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양희 Dec 30. 2020

사라진 열흘

10월4일은 목요일이었다. 하지만 다음날은 10월5일이 아닌 10월15일 금요일이었다. 10월5일부터 10월14일까지 열흘간의 시간이 통째로 사라진 것. 거짓말 같지만 1582년 로마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현재 달력의 원형은 기원전 45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만들었다. 하지만 시저의 달력, 율리우스력은 1년을 365일 6시간으로 보고 4년에 한 번 윤년을 두면서 점점 자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 사이에 오차를 만들어냈다. 1600여년의 세월이 흐르며 벌어진 간극은 부활절 등의 날짜에서 대혼란을 초래했다. 결국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1582년 2월24일 예수 탄생일을 기준으로 하는 그레고리력을 반포했고 그해 10월4일 다음날을 10월15일로 하는 칙령을 내렸다.


그레고리력은 1년을 365일 5시간 49분 13초로 조정하고 4년에 한 번 윤년을 두되 100으로 나뉘는 해는 평년, 400으로 나뉘는 해는 윤년으로 했다. 율리우스력에서는 400년 동안 100번 오던 윤년이 그레고리력에서는 97번만 온다. 그레고리력도 자연의 시간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아서 3030년(혹은 7700년)마다 1일의 오차가 난다고 한다.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등은 로마와 같은 해에 그레고리력을 채택했고 영국은 1752년에 이르러서야 그레고리력을 시행해 그해 9월3일부터 9월13일까지 11일의 시간을 없앴다. 이 때문에 세르반테스(스페인)는 셰익스피어(영국)보다 열흘 일찍 사망했으나 각 나라 문서로는 같은 날(1616년 4월23일) 죽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러시아(1918년), 그리스(1923년)는 한참 뒤에야 그레고리력을 따랐는데 로마나 영국보다 더 많은 13일을 달력에서 지워야 했다.


고작 10분47초의 차이일 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의 간극은 오랜 세월을 품어 10일, 13일의 현재의 시간을 사라지게 했다. 역사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10일, 13일의 시간이었다. 



이전 01화 올라프의 손가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