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치여서 고맙다

40대 워킹맘, 아이돌에 빠지다

by 김양희

초등학교 시절 나와 친구들의 아지트는 S의 집이었다. S의 방에는 그 시절 시골에는 흔치 않던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근처 대여점에서 비디오를 빌려 S의 집으로 우르르 몰려가고는 했다. 용돈을 조금씩 걷어 간식거리를 챙기는 일도 필수였다. 새우깡 과자가 100원 하던 시대였다.


우리는 ‘영웅본색’, ‘첩혈쌍웅’, ‘예스마담’ 등의 홍콩 누아르부터 ‘이블 데드’ 같은 공포영화까지 가리지 않고 봤다. ‘영웅본색’은 장국영, 주윤발의 매력에 취하면서, ‘이블 데드’는 여러 명이 한 이불속에 들어가 얼굴만 빼곡히 내놓고 보곤 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로맨틱 코미디 같은 영화는 잘 보지 않았다. 초등학생, 아니 국민학생이었으니까 낭만이나 사랑 같은 것을 알 리 없었다. 그저 장국영, 유덕화, 주윤발, 알란 탐 같은 홍콩 배우들의 몸짓에 환호하며 환상을 품고는 했다. “커서 장국영 아내 될 거야”라고 말하던 친구를 놀리기보다는 “난 주윤발 아내 될 거다!”라고 대꾸하고는 했다.


중학생이 된 뒤에도 S의 집에 종종 모이기는 했지만 이때부터 나는 혼자서 영화관을 찾기 시작했다. 읍내에도 극장은 없던 터라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30~40분가량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가야 했다. 중학생 혼자 시외버스를 타고 다니는 게 그때는 전혀 이상하지 않던 시대였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언니가 시내에서 홀로 자취를 했기 때문에 반찬 등을 갖고 가는 주말이면 영화관에 꼭 들르고는 했다. 보고 싶은 영화는 반드시 봐야 했다.


시험 기간에도 상관없었다. ‘늑대와 춤을’은 중간고사 전날에 혼자 몰래 가서 봤다. 중간고사가 끝난 뒤 학교 전체가 ‘늑대와 춤을’ 영화를 단체관람했을 때는 친구 몇 명과 함께 따로 ‘캠퍼스 군단’을 봤다. ‘캠퍼스 군단’의 주인공인 숀 에스틴이 훗날 ‘반지의 제왕’ 샘으로 나왔을 때의 그 반가움이란... 어릴 적 친구를 만난 것처럼 신이 났다.


한 달에 한두 번은 영화를 봤지만 학교 성적은 늘 최상위권이었으니 부모님도 그냥 눈감아주셨다. 어쩌면 두 분 모두 과수원 일로 너무 바쁘셔서 나의 작은 일탈을 몰랐을 수도 있다. 나는 그저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으므로 의심조차 안 하셨을 수 있다.


홍콩 영화인 ‘도성’도 혼자서 본 영화 중 하나였다. 텔레비전 광고 때문인지, 아니면 신문 밑에 조그맣게 실린 영화 광고 포스터 때문인지 그냥 ‘도성’에 꽂혔다. 홍콩 누아르를 좋아했으니까 영화가 보고 싶었을 때 그 영화가 개봉해 있었을 수도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쉬 같은 포커 용어나 규칙은 하나도 몰랐는데 어떻게 그 영화를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그저 극장에 혼자 앉아 스크린을 응시하다가 영화 주인공인 주성치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초능력(이 얼마나 비현실적 설정인가!)으로 손에 쥔 카드를 좋은 패로 바꾸려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카드를 마구 비빌 때도, 도박 대회 참가를 위해 올백 머리를 했을 때도 그저 멋있기만 했다. 약간은 과장된 몸짓이 있었으나 부담스럽지가 않았다. 특히 그 웃음. 웃는 모습이 너무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착한 캐릭터라서 더 눈길이 갔는지도 모른다.


‘도성’ 이후 닥치는 대로 주성치가 등장하는 영화를 챙겨봤다. ‘도협’, ‘도학위룡’, ‘정고전가’, ‘가유희사’, ‘심사관’, ‘녹정기’ 등등등. 주연이든 조연이든, 혹은 우정출연이든 상관하지 않았다. 주성치는 어느 영화에서나 웃겼고 능청을 떨었으며 때로는 진지했다.


머리 모양이 늘 똑같은 것이 마음에 걸렸으나 그를 향한 마음을 꺾지는 못했다. 주성치는 그냥 주성치였다. 주성치가 나오는 영화가 개봉된다고 하면 혼자서든, 친구를 꼬드겨서든 개봉한 주말에 기필코 보러 갔다.


학교 내에서는 친구들에게 주성치의 매력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짝꿍은 매일같이 나의 주성치 예찬을 들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짝꿍은 전혀 공감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고는 했다. 아무렴 어떠랴.


