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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늑대 Dec 10. 2018

7대 3... 주류와 비주류가 공존하는 법칙

다양해야 산다. 획일적인 길로 가는 건 몰살당할 수 있다.

"실력을 향상시키는 교육과 변별력을 중시하는 대학입시 교육은 같이 성취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필자가 나름 내린 결론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대입은 거의 누더기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로 보여진다. 필자의 주위에서는 수능성적으로 대학진학을 하는 형태의 정시 진형의 확대를 바라는 학부모들이 많다. 하지만 현실은 정시진형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고 내신성적과 대학의 자율성이 중시되는 수시 전형의 폭은 점점 더 넓어져가고 있다.


사실 이건 어느쪽이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다들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게 존재한다.


정시 전형의 경우에는 비교적 공정하다. 국가에 의해 관리되는 시스템이니 만큼 입시부정이 틈탈 여지가 적다. 대신 획일적이라는 이야기는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서울의 명문학군 또는 자사고와 같이 상위권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분포하고 있는 학교에 유리한 부분이 있다.


수시 전형의 경우에는 다양한 가치를 담을 수 있다는 점이 있다. 학교는 자신이 받고자 하는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대신 과거 정유라에서 비롯된 것 처럼 입시의 부정이 틈탈 여지가 많다. 그리고 내신이 중요해지면서 고교생들은 3년 내내 대학입시를 치루는 것 같은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 거기에 각 학교별로 시험이 실시되는 관계로 내신성적에 부정이 또한 끼어들 여지가 있는 등의 단점이 있다. 대신 상대적으로 취약지역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가 가능한 부분이 있다.


각자가 너무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다. 여기서 생각해 볼 문제는 공정함과 다양함 둘을 모두 아우르는 하나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하나 하나 따지고 보면 그 가치는 소중하지만 절대 같이 가기는 어려운 가치 또한 존재한다.


그러면 만일 필자에게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묻는다면 아마 필자는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국공립대학은 수능 중심으로 공정성을 담보하는 형태로 가고 사립대학은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형태로 가는게 큰 그림을 봐서는 맞지 않습니까? 모든 물고기들이 한 방향으로 가는 그림을 그린다면 급격한 환경변화에 물고기들이 몰살당하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물고기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건 모험에 나서라고 강요할 수도 없어요. 모두를 한 방향으로 몰고가는 형태가 아닌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고 서로 존중되는 형태가 어쩌면 변화에 대해 가장 잘 적응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닐까요?"


그리고 아마 이렇게 못을 박을 것이다.


"미래를 주도한다는 것은 환상이고 허상입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그 누구도 모릅니다. 미래를 주도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미래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몰살당하는 것을 면하고 다음 세대에 온전한 환경을 물려주는게 중요합니다"


아마도 이런 얘기를 하면 국가주도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지향하는 사람은 그런 소극적인 방법으로는 크게 성공하거나 성취하지 못한다고 볼멘 소리를 할 수 있을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는 자신있게 얘기 할 수 있다. 그 누구도 미래를 주도할 수는 없다. 라고


예를 들어서 지금 머신러닝이 뜬다고 하지만 당장 올해 안에 머신러닝이 심각한 한계를 드러낼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요즈음 다시 LP판이 각광을 받는 것 처럼 서당에서 경륜높은 훈장선생님에게 교육을 받는 형태가 최고의 교육형태라고 칭송받게 될 수도 있다.


이것은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다양성에서 가능한 일이다. LP판을 가치를 아는 사람들은 CD와 MP3가 주도하는 환경에서도 별종처럼 LP디스크를  모으고 오디오를 지켜냈다. 모두가 아이팟을 사기 위해 오디오를 파는 환경에서도 그들은 좋은 오디오와 스피커를 사들이고 그것의 가치를 발견하고 사람들 속에서 옛날방식이 가지는 가치를 조용히 전달하고 있었다. 이것이 기회를 만나면 뜨게 되는거다.


20년 전 모든 음악이 디지털음원으로 갈 것이라고 이야기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아날로그 음악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단언했지만 실상은 현재 다시 아날로그 음악은 부활하고 있다.


