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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늑대 May 25. 2018

변화를 가로막는 건 사람의 자존심이다

4차 산업혁명은 허구라는 화두에서 잠시 떠나서 다른 얘기를 좀 하고자 한다. 사실 어떤 화제를 가지고 이야기 하든 필자의 이야기는 이어져 있는 경우가 많으니 아마도 새로운 화제를 올리는 것이 큰 의미는 없을 것 같다.


오늘은 사람의 자존심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고자 한다. 아니 앞으로 미래에는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하게 되고,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마당에 왠 자존심 같은 구닥다리 이야기를 꺼내나 싶겠지만 필자의 느낌에는 이 자존심이라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고 특히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자존심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다. 그리고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역사의 흐름에서 밀려나게 된다.


이게 아마도 이번 글의 주제가 될 것 같다. 분명히 필자는 이전 글에서 "소수를 위한 변화를 다수가 거부하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라는 이야기로 글을 쓴 바 있다. 헌데 오늘은 이전의 그 글과는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글을 쓴다.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말이다.


사실 변화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개념이다. 서양철학의 변증법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며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은 변한다" 라는 사실 뿐이다... 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필자는 이 변증법의 논리에 지극히 공감하고 있다.


모든것은 자체적으로 어느정도의 모순을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고,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모순은 그 모순을 해결하고자 하는 외부의 자극과 합해져서 변화되어진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게 되는데, 이 때에 만들어진 새로운 개념도 완벽한 것은 아니고 또 자체적으로 모순을 가지고 있기에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정-반-합 원리는 역사와 현상을 이해하고 예측하는데 있어서 매우 유효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구지 변증법까지 논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과거에는 맞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현 시점에서는 틀리고, 과거에는 틀리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현재시점에서는 옳게 여겨지는 것들을 숱하게 경험하고 산다.


즉 인간에게 있어서 변화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같은 것이고 다만 그 변화를 선택하고 거부하는 것들은 각자의 판단의 몫으로 남게 된다.


물론 거부되어지는 변화도 있다. 모든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은 반드시 지켜 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지킬만한 가치가 높지 않다고 판단되는 부분은 구지 지키기 보다 변화를 수용하는 쪽으로 나아가는게 맞다고 본다. 그리고 필자의 그런 생각이 아니더라도 낡고 현실에 맞지 않는 것들은 자연스럽게 도퇴되고 새로운 것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헌데 인간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자. 필자는 인간은 정말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정말 사소한 것 같은데 그런 사소한 것 하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태산을 옮기는 것 만큼 어려운 일이 되는 것을 필자는 자주 본다. 또한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그런 경우는 쉽게 관찰이 된다.


딸을 키우는 어떤 어머니는 딸아이는 외출할때마다 옷장에 있는 옷이란 옷은 다 꺼내서 입어보고는 정리하지 않고 나가는게 속상하다고 딸아이를 볼 때마다 그 부분을 지적하고 고치라고 했단다. 헌데 딸아이는 그 버릇 하나를 고치지 못하더라는...


필자도 강의할때 마다 강조하는 것들이 ... 제발 좀 적어라. 너희들이 생각하고 깨달음이 온 모든것들을 적고 적고 또 적어라. 그리고 그 적은 것들을 하루 하루 정리하고 다듬고 수정하고 보완하여 그 노트를 보물처럼 여겨라. 그렇게 해서 몇년만 너희들이 생각하고 깨닫고 시도하고 반성한 내용을 적은 노트가 모이게 되면 그건 너희들의 실력에 대한 기록이 된다. 그게 포트폴리오다. 괜히 따로 포트폴리오 만들 생각하지 말고 노트 가지고 다니면서 제발 좀 수업을 들으면서 너희들이 공부하고 깨닫고 생각하는 것들을 적어라... 라고 이야기 한다.


