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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늑대 May 22. 2018

소수를 위한 변화에 대한 인간의 반란은 무죄(2)

4차 산업혁명은 허구다 (5)

"보수 ( 정치적인 의미에서 진보와 보수를 나눌때 그 보수를 의미합니다 ) 의 진정한 의미는 가치있는 것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디서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필자는 이것이 정말 정곡을 찌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나름 진보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지인들과 이야기 해 보면 보수적인 성향도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그리고 필자는 그것이 그렇게 듣기 싫지도 않고 그러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필자의 성정과정은 보수적인 가치관으로 가득차 있었으니까


사실 우리나라에 정치적인 보수층이 지금 거의 온전하지 못한 상황이라서 그렇지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는 보수적인 분위기에 가깝다. 그리고 보수와 진보가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자신의 생각이 짧다고 생각했다면 돌이키고 상대의 이야기가 일리있다고 하면 받아들이는 태도가 사회 전반적인 상식과 통념이 되기를 필자는 바라고 있다. 너무 꿈이 큰 지는 모르겠다.


왜 보수의 이야기를 꺼내었는가? 인간은 지킬 가치가 있는 것을 지키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커다란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일때는 거기에 자신의 목숨을 걸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하는 자들이 모여서 결사적으로 저항하는 상황에서는 그들의 단결을 깨지 않고서는 좀처럼 그들을 굴복시킬 수 없다. 이것은 인류의 수 많은 전쟁의 역사에서도 배울 수 있는 지혜이다.


이전 글에서 비즈니스 리엔지니어링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기업의 업무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획기적인 개념이었다고, 그것을 통해 기업은 획기적으로 업무속도를 올릴 수 있고 또한 인건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고. 그리고 그것의 구현을 위해 기업은 수 많은 자원을 투입했다고 하지만 비즈니스 리엔지니어링은 거의 대부분 실패했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이 그것을 원치 않아서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경영자가 원했지만 직워들은 그것을 원치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시스템으로 이전시키는 일을 의미했으니까.


비즈니스 리엔지니어링은 업무의 시작부터 끝을 한사람 또는 소수의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진다. 예를 들어서 아파트를 건축하고자 할때 토지의 구입에서 준공허가 까지의 모든 과정을 한 사람 또는 소규모의 팀 하나가 다 맡아서 처리하는 경우에 비유할 수 있다. 당연히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에 대해서 훤히 꿰고 있을 터이고, 이 부서 저 부서로 서류가 오가는 일이 적어지니 업무속도는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단 이러한 경우 일의 단점은 모든 업무의 과정에 필요한 전문적인 지식과 노하우를 한 사람이 다 가지고 가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토지구입에 대한 노하우, 업체 선정과정에서의 전문적인 지식, 건축 과정에서 필요한 법률 절차에 대한 지식, 아파트 건축 과정을 검증하기 위한 지식... 아파트를 만들기 시작해서 마무리짓기까지 거기에 필요한 각종지식을 한 사람이 모두 가지고 있는 경우가 흔한 경우가 아니다. 이러한 경우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꼼꼼한 업무매뉴얼과 잘 짜여진 시스템이다. 업무매뉴얼과 시스템의 도움으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서 소수의 인원으로도 아파트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되는... 그런 개념이 비즈니스 리엔지니어링이다.


과거의 경우라면 재정부, 법무부, 조달부, 인적자원부 ... 등등으로 전문 지식분야에 따라서 부서가 나눠지고, 아파트 하나를 건축하기 위해서 이 부서에서 저 부서로 서류가 날라다니고 부서간의 알력관계에 업무가 지지부진해지는 통에 시간을 허송하는 일이 수두룩하게 벌어지게 되었겠지만 비즈니스 리 엔지니어링은 이러한 모든 부서의 역할을 하나의 소규모 팀에 몰아 넣게 되면서 그러한 비효율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사람들이 싫어하는거다. 만일 자신이 아파트의 허가에 관련된 핵심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친다면, 자신만이 가진 그 노하우를 기꺼이 업무메뉴얼과 시스템에 기증하려고 할까? 아니면 정말 핵심적인 가치는 자신만의 것으로 남겨두고는 회사에서 욕먹지 않을 정도로만 자신의 노하우를 회사와 시스템에 넘겨주는 쪽을 택할까?