필자는 얼마전에 오랫동안 소장하고 있던 8트랙 아날로그 릴 레코더 한대를 전문가에게 양도했다 ( 물론 돈 받고 ) 그 전문가로 부터 많은 얘기를 들었다. 현재 오래된 옛날 녹음장비들은 다시금 각광받고 있다고. 그 따뜻하고 박력있는 음색은 디지털로 재현이 불가능하기에 록과 재즈 같은 ... 사람의 숨결이 그대로 드러나야 하는 음악에 아주 제격이라는 설명도 그 과정에서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코딩교육도 그러하다. 필자는 분명 대량생산되는 교육에 반대한다. 그러한 교육을 통해 진정한 실력이 만들어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존재한다. 하지만 대량생산형의 교육이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분명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수요가 존재하는데 대량생산형 교육이 아니고서는 그 수요를 맞추는 데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자의 경우에 가장 좋은 교육성과를 거둔 패턴중이 하나가 "대량생산형 교육을 한번 경험하고 난 다음에 필자의 교실에서 필자의 교육을 받은 학생" 이었다.


그들의 경우에는 일단 많은 질문거리를 가지고 들어온다. 그들의 속에는 해결되지 않은 의문거리가 가득 있었다. 그리고 과거의 교육기간을 통해서 배워야 하는 내용에 많이 익숙해져 있었다.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겁 없이 배움에 달려들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열려있고, 그것은 매일매일의 트레이닝을 견뎌 낼 수 있을 정도로 몸과 두뇌가 충분히 준비되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지나가는 말 : 사실 필자의 교실에서 수업이 온전히 되어지지 않는 이유들 중의 많은 부분이 사소한 것들이다. 예를 들면 영어 타자를 지판을 보지 않고 치는게 안되면 설명을 들으면서 동시에 코드를 만들 수 없게 된다. 거기에 프로그래밍에 발생되는 에러에 의해 심리적으로 주눅이 들어버리고 지쳐서 결국 수업을 못쫓아가게 되는 경우도 흔하다. )


필자의 생각에는 그러하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모든 제도는 장점과 단점이 존재하고 내부적인 불합리와 모순점 또한 존재한다. 하나의 방법으로 모든 사람을 통일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마치 모든 야구선수에게 동일한 투구폼과 동일한 타격폼을 강요해서는 곤란하다... 라는 생각과 일맥 상통하다고 본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가르침이 공존하는 체제가 가장 적합하다고 본다.


헌데 ... 현재 시점에서 과연 우리 사회는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말이다. 획일적인 방향으로 몰고가고 자신이 그 키를 쥐면서 "내 눈에 거슬리는 사람들은 모두 후회하게 만들어 버리고 먹고 살기 힘들게 만들어 버릴거야" 라는 식의 광풍에 쓸려가게 하는 사회가 아닐까... 아는 생각을 필자만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성이 훼손되는 경우를 볼 수 있지만 특히 교육쪽에서도 그런 경향은 많이 보여진다. 가장 대표적으로 그런 획일성을 느끼는 경우가 NCS 라는 국가 표준형 교육의 권장이다.


필자가 나름 파악하기로는 이 NCS는 취업교육을 넘어서 다양한 교육현장에 적용시키기 위해 나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 제도는 독일의 직업교육제도를 벤치마킹했다고 전해지고 심히 복잡하고 복잡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 해서 NCS 제도에 부합하는 형태로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서 교육기관은 따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 필자도 그 교육을 다녀오기도 했고 )


사실 이 NCS 교육은 필자 개인적으로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공개적으로도 이 교육이 가지는 헛점에 대해서 이야기 한 경우도 많다.