용돈이 부족해 영화 잡지를 사지 못할 때는 친구들이 알아서 주성치 인터뷰 관련 부분을 찢어 건네줬다. 생일 때는 주성치 브로마이드나 책받침을 선물 받았다. 사진은 코팅을 해서 참고서에 껴 넣거나 책장에 꽂아뒀다. 다만 방안 벽에 사진을 붙여 놓지는 않았다. 나의 주성치 사랑은, 왜 그래야 했는지 모르겠지만 은밀해야 했다. 부모님은 몰라야 했다.


주성치 사진을 뚫어져라 보다가도 엄마가 방문을 열 때면 후다닥 감췄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묻는 질문에 늘 부모님이나 가족이라고 답했던 것을 보면 가족 아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게 일종의 배신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아니면 연예인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범생 프레임에 갇혀 스스로는 잘 드러내지 않던 생활이었다.


주성치는 장국영, 유덕화처럼 잘 생기지도 않았고 주윤발처럼 카리스마가 있지도 않다. 다만 그 나름의, 다른 배우들은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인 해학적 요소가 있다. 익살스러운 표정 안에 담긴 슬픔 같은 것도 가슴에 진하게 와 닿는다. 어쩌면 너무 배우스럽지 않아서 더 끌린 것 같다.


배우처럼 생긴 배우는 그저 배우처럼 보일 뿐이다. 아이돌처럼 생긴 아이돌은 그저 아이돌처럼 보일 뿐인 것처럼 말이다. 주성치는 스크린 속 범접할 수 없는 환상의 인물이 아니라 친숙하고, 나와 같은 보통의 사람처럼 보였다. 감정 이입이 가능했던 인물이었다.


주성치에 대한 애정은 성인이 된 뒤에도 이어졌다. 중국 출장을 갔다가 주성치 영화 컬렉션이 담긴 DVD를 사 오고 ‘쿵후 허슬’ 등 주성치가 주연을 했거나 감독을 한 영화는 모두 챙겨봤다.


그는 연기뿐만 아니라 영화 제작에서도 풍자와 해학을 드러낸다. 영화적 겉멋에 사로잡혀 굳이 힘을 주지 않는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한다. 슬프면서도 웃기고, 웃기면서도 잔잔하다.


이제 머리색은 희끗희끗 하얗게 변했지만 다행히도 주성치의 감독, 제작자로서 역량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어린 시절에 봤을 때보다 그의 영화 세계는 더욱 확장됐다. 지는 태양이 아니라서, 시간이 흘러도 초라해지지 않는 사람이어서 내가 더 고맙다. “한때 주성치를 좋아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뿌듯하다.


내가 어릴 적부터 사람 보는 눈은 있었다고 자부심마저 느낀다. 주성치뿐만 아니라 내가 한때 좋아했던 스포츠 선수들은 지금도 잘 풀렸으면 좋겠다. 그들의 인생이 삐걱대면 나 또한 그들을 좋아했던 그 시절이 삐걱대는 것 같다. 그들이 은퇴를 하면 나의 한 시대도 저무는 듯하다. 그들을 통해 나를 본다. 프리즘이랄까.


카카오톡 대화중에 “요즘은 강다니엘이 좋더라”라는 나의 말에 중학교 시절 친구는 한참이나 깔깔 웃어댔다.


“어릴 적에는 야구만 좋아하더니만...”


하긴 웃을 일이다. 나중에 딸이 아이돌 덕질을 한다고 하면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궁금하다. 광클릭으로 콘서트 표 끊기에 성공하는 식으로 응원해줄까, 아니면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공부나 해!”라고 야단을 칠까.


다른 대화 도중 친구는 번뜩 생각이 났는지 말했다.


“잠깐. 너 중딩 때 주성치 빠였잖아. 너한테는 덕질의 DNA가 흐르고 있는 거야. ㅎㅎㅎ”
“그렇지! ㅋㅋㅋ”

나도 동의한다. 나도 한때 누구나 인정하는 ‘빠’였다. 주성치가 그 증거다. 주성치를 보면 아련한 마음이 드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제주도라는 한정된 공간에 갇혀 이동이 자유롭지 않아 적극적으로 덕질을 못했을 뿐이다.


덕질의 DNA가 20여 년이 흘러 다시 은밀하고 위대하게 살아나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주성치와 강다니엘의 공통점은 있다. 둘 모두 웃음이 자연스럽다.


그나저나 요즘 주성치가 무슨 영화를 만들더라. 곧바로 휴대폰 검색에 들어간다. 그런데 나는 왜 컴퓨터를 앞에 두고 휴대폰으로 검색을 하고 있을까. 아는 것은 많아졌지만 나의 세상은 휴대폰 화면만큼 작아지는 것 같아 다시금 침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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