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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희 Sep 09. 2019

시작의 책갈피

자수를 놓다

짬이 나서 책갈피용 프랑스 자수를 하던 나에게 딸이 물었다.

"엄마, 나도 책갈피 줘."

미국에서 처음 산 책이 비록 만화책(도그맨)이지만 그래도 책갈피가 필요했나 보다. 처음이다. 딸이 책갈피를 원하는 것이. 아마 책갈피를 만드는 엄마를 보다가 퍼뜩 생각이 났나 보다. 나는 책을 선물할 때 내가 만든 책갈피를 함께 선물하는 편이다. 자수 하나하나를 넣다 보면 잡념은 말끔히 사라진다. 잡념 없는 상태로 만들어진 책갈피가 선물 받은 이의 잡념까지 사라지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디지털 시대에 자라나는 아이들은 활자와는 거리가 멀다. 유튜브로 검색을 하고 유튜브에 자신의 일상을 올린다. 딸도 오빠와 함께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올린다. '원준 유진 TV'라는 그럴듯한 간판도 만들었다. 현재 구독자 수는 78명. 영상은 다소 조잡하지만 아이들은 머리를 맞대 구독자 수를 늘릴 궁리를 한다. 


함께 사는 아버님은 종종 아이들과의 소통 부재에 아쉬움을 드러낸다. 함께 살지만 저녁도 함께 먹기가 힘들다. 


"예전에는 밥상머리 공부라고 이런저런 지혜와 지식을 배웠는데..."


아버님의 한탄에 별다른 대꾸를 할 수 없었다. 지식, 지혜를 흡수하는 방법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나 때만 해도 네이버 지식인을 이용해 검색했지만 아이들의 최우선 선택은 유튜브이다. 읽는 게 아니라 보는 것으로 아이들은 자신만의 호기심을 충족해간다. 굳이 어른들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지식, 지혜는 유튜브에 널려 있다. 더러 잘못된 지식이 있어서 고쳐주기도 하지만 가끔은 내가 모르는 것을 아이들이 아는 경우도 꽤 있다. 어른에게 질문이 필요 없어진 시대, 그런 시대가 되어 버렸다. 


문자만이 존재했던 예전과 달리 영상의 시대가 도래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리 온 듯도 하다. 때문에 아이들에게 마냥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지도 못하겠다. 활자보다 영상이 더 편한,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세대이기 때문이다. 


활자의 시대가 저무는 상황에서 딸이 책갈피를 원해서 더 기분이 좋았던 듯하다. 딸의 첫 책갈피를 내가 만들어줄 수 있어서도 좋았다. 그 처음을 딸이 요구했다는 사실도 좋았고. 이제 딸의 지문이 여기저기 책갈피에 스며들 것이다. 책장을 넘기는 호기심과 상상력이 자수 실처럼 이리저리 얽히고설켜 또 다른 감성을 만들어냈으면 싶다. 


완성된 책갈피는 라넌큘러스와 장미의 중간쯤 모습이 됐는데 아무렴 어쩌랴. 얼마나 많은 책장 사이를  누비다가 이 책갈피는 사라질까. 소멸 전에 책 안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를, 다양한 생각들을 품을 수 있기를 문득 바라본다. 딸이 조금 더 커서 종이책이 사라지면 책갈피의 존재 이유는 사라질 테지만. 그래서 오늘 더 간절하게 수를 넣는지도 모르겠다. 없어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혹은 두려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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