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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희 Feb 18. 2019

별 헤는 밤

우리의 별은 과거다

그것은 행운이었다. 하늘은 맑았고 구름 한 점 없었다. 다만 어둠 속에서 코끝에 시린 1월의 추위가 걸렸을 뿐.


제주 별빛누리공원. 8월에 잠깐 찾았을 때는 비가 왔었다.  하지만 겨울에 기회가 왔다. 변덕스러운 섬의 날씨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날이 있다. 낮동안의 날씨가 믿음을 주는, 그런 날씨. 태양과 대지를 가로막는 것은 없었다. 한라산은 또렷하게 자신의 자태를 뽐냈다. 이는 분명 내일 비가 올 것이라는 조짐이었으나 그것은 내일의 일이다.

 

별빛누리공원의 가이드 선생님은 레이저 포인트로 하늘을 콕콕 찌르며 친절하게 겨울의 별자리를 가르쳐줬다.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아, 오리온 벨트, 시리우스 등등등. 자잘한 별들이 모여 있는, 이름이 웃긴 좀생이 성단도 봤다. 화성을 육안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에는 조금 놀랐다. 그러니까 아주 행운이었던 것이 맞다. 커피 두 잔 값 정도의 입장료로 아이들과 별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다니. 인공의 빛 때문에 어릴 적에 보았던 별들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그 수가 적었지만 나름 만족스러웠다.


과학 시간에 문득 치며 외웠던, 별이 지구에 도달하는 시간을 다시금 되새기기도 했다. 가이드 선생님은 우리가 바라볼 때 가장 밝은 별은 4년 전의 것, 이날 가장 밝게 빛난 시리우스는 8년 전의 별이라고 했다. 300년 전 별도 있고, 800년 전 별도 있다. 그러니까 하늘은 과거의 별들로만 가득 차 있는 것이다. 그 별들 중에는 지금은 사라진 별들도 있을 터. 우리는 언제쯤 그들의 소멸을 알게 될까. 그래도 지금 우리 눈에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으니까 웃어야 할까.


카펠라는 계속 기억에 남는다. 지구와는 42.2광년 떨어진 별이니까 지금 보고 있는 저 별빛은 42.2년 전의 것이다. 만 나이로 치면 내가 살아온 나날과 비슷한 거리를 날아온, 42.2년의 과거를 품고 있는 셈이 된다. 그래서 더 정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보고 있는 저 빛은 내가 태어나던 시점의 카펠라 모습이니까. 나는 하늘을 보면서 나의 과거를 봤다.  


별자리 설명이 끝날 즈음, 가이드 선생님은 말했다.

  

"보름달이 뜰 때는 별이 잘 안 보여요."


아, 그렇구나. 잊고 있었다. 낮에도 희미하게나마 달은 보인다는 사실. '밤이 되니 달이 뜬다'라는 말  틀렸다. 달은 낮에도 하늘 위에 있다. 햇빛이 강해서 그 존재를 잊고 있을 뿐. 따지고 보면 별빛을 뺏는 것은 달빛이다. 가이드 선생님 말처럼 보름달이 뜰 때는 그 빛이 강해서, 그 빛이 사방에 퍼져서 별이 잘 안 보이니까. 대낮의 달이 해를 원망해서는 안될 듯도 하다. 달은 빛을 뺏기고 뺏는 존재니까. 오늘 밤도 그렇게 달은 별의 과거를, 별의 현재를, 별의 미래를 뺏고 있다. 혹은 흡수하거나.


그날 밤, 둘째는 잠을 자다가 눈을 감은 채 혼잣말을 했다.


 "엄청나."


궁금해서 "뭐가"라고 물으니 "별"이라고 대꾸했다. "별이 엄청나?"라고 또 물으니 "응"이라고 대답했다. 잠꼬대가 분명했다. "별이 빛나?"라고 물어보니 또 "응"이라 했다. "네가 더 빛나"라고 하니 아무 말도 안 하고 코만 쿨쿨


 그날, 딸의 꿈속에서 별이 쏟아졌기를. 과거의 기억이 소녀의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더욱 풍요롭게 해 주기를. 누군가의 강한 빛에 가릴지라도 아이들은 가슴속에 자신만의 빛은 품고 살기를, 종교는 믿지 않지만 그렇게 기도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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