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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늑대 Dec 09. 2018

진짜 교육을 하고 싶다면 들어줄 시간부터 만들어라

소설 모모의 주인공에서 배우는 교육의 방향성

독일의 작가 미하일 엔데가 지은 모모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다. 사실 동화같은 이야기지만 그 내용이 의미하는 무게감은 어른들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설로 손색이 없다. 필자는 이 모모라는 제목의 소설에서 "어떻게 프로그래밍을 가르칠 것인가" 에 대한 답의 실마리를 찾았다. 그러기에 한번 같이 필자의 생각을 나누어 보고자 한다.


먼저 소설 모모...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그 소설의 대략략적인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다.


모모라는 소녀가 있다. 고아로 추정되는 이 소녀는 어느 날 마을 사람들에 의해 발견된다. 마을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기 시작하면서 이런 저런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모모는 자신의 의지로 마을 외각의 석조극장에서 혼자 살게 된다.


이 모모에게는 굉장히 뛰어난 재주가 있는데 그것은 "경청"하는 능력이다. 듣는 것이 쉽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실은 듣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모모가 가진 경청하는 능력은 매우 뛰어나서 단순히 듣는 수준을 넘어선다.


"모모는 상대방이 이야기 하다가 어느틈엔가 스스로 답을 깨우치게 만들거나 비밀은 털어놓게 만드는 수준의 경청 능력을 보여준다."


헌데 이 소설에서는 회색신사들이라는 악당집단이 등장한다. 그들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 시간을 쓰는 것은 매우 의미없게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마을 사람들을 선동한다. 해서 남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대신에 자신들의 거짓말에 귀를 기울이게 만들고 그것을 빌미로 사람들로 부터 시간을 훔쳐내려고 한다.


이 이상의 자세한 얘기는 직접 책을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필자는 우리네의 교육정책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마치 회색신사들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이 말하는 얘기에 사람들이 일제히 귀를 기울이기를 원하면서 화려한 언변을 늘어놓는다.


이렇게 가르치고 이렇게 공부를 하면 아이들은 수재로 인정받게 될 것이고 나아가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적인 인재로 키워질 수 있으니까 지금부터 코딩을 해야하고 영어를 해야하고 수학에 대한 잠재성을 깨우쳐야 하고 과학에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말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우아하게 협박을 한다. "내 말을 따르지 않다가 미래사회에서 낙오해서 비참하게 살아가게 될 터인데 그래도 좋다면 뭐 맘대로 하세요"...


헌데 작중에 모모는 비범한 능력을 보여주면서 저 회색신사들과 반대측에 선다. 모모는 진지하게 들어주는 모습 하나로 말하는 상대방이 스스로 지혜를 깨우치도록 만들어 준다. 그리고 진지하게 들어주는 것에는 그런 힘이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소설의 내용을 일부 옮겨본다.


모모에게는 베프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나이든 도로 청소부인 베포이다. 베포는 모모에게 이런 얘기를 털어놓는다 ... 모모야 우리 앞에는 때로는 아주 긴 도로가 있는데 너무 길어서 그 길을 다 청소할 수 없을 것 같다고 ... 그리고는 한동안 앞을 바라보다가 다시 이야기를 해 나간다 ... 그러면 서두르게 된다고. 점점 더 빨리 서두르게 되어서 조금도 청소해야 할 분량이 줄어들지 않은 것 같게 되고 불안해 진다고 ... 그러다가 나중에는 숨이 막힐 듯 해서 더 이상 비질을 할 수 없는데 청소해야 할 길은 아직도 아득히 남아 있다고 ... 하지만 그래서는 안되는 거라고


생각을 정리한 다음에 베포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 쉬어야 하는 호흡. 다음에 할 비질만 생각 해야 한다고 ... 그러면 일을 하는게 즐거워지는데 그게 중요한 것이라고. 그러면 일을 잘 해낼 수 있다고


오랫동안 잠자코 있다가 베포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 긴 길을 다 쓸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어떻게 그랬는지도 모르겠고 숨이 차지도 않는다고 ... 그게 중요한 것이라고...


모모는 그저 듣고 있었다. 베포는 자신의 경험에서 스스로 해답을 찾아내었다. 모모라는 들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한 소녀 덕분에 말이다. 필자는 이 부분에서 감동이 찌르르 왔다.


사실 교육이라는 것... 가르친다는 것... 공부는 선생이 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이 해야 하는 것이 공부이다. 학생들이 배워서 실력이 향상되어야 하는 것이 교육이지 선생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교육이 아니다.


실제로 사람이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아닌지는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으로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깨닫게 된 것을 이야기 할 수 있을 때라야 그 사람은 진정으로 "성장"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자신이 깨닫지도 못하는 것을 그냥 달달외워서 이야기 하는 정도로 그 사람이 성장했다고 이야기 할 수 없다.


헌데 우리네의 교육을 한번 생각해 보자. 학생들이 배운 내용을 가지고 깨달음에 이르기 까지 학생들의 이야기를 과연 들어주는 모습이 있는가 말이다.


학생들에게 하나의 내용을 가르쳤으면 그 내용이 학생들의 머리에 제대로 이해가 되었는지 확인해 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학생들에게 적절하게 질문해야 하고 그 대답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 스스로 답을 찾고 깨우칠 수 있도록 들어주고 또한 대화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마치 모모와 대화하면서 베포가 스스로 답에 이른 것 처럼 말이다.


헌데 대한민국의 입시교육에서 그런 모습이 있느냐 하는 말이다. 오히려 학생들의 머리속에 구겨넣어야 할 수 많은 지식들을 쌓아놓고는 이렇게 윽박지르고 있는 것 아닌가? "이해가 안되면 걍 외워" 라고 ...


