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때로는 웃기고 때로는 슬프다
없다. 또 없다.
‘도대체 어디 간 거지?’
기억을 더듬는다. 분명 집에서 나올 때는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차 안에는 없다. 귀신이 곡할 노릇. ‘진짜 손에 들고 나왔는데… 어제였나?’ 요즘 나는 내 기억조차 믿을 수 없다. 총명탕이라도 먹고 싶다.
‘설마’ 하는 마음에 빨간 신호에 대기했을 때 문을 열고 차 지붕을 본다. 있다! 그것도 아주 멀쩡히, 살포시 내려앉은 모습으로 있다. 이 주인과 밀당하는 요물단지 혹은 주인을 잘못 만나 생고생하는 문명의 기기여.
때는 눈발이 약간 날리던 4년 전 초겨울의 어느 날. 여느 날처럼 나는 차를 몰고 강남 근처 출입처로 가고 있었다. 충전을 하려고 휴대폰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잠깐 신호등 앞에 섰을 때 가방을 이리저리 뒤져봐도, 옆자리와 뒷자리를 구석구석 훑어봐도 없었다. 외곽순환도로 진입 직전 ‘싸~’ 한 기분에 차 문을 열고 봤는데 은색 차 지붕 위에 빨간 케이스의 휴대폰이 놓여 있었다.
여기서 잠깐. 나는 집에서 출발해서 주차장 언덕을 올라왔으며 좌회전 2번, 우회전 2번 등을 포함해 1㎞ 넘게 운전을 한 터였다. 그런데도 휴대폰이 차 지붕에 찰딱 붙어 있었다. 눈 때문에 케이스가 젖어 있기는 했으나 아주 온전한 자태(?)였다. 헛웃음만 나오는 기가 막힌 상황에서도 ‘나 참 코너링 잘하는 모범 운전수구나’ 했다. 운전 경력 15년이 넘는 동안 이런 경험도 처음이다.
만약 휴대폰을 차 지붕에 얹고 그대로 고속도로를 탔다면? 혹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면? 아마 도로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이 부서졌거나 다른 운전자 차량과 부딪혀 사고를 유발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림도구를 차 트렁크 위에 올려놓고 달렸다는 동생을 비웃는 게 아니었다. 차 키를 지붕 위에 놓고 500m가량 운전한 오빠도 놀리는 게 아니었다. (그때 지붕 위 스마트키가 도로 위로 떨어졌다면 차는 멈췄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사람은 누구나 같은 실수를 할 수 있다. 설사 그것이 차 위에 무엇인가를 얹고 달리는 것이라도 말이다.
사실 휴대폰과 관련해서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꽤 겪었다. 방심과 망각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 보면 종종 그런 일이 있다. 아이 어린이집 면담 때도 그랬다. 첫째가 6살 때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과 면담이 있었다. 선생님과 만남은 언제나 어려운 터. 짧은 인사 뒤 원장 선생님이 권하는 의자에 앉을 찰나 ‘우지끈’ 소리가 들렸다.
아차차. 순간 한 달 전 바꾼 내 휴대폰이 바지 뒷주머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전에 쓰던, 액정이 작은 휴대폰은 뒷주머니에 넣고 앉아도 아무 탈이 없었다. 하지만 액정이 큰 휴대폰은 면적 때문인지 나의 엉덩이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화면 글씨가 안 보일 정도로 산산이 조각난 휴대폰 액정에 원장 선생님도 놀라기는 마찬가지.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 상담을 마쳤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깨진 화면 생각뿐이었다. 서비스센터에 맡기니 수리비는 무려 18만원. 전적으로 내 잘못이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후부터는 휴대폰을 고이 손에 꽉 쥐고 다닌다.
따지고 보면 집에 인터넷 전화를 설치한 것도 육아휴직 동안 ‘어디 뒀는지 도통 알 수 없는’ 휴대폰 때문이었다. 휴대폰 전원이 꺼지면 이 또한 소용이 없지만 그래도 꽤 유용하다. 소파 사이, 침대 밑에서 울리는 휴대폰 음악만 쫓아가면 그만인 것이다. 휴대폰이 냉장고 속에서 발견된 적은 없으니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까.
기억 저장소가 과포화 상태가 된 것인지, 아니면 생각 없이 하는 행동들이 많아져서인지 자주 ‘깜빡이’ 등이 들어온다. 휴대폰뿐만 아니라 차 키를 집에 두고 주차장으로 향하는 일도 잦으니 할 말은 없다. 냉장고 앞까지 갔는데 1분 사이에 무엇을 가지러 온 것인지 까먹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하긴 동생이 이런 경고를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외출했다가 아이들 깜빡 잊고 놔두고 오지만 마.”
여전히 난 매일 차 문을 닫기 전 차 바깥을 빠르게 ‘스캔’한다. 제발 차 지붕이나 트렁크 위에 얹어진 것은 먼지나 새똥만이길.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