필자는 이것만 되면 인생이 바뀔것이라고 확신한다.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고 의문을 품과 깨달은 모든 내용을 노트로 만들고 그 노트를 계속해서 리뷰하면서 또 적고 보완하고 발전시키는 습관을 갖는 것... 헌데 이거 하나를 제대로 습관으로 정착시키지 못하는 경우를 수두룩하게 봤다. ( 실은 필자의 교실에서 이런 노트를 못 만들어 내는 수강생이 더 많은 경우도 있었다 )


사실 공부는 습관이다. 습관적으로 공부하고 공부한 것을 응용하고 적용하고 ... 그것이 되면 알아서 자기 길 간다. 헌데 요즘은 학원에서 요약노트를 강사가 알아서 복사해서 나눠주면 그것만 달달 외워서 공부해서 시험치고는 다 까먹어 버리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다니 통탄할 노릇이다.


사실 공부를 하면서 성적보다 더 중요한것은 지식을 대하는 감성이다. 어떤 개념은 공부하면서 확 와닿고 어떤 개념은 잘 와닿지 않는다. 어떤 개념은 쉽게 수긍이 되고 어떤 개념은 전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아 진다. 이러한 감성은 스스로 공부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고 본다. 그리고 그런 감성을 통해서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 싫어하는 일과 잘 하지 못하는 일 등을 발견하게 된다고 필자는 생각하고, 이러한 자기 자신에 대한 발견이 성적이 몇점이고 이것을 가지고 옆의 친구보다 좋은 대학을 가니 못가니 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헌데 이런 얘기를 수업시간에 해 주고 정리와 필기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면 당장은 수긍한다. 정말 내가 이걸 해야겠구나 하는 의지도 생긴다. 헌데 이것을 몇달동안 계속해서 유지시키는 건 정말 어렵다. 딱 몇달만 습관이 되고 그것으로 자신의 실력이 느는 것이 깨달음이 오면 그때 부터는 자동으로 되는데 그 습관 하나를 붙이기가 그렇게 어렵더라는 것이다.


얘기가 잠시 흘렀지만 ...  그런 사소한 것 같아 보이는 것 조차도 사람은 바꾸기 어렵다. 더군다나 나이들은 사람들은 더욱 어렵더라. 필자는 나이 25살이 넘어가면 바뀔것이 있고 바뀌지 않을 것이 있다고 믿고 있다. 해서 바뀌지 않을 것은 그냥 포기한다. 잔소리 해 봤자 내 입만 아프고 꼰대소리만 들을테니


헌데 머신러닝/딥러닝 기계는 다르다. 이 기계들은 자신이 경험하는 대로 동작한다. 한마디로 이들이 경험하는 데이터가 바뀌게 되면 이들은 다르게 동작한다.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지 않고 아무런 편견도 가지지 않고 주어지는 데이터를 사실 그대로 받아들여서 판단의 근거로 삼게 된다.


필자가 4차 산업혁명은 허구다... 라고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건 "세상이 죄다 뒤집어 질거야" 라고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한 거다. 마치 이것이 과거의 모든 기업과 교육등 인간생활에 관련된 모든것을 송두리채 새로운 것으로 바꿔 놓을 것이라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다분히 선동성이 농후한 구호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만 개별 기술에 대한 유효성은 인정한다. 특히 머신러닝/딥러닝의 유효성은 정말로 높게 인정하고 있다.


머신러닝/딥러닝 개념을 가진 컴퓨터는 인간이 가진 편견과 고집이라는 것을 부수어 버릴 수 있다. 아울러 누군가의 편견과 고집으로 인한 고통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얼마전에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글 하나를 읽었는데 중국에서 사람들이 정부에서 운영하는 사이트에서 머신러닝으로 학습된 컴퓨터에게 질문을 하면 대답을 얻는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질문의 내용은 지금 잘 기억이 안나는데 그 컴퓨터의 대답이 "중국을 떠나서 외국으로 이민을 가라" 라는 대답이 나왔다고 한다. 그 사실이 알려지자 중국당국은 서둘러서 그 사이트를 닫고 대책마련에 들어갔다는 얘기다.


