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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희 Dec 11. 2018

덕질, 삶의 숨구멍이 되다

이 나이에 덕질이라니

나의 삶은 늘 쫓겼다. 어제 같은 오늘을 살았고, 오늘 같은 내일을 살아갈 것 같았다. 일과 육아에 내 반쪽씩 쓰다 보면 나 자신이 휘발돼 가는 느낌도 들었다. 어느 날, 회사 인사로 출입처가 바뀌어 삶의 간극이 생겼을 때 문득 의문이 생겼다. ‘내 삶의 비상구는 있을까.’


 그즈음, 케이블 음악방송 Mnet에서 하는 <프로듀스 101>(이하 ‘프듀’) 시즌 2를 보게 됐다. 딱히 아이돌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10대 때도 연예인을 좋아해 본 기억은 없다. 그런데 ‘프듀’ 시즌 2에 시선이 가는 아이돌 연습생이 생겼다. 강다니엘. 그는 방긋방긋 늘 웃었고 배려심이 있었고 인간미도 넘쳤다. 


 10대 때도 안 해본 소위 아이돌 덕질을 40대에 하게 됐다. 새벽 2시에 퇴근해 침대 위에 누워서도 몇 시간이고 유튜브 유랑을 했다. 강다니엘의 웃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나도 따라 웃게 됐다. 코미디조차 웃기지 않은 시대에 웃음 기제가 필요했던 듯도 하다. 그의 무대 위 퍼포먼스에도 마냥 빠져들었다. 그는 무대 위에서 진짜 ‘프로’였다. 자신이 잘할 줄 아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 10년 만에 잡지를 사고 앨범을 구매했다. 강다니엘이 속한 워너원이 광고하는 물품을 사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21세기 소년들의 ‘미래’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었다.


 늦은 나이에 ‘주책’이라는 생각도 했다. 주변 반응도 비슷했다. 하지만 덕질을 하는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현실 망각제라고 할까, 삶의 숨구멍이라고 할까. 내 몸속 세포들은 며느리도, 아내도, 엄마도, 딸도 아닌 오로지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만 반응했다. 강다니엘의 몸짓에서 장인정신까지 느껴지며 그의 열정과 청량한 청춘을 동경하게 됐다.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갖는 것, 그게 광의적 의미의 덕질일 것이다. 야구를 보거나, 골프를 치거나, 혹은 음식을 만들거나 하는 취미생활과도 같다. 도라에몽 굿즈를 모으거나 건프라를 만들거나 혹은 그림을 그리는 것도 비슷하다. 공간적, 시간적 제약이 많은 워킹맘은 선택의 폭이 좁아 나름의 방법으로 덕질을 할 뿐. 뭔가에 흠뻑 빠지기도 쉽지 않은 나이, 생산적이지 않으면 어떠랴. 잠깐의 포즈 버튼(ㅣㅣ)으로 숨을 고르고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면 그 또한 생산적이지 않을까.


덧붙이기. 늦은 나이에 덕질을 했고 2년 전이면 상상도 못 했을 관련 책(<이 나이에 덕질이라니>)까지 썼다. 그리고 다른 매체 연예기자인 선배 덕에 덕질의 대상인 그의 사인까지 받았다. 이쯤이면 진짜 성덕인 것 아닌가. 해체를 앞두고 있는 워너원 구성원 개개인의 꽃길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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