물론 암기해야 할 건 암기 해야 한다. 필자도 때로는 주입식 교육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고 주장하는 사람중의 하나다. 하지만 그건 필요할때 해야 하는 것인데 우리네들은 학생들이 스스로 답을 찾고 정리하고 말로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을 거의 기다려 주지 않는다. 오히려 지식을 자꾸 머리속에 구겨넣지 못해서 안달하지.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여기서 몇주만 공부하면 이정도 실력을 쌓게 된다고. 저비용 고효율의 속성 실력향상 코스를 선택하라고. 그렇게 하면 단 시일에 실력을 끌어올려서 상위 몇퍼센트 안에 드는 이이가 될 것이라고...


한마디로 필자는 이런 논리를 "지랄하고 앉아있네" 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교육에 있어서는, 그리고 교육 만큼은 저비용 고효율이라는 얘기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런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필자가 20여년을 컴퓨터 프로그래밍 관련 교육에 종사하면서 내린 결론이자 소신이 이거다.


"수강생 대량생산식의 접근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교육에서 없어져야 한다. 아니 적어 도 내가 가르치는 교실에서는 절대 대량생산식으로 아이들을 찍어내는 방법으로 접근하지 않겠다"


사실 교육에서 효율과 생산성을 따지는 것은 군대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신병훈련소에 입소시키고 짧은 시간에 민간인을 군인으로 만들고 위에서 하달되는 작전을 수행 할 수 있는 인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방법으로는 도저히 필요한 인력을 만들어 낼 수 없기에 '대량생산'의 개념이 도입되게 된다.


이것이 산업현장에 적용되게 되고, 또한 공교육에 도입되게 되면서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해서 마치 아이들은 시스템을 통해서 연령에 맞게 필요한 지식을 차곡 차곡 쌓아가는 형태로 배우게 되는데 ... 사실 이런 교육이 알게 모르게 장점도 있긴 하지만 대한민국의 이런 교육시스템은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고 생각한다. 어떤 한계냐고? 아이들이 감내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고 생각한다.


물론 공교육의 목적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능력을 갖추어서 직업을 가지고 수입을 올리고 세금을 납부하여 사회가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능력을 만들어 주기 위함이라면 대량생산식의 교육이 어느정도 필요한 부분이 있겠지만 ... 지금의 대한민국 입시교육은 그런 공교육의 목표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한마디로 지금의 대한민국의 공교육은 "애들의 등수를 매기기 위한 교육" 밖에는 안된다. 그리고 그 공부하는 내용도 사실 별반 먹고 사는데 도움이 안되는 내용들 밖에 없다. 사회에 나오면  "그래 공부하느라 수고했다. 애썼다. 헌데 돈 있으면 빵사먹어라" 정도의 취급을 받을만한 내용을 가지고 죽자사자 경쟁해서 "내가 남들보다 더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 하려고 하는 것 밖에는 안되는데 ... 아마도 사회생활 좀 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성균관대 나온 사람이 경희대 나온 사람보다 가치가 더 높나???


정말로 배운 지식을 깨닫고   깨닫고 그것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정도로 몸에 스며들기 위해서는 기다려 주어야 한다. 그리고 들어주어야 한다. 실수를 마음껏 하도록 독려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실수가 쌓이고, 질문이 쌓이고, 토론이 쌓이고, 공부가 쌓이면 어느 순간에 아이들은 스스로의 말로 자신이 깨달아 알게 된 사실을 이야기 하게 된다. 그 순간에 그 아이는 배운 내용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게 되는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 마치 저 소설 모모 안의 베포 처럼 말이다.


깨달음이라는 것이 그렇다. 자신이 스스로 깨달아 질 때 까지 방황하고 고민하고 시도하고 토론하고 절망하고 다시일어서면서 스스로 깨달아 지는 것이지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머리속에 구겨넣는다고 해서 그것이 깨달아 지지 않는다. 아마도 독자들 중에서는 중고등학교 시절 시험을 앞두고 당일치기 식으로 외워서 시험을 치룬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헌데 그렇게 해서 익힌 지식들이 과연 살면서 얼마나 기억나고 얼마나 활용하게 되던지 생각해 보라. 아마도 시험 치룬 그 다음날로 다 까먹게 되지 않던가?


헌데 대량생산되는 교육에서는 이 기다림을 만들어 줄 수는 없다. 그나마 과거의 대량생산형 교육은 그마나 널널한 시간이 있어서 그 시간을 활용해서 학생들은 자신이 배운 내용을 되새김 할 수 있었고 때로는 놓친 진도를 다시 원점부터 시작하면서 따라잡는 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은 한번 놓친 진도는 다시 따라잡는 건 불가능해졌다. 왜냐? 그놈의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렵게 문제를 내야하고 그렇기에 공부할 내용은 산더미 처럼 쌓여있는 상황에서 한번 놓친 진도를 어느 시간에 보완을 하나? 안그래도 매일 매일 학원에서 새벽에 들어오는 고등학생들이 대다수인 현실에서 말이다.


정말 제대로 된 교육을 하고 싶다면 일단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시간부터 확보해야 한다. 그렇게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스스로 부딛치고 실수하며 깨우치고 자신이 깨우친 사실들을 이야기 할 수 있을 시간을 만들어주어야 하고 그러려면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한다.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한 교육에는 그런 시간을 만들어 줄 여지가 없다. 더군다나 지금의 대한민국의 망가진 입시교육에는 그런 여지는 사치에 불과하다.


해서 필자는 나름 결론 내리고 있다.대한민국의 입시교육과 진정한 실력을 키워내는 교육은 양립할 수 없다...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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