이건 볼것도 없다. 명백하게 후자를 택하게 된다. 당연하다. 자신이 모든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개하게 되면 회사는 더 이상 이 사람을 데리고 있을 필요가 없어진다. 한마디로 토사구팽 (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보신탕이 된다 ) 이라는 옛말과 똑 같은 상황이 된다.


그리고 실제로 비즈니스 리엔지니어링은 대량의 해고를 반드시 동반할 수 밖에 없다. 이전글에도 이야기 했지만 500명이 하던 일을 5명이 하는 수준의 혁신이 일어난다고 적었다. 그렇다면 아무리 구조조정을 잘 하더라도 반드시 해고자는 나올 수 밖에 없다. 한마디로 직원들은 자신들의 밥줄이 끊기는 것을 뻔히 보고서 그 일에 협력해야 한다는 얘기다.


자신이 회사에서 해고시키고자 하는 프로젝트에 전력으로 협력하라? 이게 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건 자신의 인생이 걸린 문제이자 나아가서는 가족들의 생활이 걸린 문제이다. 한마디로 목숨을 걸고 막아내고 지켜내야 할 개념이 된다. 그러면 사람은 당연히 저항한다.


해서 비즈니스 리엔지니어링은 최고경영자의 강력한 리더쉽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한다. 아니 최고경영자의 강력한 리더쉽이 있더라도 실패확률은 대단히 높다.


여기서의 역학관계를 따지면 직원들이 훨씬 더 절박하다. 사실 경영자는 자신의 실적을 높이고 명성을 쌓고자 하는 의도이지만 여기에 반발하는 직원들은 자신의 경력과 가족의 안위를 걸고 반발하게 된다. 이 정도면 무게의 중심은 직원들에게 걸린다. 더군다나 회사의 최고경영자가 사람들에게 지지를 얻고 신망을 얻기를 좋아하는 ( 한마디로 욕먹는 것을 싫어하는 - 우리나라 경영자들은 대체로 욕먹는거 싫어한다. 하물며 저주라면 더하지 )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이 싸움은 보나마나의 결과를 가져온다.


결과는 달콤하게 보이지만 수 많은 사람들에게 피바람을 몰고올 만한 일이기에 많은 비즈니스 리엔지니어링 프로젝트는 외부 컨설팅업체에게 의뢰하여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헌데 이 부분에서 맹점이 생긴다. 자신을 직접 고용하고 있는 경영자에게는 대놓고서 저항하기 어렵지만 ( 찍히면 그것도 죽음이니깐 ) 외부 컨설팅 업체라면 얘기가 틀리다. 마음놓고 저항하고 사보타쥬도 서슴치 않는다.


그리고 회사 안에서 서로 옥신각신하던 사이도, 서로 경쟁하면서 견제하던 부서들 끼리도 이 상황에서는 철저하게 단결한다. 이건 서로 모여서 회의를 하지 않더라도 이심전심... 서로 '여기서 저 컨설팅 업체가 하는 일을 반드시 실패시켜야만 우리가 산다' 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게 된다.


당연히 컨설팅업체와 기존의 조직들은 반목한다. 교묘한 사보타쥬가 이어진다. 컨설팅 업체와 회사의 조직은 둘 다 못해먹겠다고 최고경영자에게 하소연한다. 여기서 최고경영자는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회사의 조직들도 지키고자 했던 가치를 지켜내는데 성공한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가 그랬다. 비즈니스 리엔지니어링은 미국같이 해고가 일상화 된 나라에서도 대부분 실패했다. 다만 소수의 성공사례가 존재했는데 그 경우는 "정말로 회사가 도산위기에 몰려서 해고는 당연하게 발생할 수 밖에 없고, 여기서 인건비를 줄이고 업무를 혁신하지 않으면 다 죽을 수 밖에 없다" 라는 절박한 경우에 이르렀을때 비즈니스 리엔지니어링은 성공했다.


