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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희 Dec 04. 2018

야구공의 죄를 묻다

<리쎌 웨폰>. 1987년 상영된 멜 깁슨, 대니 글로버 주연의 미국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가, 정확히 말하면 영화의 제목이 미국 야구판에서 되새김된 적이 있다. 번역하면 ‘치명적 무기’쯤 되는데, 치명적 무기로 몰린 게 다름 아닌 무게 145g, 둘레 23㎝의 야구공이다.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은 2009년 여름 한 야구 선수의 재판으로 떠들썩했다. 사건은 2008년 7월2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이너리그 싱글 A 미드웨스트리그 피오리아 치프스와 데이턴 드래건스가 경기 도중 빈볼 시비가 붙어 양 팀이 대치했다.


 이 와중에 상대 더그아웃을 겨냥해 던진 피오리아 투수 훌리오 카스티요의 공이 관중석으로 날아갔다. 그의 공은 관중석에 앉아 있던 크리스 매카시(45)의 머리를 때렸다. 매카시는 곧바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으며 가벼운 뇌진탕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후송됐다. 카스티요는 이후 체포됐다.


 카스티요를 기소한 몽고메리 카운티 존 마셜 지방 검사의 논리는 명확했다. “작고 단단한 야구공은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는 흉기이며, 목적을 갖고 이를 누군가에게 던졌다면 상대를 해하려는 의도가 있는 중범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으로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카스티요를 대변한 데니스 리버먼 변호사는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카스티요가 공을 던졌을 때 더그아웃에는 아무도 없었으며, 누구를 맞히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라고 맞섰다. 카스티요 또한 “누구를 해하려고 공을 던진 게 아니다. 바닥으로 던지려고 했는데 제구가 안됐다”라고 억울해했다. 실제 90마일 이상의 속구를 던지는 그는 제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1년 가까이 진행된 재판 뒤 코니 프라이스 판사는 카스티요의 폭행죄를 인정해 유죄를 선고했다. 야구공을 ‘치명적 무기’로 결론 낸 셈이다. 카스티요는 이후 30일간 감옥에서 지냈으며 이후 다시는 마이너리그에서조차 공을 던지지 못했다.


 야구공과 관련된 논쟁은 계속 이어져 왔다. 미국 야구장 내야에는 보통 안전그물이 설치돼 있지 않다. 관중의 시야를 가려, 보는 재미가 반감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애덤 골드스타인 노스캐롤라이나대 박사 등이 2007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1978년부터 2004년까지 야구공이나 야구 방망이 파편에 의해 사망한 미 프로야구 관중은 최소 5명 이상이다. 또, 100만명 당 35.1명의 관중이 야구장에서 턱 골절 등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부분 내야석에 앉아 있다가 날아든 파울공에 맞아 다쳤다.


 2017시즌에는 뉴욕 양키스 토드 프레이저가 미네소타 트윈스와 경기 도중 친 파울공이 시속 105마일(168㎞) 속도로 3루 관중석으로 날아가 3살 소녀의 얼굴을 강타한 적도 있다. 이를 계기로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메이저리그 대다수 구단들은 내야 안전 그물망을 높이고 외야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중이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파울공에 다친 관중 소식이 심심찮게 들린다. 미국과 달리 안전그물이 설치돼 있으나 높게 솟구쳤다 떨어지는 파울공의 낙구 지점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힘들다. 더군다나 공을 잡으려는 욕심이 더해져 더 큰 사고가 나기도 한다.


 프로야구 입장권 뒷면에는 보통 파울공 사고에 대한 주의가 적혀 있다. 굵은 빨간색 등으로 “야구장 내에서 본인의 부주의(연습 혹은 경기 중 파울볼 등)로 인한 사고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으니 특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돼 있다. 파울공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구단은 도의적인 책임은 있겠으나 법적인 책임은 없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구장은 공이 관중석으로 날아올 경우 호루라기 등을 불기 때문에 응원에 빠지는 것도 좋지만 귀는 쫑긋 열어둘 필요가 있다.


 야구공은 ‘리셀 웨폰’이 맞을까. 가만히 있는 공은 그렇지 않겠으나 빠르게 회전하며 날아오는 공만큼 위험한 무기도 없다. 검투사 헬멧을 쓴 타자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하는 것, 그게 야구공이다.


덧붙이기. 과거 메이저리그에서는 필라델피아 필리스 소속의 리치 애쉬번이 친 연속된 두 번의 파울공에 한 여성이 연달아 맞은 적도 있다. 애쉬번이 처음 친 파울공은 관중석으로 날아가 여성의 코를 부러뜨렸고, 곧바로 친 두 번째 파울공은 응급처치를 위해 들것에 실려나가던 여성의 몸을 때렸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선수가 친 파울공에 해당 선수의 어머니가 맞은 적도 있다. 2007년 4월, 당시 SK 소속이던 정상호가 친 공이 백스톱 뒤로 날아갔고 관중석의 한 중년 여성 뺨 위로 떨어졌다. ‘중년 여성’은 바로 정상호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아들의 타구에 맞았으니 괜찮다”라고 했으나 뺨 안쪽이 찢어져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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