회사에 따라서는 "우리회사는 말 잘하는 사원들을 선호합니다" "우리 회사는 밥을 빨리 먹고 청소를 잘하는 사원들을 선호합니다" 와 같은 나름의 선발기준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허다할텐데, NCS는 이러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NCS교육을 이수한 사람이라면 그냥 같은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다분하다. ( 아니 대졸자가 다 똑 같은 사람이냐? 그렇게 만들고 싶냐? )


그리고 어떻게 공무원과 몇몇 자문위원들이 해당 산업의 모든 교육과 지식내용의 체계를 파악하고 있느냐는 말이다. 그래놓고 그것에 부합하는 교육만 실시해야 한다고 강요하는게 말이 안된다고 필자는 이야기 하고 다닌다.


예를 들면 NCS 교육에 맞추어 강의를 구성할때 설계/분석 같은 부분은 가장 상위지식으로 분류되어 있다. 문제는 하위지식에 대한 강의를 클리어하고 난 다음에 상위지식에 대한 강의를 들어갈 수 있다는 식의 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 이게 어떤 현장에는 그럴듯 해 보이지만 필자의 입장에서는 말도 안되는거다.


정말 제대로 된 프로그래머를 양성하려고 한다면 자기 코드에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은 나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스스로 설계하고 구현하고 그리고 그 구현된 내용이 현장에서 제대로 동작할 수 있도록 수정하고 향후 변화에 적응하도록 유지 보완해 나가는 능력은 필수다.


헌데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단계에서 설계를 가르치면 불법이 된다. 따라서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 이게 말이 되느냐는 말이다... ( 참고로 NCS 제도에 근거한 교육 커리큘럼은 정부의 심사를 받아야 하고 그 심사에 통과된 과정만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 )


결국 이런 제도는 나라에서 실업자들을 위한 취업교육을 지원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지만 교육의 다양성을 결정적으로 훼손한다. 예를 들어서 NCS에 의거해서 판에 박은 듯이 똑 같지만 정부지원금에 의해 거의 수업료가 없는 강좌가 있고, 어느 도사 개발자에 의해서 설계되고 운영되지만 NCS 기준에 맞지 않아서 정부지원을 받지 못해 수업료가 200만원 정도 들어가는 강좌가 있다면 ... 정부 지원금의 유무에 따라 후자의 강의가 굉장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 아닌가?


NCS 같은 제도가 지향하는 것은 다양성이 아니다. 정부의 힘을 가지고서 자신이 원하는 교육만 존재하게 만들고 싶고, 자신이 거기에서 왕노릇하고 싶어하는 심뽀가 존재한다는 생각을하게 된다. 헌데 그게 과연 모두를 위해 바람직한 일일까?


차라리 정말 도사급 프로그래머로 날리던 사람이 은퇴해서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마치 과거의 서당에서 학동들을 모아서 가르치던 식으로 정해지지 않은 유연한 커리큘럼으로 학동 한 사람 한 사람을 깊이 인격적으로 만나고 대하면서 자신이 가진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하는 ... 그런 학당같은 교육이 존재할 수 있다면 NCS 와 그런 학당같은 교육이 공존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길이 아닐까?


헌데 이 모든 바램은 그저 필자의 바램일 뿐이고 아직까지 대한민국은 정부가 정해주는 길만 따라가야 그나마 정부로 부터 떨어지는 떡고물이라도 받아서 연명이 가능하고, 따라서 모두가 가는 길만을 따라가는 사람만이 먹고 살기 편한 세상으로 되어지고 있는 듯 하다.


코딩교육도 마찬가지다. 코딩교육을 정규 교과목에 포함시키고 대학입시에 포함시킨다는 얘기가 나온 다음 필자는 직시했다. 코딩교육도 조만간 사장되는 길에 접어들겠다... 라고 말이다.


아니 끽해야 한해 40시간 수업도 안들을 테고 그 정도면 밥만먹고 코딩만 하면 일주일 공부하는 분량정도 밖에 안되는데 그거 배워서 뭐 대단한 결과를 얻겠다는 건지... 그 정도 시간이면 그냥 맛만 보는 건데 아니 맛만 보는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변별력을 들이대서 애들이 대학에 붙고 떨어지는 일을 만들어 버리겠다고라? 그런 식으로 애들 창의력 잘도 만들어 지겠다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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