어질 수 있게 그 가능성을 열어 놓는 마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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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정말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단순히 수익을 위해 투자를 하기에 앞서서 ... 하나님 이 투자가 하나님 앞에서 선한 투자이기를 바라는데요 ... 이 투자를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요 ... 만일 하나님이 옳지 않다고 하시면 언제든지 거둘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투자라면 이익이 적고 심지어 손해를 보더라도 기꺼이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게 저의 투자가 과연 바른 것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주세요 ...
라고 기도하고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조금 더 우리는 하나님이 바라는 삶에 가까와 지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