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비학교 신규 기획 '벌들의 초대장' 릴레이를 시작하며
"큰일 났다. 도무지 설레지가 않아..."
'댄비학교'라는 커뮤니티를 시작한 지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꿀벌이 사라지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꿀벌에 대해 함께 공부하고자 댄비학교를 만들었다. 댄비학교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를 꿀벌 친구, '꿀친'이라고 부른다. 꿀벌로부터 시작된 움직임은 점차 우리와 연결된 모든 생명체로 확장되었다. 한 꿀친분은 댄비학교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연결된 모든 것들의 공존을 이야기하는 곳'이라고 정의하시기도 했다.
댄비학교의 주된 활동은 지속가능한 생태계 혹은 공존에 대해서 인사이트를 주실 수 있는 선생님을 모시고 강연을 듣는 것이었다.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님, 과천과학관 이정모 관장님, 그린디자이너 윤호섭 교수님, <남극의 눈물>을 연출하신 김진만 PD님, 싱어송라이터이자 작가 요조 님, <제4의 식탁> 저자 임재양 원장님, 문화잡지 PAPER 정유희 편집장님 외에도 수많은 분들이 기꺼이 댄비학교에 오셔서 지식과 영감을 나누어주셨다. 그렇게 1기부터 4기까지 진행된 수업이 20회 차가 넘는다. '이런 분들을 모시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니!' 지금 생각해도 참 감사하고, 대단한 일이다.
문제는 비슷한 포맷으로 매주 강연이 진행되다 보니, 서서히 매너리즘에 빠져갔다는 점이다. 다음 강연이 다가와도 두근거리지 않았다. 어차피 녹화본으로 다시 볼 수 있어서일까? 꿀친분들의 참여율도 점점 떨어져 갔다. 기획자인 나에게도, 이 커뮤니티에게도 위기라는 직감이 들었다.
집(?) 나간 벌들을 다시 불러 모을 신선한 기획이 필요했다. 꿀친분들께 피드백 설문을 받은 내용 바탕으로 조급하게 기획을 짜내기 시작했다. '마스다 무네아키가 말하길, 모든 기획의 시작은 고객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지만, 내가 비어있는, 누군가를 만족시키려는 기획은 막막하기만 했다.
스스로도 자신이 없었던 1차 기획안 발표 자리, 자문을 해주시는 아녜스 님께서 질문을 던졌다.
휫먼 님이 그 기획을 하면서 설레요?
막, 다음 스텝이 기대되고 빨리 무언가 하고 싶어져요?
아니, 설레지 않았다. 내가 설레지 않는 기획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설렐 수 있을까?
나를 더 파고들 필요가 있었다.
댄비학교를 하면서, 내가 가장 설렜을 때를 생각해 보았다.
자연 속에 있는 내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감사하게도, 댄비학교를 운영하면서 자연으로의 초대를 많이 받았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초대는 농부이신 꿀친 소나무, 블루비, 산소리 님이 계신 '달팽이텃밭'에 간 날이다.
지난 2월, 전국의 농부를 응원하는 '농부스트' 프로젝트를 진행하시는 가쥬 님의 기획하에 꿀친 16분과 단양 '말금마을'로 떠났다. 마을에는 상징 같은 큰 소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한 그루는 하늘을 향해 우뚝, 장엄하게 자라났고, 다른 한 그루는 누워서 옆으로 자라고 있었다. 200살이 넘었다는 나무를 안고 보니 그 기운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이 마을에 18살에 시집을 와 여든을 넘기신 할머니가 계시는데, 어린 시절에는 나무 위를 타고 놀았고, 또 그 앞에서 많은 눈물을 흘리셨다고 했다. 정말 이 나무의 힘은 대단해서, 나무를 처음 본 나도 이 앞에서 눈물을 흘릴 수, 아니 펑펑 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1박 2일 초대의 마지막 일정은 소중한 사람에게 손 편지를 쓰는 일이었다. 나는 냉전 중이던 엄마에게 편지를 적기 시작했다.
어제오늘 자연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갑니다. 비탈길을 힘겹게 올라가는데 초대해 주신 산소리 님께서 "지그재그로 올라가 보세요. 쓰는 근육이 달라져서 훨씬 덜 힘들어요."라고 팁을 알려주셨습니다. 진짜로 그렇더군요. 지금 제가 걷고 있는 20대도 느리게 도착할 것 같고, 때로는 빙 돌아가는 듯 보여도, 삶을 걸을 때 힘이 돼줄 근육들을 키우고 있는 시간 아닐까요? 못 미더워 보여도 응원해 주시기를 바라봅니다. 꽃처럼 아름답고, 나무처럼 단단한 엄마가 저의 엄마라 행복합니다. 늘 꽉 안고 있고 싶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보고 싶어요!
소중한 사람에게 편지를 쓰며 많은 분들이 눈물을 훔쳤다. 그때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자연은 용기, 위로, 공감, 영감, 생명력,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모든 감정을 품고 있는 공간일지도 모르겠구나.'
사실, 댄비학교 또한 자연 속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되었다. 벌들이 살고 있는 밀원지에 갈 때면 벌들의 고향에 초대를 받았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벌들과, 그곳의 자연과,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내가 연결되는 느낌.
"내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자연으로 사람들을 초대하고,
또 다른 이가 사랑하는 자연에 초대받는 경험을 나누면 어떨까?"
고독과 소외감이 점점 깊어지는 시기에, 자연 속으로의 초대가 주는 마법 같은 힘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당신이 사랑하는 자연으로 친구들을 초대하세요.
자연의 영감과 아름다움을 나누세요.
라는 문장을 시작으로 '벌들의 초대장' 기획이 시작되었다. 내가 초대하고 싶은 자연이 있다면 초대를 열면 되고, 가고 싶은 초대가 있다면 기쁘게 응하면 된다!
내 마음이 설레기 시작하자, 다른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획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신남이 말에 묻어나는지, 주위 사람들은 꼭 초대를 열겠다, 가겠다, 기획의 이름을 지어주겠다, 피드백해 주겠다며 갖은 방식으로 응원을 보내주었다. 덕분에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느끼고 있다.
첫 초대는 누가 열면 좋을까.
머릿속에 자연을 사랑하는 꿀친 한 분이 바로 떠올랐고, 서둘러 연락을 했다.
"그러면 제가 첫 초대 한 번 열어볼까요?"
대답은 흔쾌히 승낙! 설레는 벌들의 초대가 이제 시작된다!
우리 모두에게는 변화에 필요한 권위가, 힘이 있다.
지금 하는 일을 하면서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기만 하면 된다.
- <어떻게 일할 것인가> 안냐 푀르스터, 페터 크로이츠
'벌들의 초대장' 기획이 궁금하다면? 아래 소개글을 읽어보세요!
직접 초대를 여셔도 환영, 초대에 참여하셔도 환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