아마도 중국당국은 그런 대답을 반기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은 세계의 강대국이고 중국은 자랑스러운 조국이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중국국민은 국가에 대한 사랑과 긍지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터인데 인공지능 컴퓨터는 그런 정서와는 동떨어진, 지극히 사실에 입각한 대답을 해 버렸으니 ...


필자가 가지고 있는 인공지능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 이런 부분이다. 머신러닝은 편견과 아집 고집 같은 인간이기에 가지고 있는 감성적인 부분에 휘둘리는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는 점. 이것은 또한 단점이 될 수 있다. 만일 어떤 연인들이 머신러닝 컴퓨터에 연애상담을 했는데 "당장 헤어지세요. 당신이 결혼하면 분명 시부모님과 심각한 갈등이 벌어질 것입니다" 라고 편견없는 답을 내놓았다면 이게 과연 긍정적인 요소만 있을른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그 중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자존심이다. 인간이 변하지 않는 것은 많은 부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우리는 변화되는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기존의 관념을 내려놓는 것을 많이 두려워한다. 새로운 것에 열광하는 성향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두려워하는 강한 마음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심리학의 영역이다. 단순히 기술의 영역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서 ... 며느리를 시집살이 톡톡히 시키는 시부모가 자신이 가진 생각이 고루하다는 생각을 안할까? 나는 어느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일 그것을 인정한다면 지금까지 자신이 시집살이를 하면서 견디고 인내해 온 모든 세월이 부정되게 된다. 자신이 지금껏 생각해 온 "나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 훌륭한 사람이다" 라는 자존심이 무너지고 "나는 미련하게 세상을 살았다. 인생 헛살은 멍청이다" 라는 생각을 받아들여야 한다.


앞서 이야기한 공부하는 습관을 바꾸는 부분에서도 필자는 대단한 소질이나 노력이 필요한게 아니라 단지 생각하고 정리하는 습관 만으로 많은 영역이 변한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데 의외로 아이들은 "내가 그렇게 간단한 것도 하지 않아서 지금 제대로 된 대학도 가지 못한 사실을 인정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해서" 엇나가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일본이 2차대전 후에 전쟁때는 "천황폐하를 위해 이 한 목숨 기꺼이 바친다" 라는 생각으로 살다가 패전이후에 "자살특공 같은 건 저질 멍청이 광신도스러운 일이다" 라는 식의 비아냥을 듣는 신세가 되면서 인생이 무너지고 폐인처럼 살아간 사람들이 수두룩하다는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다.


시대의 변화를 나름대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해서 심리학에 대한 연구가 반드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해서 플로이트는 불안한 감정이라는 것을 가지고 인간의 마음을 파헤쳤다. 필자도 그와 연관된 책을 통해 정말 소중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


사실 많은 변화는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명예롭고 자랑스러운 기억과 경험들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많다. 기존에 자랑스럽게 여기던걸 수치스럽게 여겨야 하고, 기존에 수치로 여기던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하고... 헌데 후자의 경우보다는 전자의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과거 "초가집도 없애고..." 를 명예롭게 여기던 시절에서 지금은 "초가집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좋은 것인데 그것을 다 없애고 발암물질인 석면을 올리다니 그거 미쳤지" 라는 개념으로 바뀌었는데 이것은 단순히 사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의 인생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해서 필자는 인간에게 변화를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이 가진 자존심을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에 대한 배려를 이야기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60대 이상의 연령에서 지나칠 정도로 보수정당에 대한 지지가 높은 것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변화가 자신들의 자랑스러웠던 과거를 깎아내리는 것을 견딜 수 없는, 즉 자존심의 손상에서 오는 감정" 때문에 벌어진 것은 아닐른지 한번 생각해 볼 만한 일이라고 필자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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