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성기에 외치다

"집에서 아기가 울고 있어요!"

by 김양희

동생은 내가 9살 때 태어났다. 8년 동안 오빠, 언니를 둔 막내였는데 동생이 그 특권을 앗아간 것이다. 언니와 막냇동생은 무려 12살 차이가 난다. 오빠와는 14살 차이.


사실 동생이 태어난 계기가 있다. 2대 독자인 오빠가 많이 아팠고 부모님은 이 때문에 아들이 한 명 더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셨다. 집안에 대가 끊기게 됐으니... 일종의 계획 임신이라고 할까.

부모님은 배 모양 등등을 이유로 철석같이 '아들'이라고 믿었으나 태어난 동생은... 여자아이였다. 거짓말 1도 안 보태 그렇게 예쁜 아기를 지금껏 본 적이 없다. 언니가 후에 조카를 낳은 뒤 얼굴을 보고 실망(?)한 이유도 동생 아기 때 모습 때문이었다. 나 또한 태어나고 1주일 만에 본 동생의 하얗고 뽀얀 얼굴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지금도 동생은 '한 미모' 한다. 길 가다가 돌아보게 되는 그런 미인.


과수원 하시는 부모님은 가끔 나에게 동생을 맡기고는 밭에 가시곤 했다. 9살 나이에 안아주고 업어주고 그랬다. 진짜 업어 키운 동생이다.

그런데 하루는 동생이 너무 울었다. 기저귀를 갈아줘도 우유를 먹여도 계속 울기만 했다. 어르고 달래고 토닥이고 안아줘도 울음소리만 더 커졌다. 9살의 나는 패닉에 빠졌고 결국 최후의 방법을 택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때는 그 방법밖에 없는 듯했다.

당시 우리 집은 시골마을 동장네 집이었다. 맞다. 면장, 리장 그 바로 밑에 동장. 즉, 방송 앰프가 집안에 있었다. 앰프 장비를 쓰면 확성기를 통해 동네 전체에 소식이 전달됐다.

어린 나이였으나 아빠가 하시는 모습을 종종 곁눈질로 봤던 터라 앰프 장비를 사용할 줄 알았다. 그날, 동생이 아주 서럽게 울고 있는 가운데 나는 마이크를 들고 최대한 사투리를 자제하고 표준어를 쓰면서 외쳤다.


"아, 아, 아... 문○○님(엄마 이름) 빨리 집으로 와 주십시오. 집에서 아기가 울고 있습니다. ◇◇(오빠 이름) 어머니, ◇◇어머니 집으로 빨리 와주세요!!!!"


그때 엄마가 곧바로 왔는지 안 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어른들한테 혼나지는 않은 듯하다.


그 울음 그치지 않던 동생은 지금 아이 둘을 키우는 워킹맘이 되어 있다. 3살, 5살 아이들을 혼자서 돌보며 아마 매일 저녁 제부에게 카톡으로 빨리 퇴근하라고 독촉하고 있을 듯도 하다. 내가 그랬었으니까.

휴대폰이 있으니 이제 마을 공동 앰프나 확성기 등이 필요 없는 시대가 되고 있다. 단체 공지가 필요하면 확성기를 이용하거나 굳이 일일이 전화할 필요 없이 마을 단체톡에 글을 올리면 된다. 빠르고 편리해졌다. 하지만 뭔가 허전하다.


<탈무드>에는 "입은 말을 통해서 사람의 육신이 공간 속에서 겪는 문제를 해결하게 해 주며, 사람은 말을 함으로써 공간 속에 자기 자리를 잡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 된다"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손이 곧 입이 된 디지털 사회에서 사람은 '말'이라는 매개체 없이도 손가락 움직임 하나로 당장의 문제를 척척 해결해 나간다. 더불어 타인에게 말 걸기는 더욱 어려워지는 단절의 시대가 왔다.


가끔은 확성기에 대고 "아기가 울어요!"라고 외칠 수 있던 그 시대가 그립다. 확성기 소리에 누군가는 일손을 멈추고 가만히 서서 귀를 쫑긋 세웠을 테니까. 그게 아기 엄마를 애타게 찾는 소리여서 어이가 없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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