결국 변화라는 것이 윗대가리 몇몇의 이상에 의해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역사를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 엔지니어 몇몇이 기존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난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기존의 사람들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해칠 위험을 가지고 있다면 사람들은 그 새로움에 저항할 것이다. 그것도 아주 치열하게 저항할 것이다.


물론 이런 혁명적인 개념이 손쉽게 성공한 적도 있다. 초기 영국의 산업혁명이 그랬다. 당시에 영국의 농촌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자본가 계급에게 땅을 빼앗기고 그 땅에서 양을키워 양모를 공급하고는 그 양모로 천을 만드는 공장에 노동자로 들어가는 일을 당했다.


그리고는 평균수명 20세 , 영아사망율 80%라는 극악의 빈곤을 강요당했다. 그 반면에 그러한 착취를 발판으로 영국은 자본가들의 귀족문화를 꽃피웠고 거기서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식민지 찬탈에 나섰고...


하지만 지금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손쉽게 농민들의 삶을 송두리채 뒤바꾸고 소수의 자본가들이 원하는 세상으로 바꾸어 낼 수 있을까? 필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이미 많이 알아버렸다. 여기서 밀리면 나와 가족의 비참한 삶 밖에는 남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영국의 초기 자본주의에서 인간이 처하는 처절한 현실 위에 자신의 이론을 정립했다. 자본가들이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서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농민들을 착취할 수 밖에 없는 것인지에 대한 이론을 정립했다.


아마도 당시의 영국의 농민들은 산업혁명이라고 하고, 증기기관차 증기기관 같은 것들이 만들어지면서 이러한 것들이 자신들이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도구가 될 것으로 기대했을것 같다. 하지만 그것들은 자신의 삶을 잡아먹을 괴물이 되었고 그 때문에 영국의 노동자들은 비참한 삶을 살다가 혹사와 병으로 죽어갔다. 솔직히 필자가 느끼는 인공지능에 대한 인상은 이러하다. 필자의 주위에서도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할 거라는 기대를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인간은 인공지능 때문에 비참한 존재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는 경계심만 가득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인생을 아니 목숨을 걸 수 있다. 더군다나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한 일도 할 수 있다. 그런 절박함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조금의 틈새가 벌어졌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명분으로 강하게 결속하고 단합하여 변화를 거부하게 될 것이다.


얼마전에 테슬라 자동차가 자율주행 시험 도중에 자동차 사고를 내서 사람이 죽는 일이 벌어졌다. 아마도 이런 일은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을때마다 사람들은 인공지능 시스템에 대해서 반대할 것이다.


앞으로는 드론이 날아다니게 되겠지만 반면 드론이 갑자기 고장을 일으켜서 사람들의 머리위로 떨어지고 사고를 내는 일도 벌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명분을 계기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하늘에서 드론을 몰아내고자 할 것이다. 보험회사는 드론에 의한 피해에 대해 보상을 거부할 것이다. 그러면 드론회사는 투자대비 이윤이 급감하게 된다. 그러면 파산이고 드론은 하늘에서 사라진다.


이러한 일은 기술혁신에 반발하는 수구적인 행태라고? 천만에 누가 자신의 삶을 비참하게 몰아갈 수 있는 개념을 쌍수들어 환영하나? 이건 당연한 권리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그런 것을 관철시키라고 민주주의가 있는 것이고...


예전에 이세돌이 알파고와 대국을 하면서 연전연패로 내몰리자 인터넷 게시판에 누가 "화가나서 집에 있는 로봇청소기를 발로 차버렸다" 라고 글을 올리니 수 많은 공감하는 댓글들이 올라왔다.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이러하다. 인공지능 같은 개념은 이미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삶을 위협하는 존재로 각인되어있다.


지금 4차산업혁명을 이야기하면서 이것을 사람들은 환영하는 분위기인가 아니면 어떤 조그만 명분만 있더라도 거부할 분위기인가? 이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느끼는 분위기는 후자이다. 이러면 조그만 명분에도 사람들은 이심전심으로 단결하여 변화에 거부의사를 밝힐 것이다. 그러면 변화는 물건너 간다. 그런 식으로 거부된 변화의 역사는 넘치고 넘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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