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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희 Nov 23. 2018

프로야구 시계는 거꾸로 간다

야구는 왜 위기일까

고등학생 조카가 있다. 조카는 어릴 적부터 야구를 좋아했다. 야구 주제로 글짓기까지 했었다. 조카가 열렬히 응원했던 팀은 넥센 히어로즈(현재 키움 히어로즈). 중학생 때는 공항동에서 혼자 버스를 타고 고척 스카이돔으로 가서 경기를 봐 언니를 기함하게 했다. “여자애가 혼자서!” 그날은 월요일이고 퓨처스(2군)경기가 있던 터였다. 2군 경기까지 직접 볼 정도로 조카는 열성팬이었다.


하지만 조카는 야구를 ‘끊었다’. 박동원과 조상우(이상 히어로즈)가 시즌 중 성폭행 혐의로 입건된 직후 “야구 선수들에게 정말 실망했다”라고 분노했다. 더 이상 조카는 야구를 보지도 않고 야구 얘기에 흥미를 느끼지도 않는다. 그들이 무혐의 처분을 받았는데도 조카의 마음은 돌아설 것 같지 않다. 일련의 사건, 사고들을 겪으면서 야구에 등을 돌린 팬이 과연 조카뿐일까.


프로야구계는 그동안 헛발질을 많이 해왔다. 2018시즌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김재환(두산 베어스)만 봐도 그렇다. 과거 약물 기록(2011년)을 갖고 현재를 평가하는 것이 가혹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근육강화제(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경우 근육의 기억력, 즉 약물로 근육을 키웠을 때 차후 약물을 하지 않아도 그 복원력이 남아 있어 쉽게 근육을 만들 수 있다는 데 논란이 분분하다. 그런 논란 속에서도 51명 기자들은 그에게 1등 표를 몰아줬다.


오지환(LG 트윈스) 사태는 또 어떤가. 선동열 전 국가대표 감독은 논란의 여지가 있음에도 병역 혜택만을 바라며 군 입대를 미뤘던 오지환을 ‘백업 선수’로 발탁했다. 상무 입대 기회가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던 오지환은 아시안게임 국가대표에 뽑히지 못했을 경우 현역 입대를 해야만 했다. 그는 이전까지 성인 국가대표 경력도 없었다. 누구라도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야구계는 2014 아시안게임 때도 부상으로 경기에 뛸 수 없던, 병역 혜택이 절실했던 나지완(KIA 타이거즈)을 대표로 뽑아 여론이 악화된 적이 있었다.  학습효과가 전혀 없음이 4년 뒤 여실히 드러났다.


비단 아시안게임뿐만이 아니다. 2017 세계야구클래식(WBC) 때 김인식 감독은 해외 원정 도박으로 징계를 받은 오승환에게 대표팀 유니폼을 안겨줬다. “대표팀에 꼭 필요하다”는 이유로 징계 이행조차 하지 않은 선수를 대표팀에 덜컥 뽑은 것이다. “야구로 보답하겠다”거나 “성적으로 말하겠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논리가 현재까지 통할 것이라는 착각에서 나온 선택이었다. 성적지상주의, 1등주의 속에 형평성, 공정성은 묻혔다.


2018 평창겨울올림픽 남북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구성하고자 했을 때 정부는 뜻하지 않은 반대 여론에 직면했다. 젊은 세대들이 반발한 이유는 ‘공정성’ 때문이었다. 대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개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며 공정성이 훼손되는 것에 반감을 느꼈다. 소위 밀레니얼 세대가 그렇다.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것 같지만 공정성 훼손, 그리고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에는 당당히, 때로는 극렬하게 제 목소리를 낸다. 야구계는 과연 이런 흐름을 알고 있을까.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국정감사에 출석한 야구계 레전드(선동열 전 감독)가 ‘야알못’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손혜원)에게 모욕을 당하는 수모까지 당하지 않았을까. 그날의 치욕은 선 감독만의 것이 아니었다.


선동열 전 대표팀 감독은 자진사퇴를 발표하면서 이런 표현을 썼다. “시대의 정서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시대의 정서를 살피지 못하는 이가 비단 선 전 감독뿐만은 아닌 듯하다. 김재환의 MVP 수상을 바라보며 씁쓸함을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프로야구의 시계는 여전히 앞으로가 아닌, 뒤로 가는 듯하여 뒷맛이 쓰다.  야구를 그저 '공놀이'로 만드는 이들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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