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과 관념 사이에 있다.

by 조각보자기

마케팅 수업을 들으며, 오늘날의 마케팅에 대해 배웠다.

나는 저무는 쪽에 서있는 마케터라는 사실을 잘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슬프지 않았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 씬에서 사라지고 싶었으므로.

적어도 나의 눈에는 오늘날의 마케팅이 '사기'와 '도박'으로 보인다.

이런 시선을 가지고 이 일을 더 하는 것은 나를 위해서도 못할 짓이야.


HR 수업을 들으며, 첫 수업만에 실망했다.

내가 원했던 건, 정확히 말하면, 스타트업 HR이 아니라 안정기업의 조직문화에 대한 강의였을까?

마치 마케팅 수업에서 기대했던 토론의 결론이 셀링이 아니라 브랜딩이었던 것처럼?

하지만 회사라는 보호장치를 벗어던지면 나 역시 저 강의 내용이 온 피부로 와 닿겠지.

여기 앉은 셀러나 대표님들과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더 헤매겠지.


나는 짐짓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구나.

마치 '논스톱에 나오는 대학생', '미생에 나오는 회사원'처럼 말이다.

나는 되도록 나의 관념 안에서 살아왔고, 회사도 그런 관념 안에서 선택해 온 것 같다. 그러니까 나름의 보호장치 안에서 살아올 수 있었겠지. 그래서 성실하고 수용적인 착실 구성원이 되었던 거지.


남은 세 번의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싶다.

생각보다 HR은 사측에 서는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관리자라는 직책을 해낼 수 있을까?

뭐 해내기야 하겠지. 나는 뭐든 성실함으로 해내 버리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이렇게 나는 또 HR에 대한 관심을 빌미로 나 자신에게 하나의 관념을 더 덧씌우는 것 아닐까?

'이렇게 해야해, 저렇게 해야해'라는, 나를 옥죄는 목소리를 하나 더 짊어지게 되는거지.


근본적인 고민은 어쩌면 조직생활 자체에 관한 것일지도.

사실 나는 직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이제 지겨워 진 것 같아.

그것이 마케팅이든 브랜딩이든, HR이든 조직문화든, 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쯤되니 이름만 바뀐 고만고만하고 시시한 일인 것만 같아. 마치 고만고만한 기업들이 만든 고만고만한 물건처럼 나에게 아무런 흥미를 주지 못하면서 관념만 더하는 느낌.


이렇게 계속 조직생활을 하다가는 무엇에도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될까봐 두렵다.

단순히 나이를 먹어서 인지, 회사 생활을 오래해서인지 모르겠다.

이러다 곧 삶도 지겨워지고, 앞으로의 인생도 안 궁금해지면 어떡해.

사실 이미 좀 그렇잖아. 집-회사-집-회사 말고 뭐가 더 있어?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상은 분명 감사할 일이다. 이 관성을 얻기까지 청춘의 나는 얼마나 울었던가.

하지만 어제는 문득 이 일상이 너무 답답하다고 느껴졌다.

강의 하나 더 듣고 성장 조금 더 한다고 해서 내가 뭐가 달라져? 집-회사-집-회사인 건 똑같고, 팀장으로서 새겨야 할 관념들만 늘어가는데? 하는 회의감이 들었더랬다.


더 온전한 나로서, 나를 가두는 관념을 벗어던지고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욕심일까.

알을 깨고 싶다. 훨훨 날아가고 싶다. 설령 그것이 나를 죽이는 길이라 할지라도.

마케팅 수업의 최대 소득은 내가 정말 마케팅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결론이었듯,

3개월 뒤에 이 가설을 확신하게 된다면,

반드시 실행에 옮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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