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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녀의 서재 Dec 01. 2019

부자가 되고싶다? 행복하고 싶다!

(부의 추월차선)


그녀는 드디어 서재에 그녀만의 자리에 앉았다.

서재라고 해봐야 거실 베란다 앞에 눈이 부시게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거실 귀퉁이 자리이다.

어찌보면 서재라 부르기도 민망한 자리지만, 그래도 그녀는 꼭꼭 서재라고 부른다.

사실 서재에서 그녀가 하는 일이라고는 지난달 관리비 고지서를 정리하고 도시가스 요금과 가계부를 쓰는 일 뿐이다.


새로 이사를 오고 관리비는 뭐 이렇게 많이 나왔는지. 이 코딱지 만한 집에 이렇게 돈이 많이 들어가는지.

이제 겨우 내집을 마련했는데. 그녀 이름의 집이 생기면 이세상을 다 갖는 것처럼 기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잊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아래층 눈치를 보고, 절절 매게 하는 어린 아이가 있었고, 매달 그녀를 압박해오는 관리비가 있었다. 그나마 대출 이자가 없음을 감사해야한다. 대출없이 집을 마련한 것. 그것이 그녀의 유일한 자부심이다.


그녀는 이사오기 며칠밤을 새며 가구배치도를 그리고 이케아 홈페이지 문구하나하나 다 외울 정도로 들여다 보며 가구를 마련하여 나름 감각있는 집을 꾸몄다. 하고싶은 일에 비해 공간이 좁은 것이 조금은 섭섭했지만 그래도 기뻤다. 드디어 그녀만의 책상이 생겼다. 그러나 그녀는 그녀가 서재라 부르는 이공간에 얼마나 앉아 있어봤던가? 그녀의 대부분의 시간은 귀퉁이 유리는 깨져 테이프로 떡칠을 하고, 서랍의 자물쇠는 고장나 덜렁거리는 회사 사무실 책상과 함께였다.


어제는 속이 상했다. 그녀의 상사는 아무렇지 않게 그녀의 직책을 변경하라고 했다. 그녀가 나름 열정을 가지고하던 일은 새파란 후배가 맡아 하게되었다. 그녀의 자존심이 무너졌다. 뭐가 문제라는 것인가? 나름 열심히 했고 실적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생각같아서는 상사에게 대들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떠오르는 남편의 목소리 '제발 5년만 버텨줘. 5년만 참고 그다음에 당신 하고 싶은 일 다해. 연금 생각하면서 5년만 참아줘.' 그렇다. 5년을 버티기 위해서는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지낼 수는 없는 것이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다른 생각을 하며, 있지도 않은 취미생활에 신경을 집중해가며 버텨야 한다. 일하고 싶어도 직장이 없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렇게 일을 할 수 있음을 감사해야 한다. 그녀는 스스로의 마음을 달랬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다. 5년 후 하고싶은 일 마음껏 하라는 남편의 말은 절대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대기업에 취업했다고, 공무원이 되었다고 당신의 인생이 성공했다고 착각하지 마라. 그래봤자 일주일에 5일을 노예처럼 일하고 노예처럼 일하기 위해 2일을 쉰다.!'


하!

책 뒷면에 이 글을 보는 순가 그녀는 가슴이 답답해져오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생각. 그래서 어쩌라고. 이 뼈 때리는 글귀 뒤에 밀려오는 짜증. 영리한 문구였다. 그녀는 책값을 지불하고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바로 책을 펼쳐 들었다. 프롤로그 따윈 필요 없었다. '그래 어쩌라고!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되는 건데. 어떻게 하면 회사 때려치고 즐겁게 살 수 있는건데!' 가방에서 볼펜까지 꺼내 들고 읽기 시작했다.


그녀가 이 책을 다 읽는데는 일주일이 넘겨 걸렸다. 처음에 지하철에서는 책을 뚫을 기세로 밑줄을 쳐가며 읽었다. 그러나 힘들게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는 헛 웃음이 나왔다.

책은 그녀에게 말해 주었다. 젋은 나이에 부를 얻고 인생을 즐기라고. 안정된 직장에서 점심을 굶고, 사무실에서는 따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회식비 아까워 갖은 핑계를 대며 회식을 마다하는 그녀. 굳이 할 일도 없이 사무실에 앉아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며 뭐라도 하는 척 시간을 떼우고 받은 초과근무 수당으로 은행 잔고 늘리는 그녀의 삷은 서행차선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리고 서행차선으로는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그 사실은 이미 그녀도 깨닫고 있었다. 그녀가 버는 월급은 잠시 그녀의 통장을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통장에 그 이름들만을 남긴채.


그녀의 노동은 그녀가 책을 읽을 시간, 쇼핑을 할 시간 잠을 잘 시간,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볼 시간 등등 그녀의 행복한 시간 대한 대가였다. 하지만 시간은 제한되어있고 그녀가 자유시간을 위해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더 많은 노동을 한다해도 시간을 유한하므로 그녀는 절대 행복한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추월차선을 타게되면 돈을 위한 노동의 시간을 줄여도 돈은 계속해서 자동적으로 불어날 것이고 추월차선의 사람은 시간, 즉 자유를 얻게 되어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


추월차선을 타려면 사업을 해야 한다.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이 좋아할 무언가. 그리고 그 과정을 자동화하여 저절로 돈이 굴러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 그녀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사업? 자동화? 책에서는 아주 친절하게 어떤 사업을 해야하는지 5가지를 추천해주었다. 임대업, 컴퓨터,소프트웨어 시스템, 콘텐츠 시스템, 유통시스템, 인적자원 시스템. 뭐,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범주였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임대업, 콘텐츠 시스템 이 두가지 였다. 하지만 임대업은 이제 처음으로 자기집을 마련한 그녀에게 무리였다. 콘텐츠 사업, 주변 누군가 야심차게 유투브 채널을 만들었다는 소식에 들어가보니 일가친척과 친구들이 눌러준 좋아요 14건에 자존심에 스크레치만 남긴채 문을 닫았다.

하!.

다시 답답해진다. 왜 이 책에서는 성공사례만 보여주어 그녀의 마음을 들뜨게만 하는지. 사업이라는 것이 십중팔구 망한다는 얘기는 왜 단 한 마디도 해주지 않는지. 그녀의 독서 속도는 점점 느려졌고 5장 부를 만드는 지도: 추월차선 이후부터는 믿줄 귿기를 그만 두었다. 저자는 최대한 자신이 오백만장자가 된 방법을 친절하게 알려주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서행차선에서 부자가 될 수 없다는 말 만큼이나, 그녀 같은 지극히 평범한 아줌마는 추월차선을 탈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만을 주었다.


그래도 이 책을 보며 그녀는 큰 깨달음 같은 것을 얻었다. 시간은 유한하다. 일반사람은 돈을 아끼지만 부자는 시간을 아낀다는 것 말이다.


그녀는 여느때와 다름 없이 저녁을 준비했다. 그래도 책을 읽었으니 조금이라도 변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의무감에 유투브에 자기계발 채널을 보며 반찬을 준비했다. 그녀가 본 것은 김미경 TV에 부자되는 방법이었다. 스마트폰 속 김미경씨가 말했다. "부의 추월차선? 그런게 어딨어! 가장 좋은 투자는 늙어서 60, 70까지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 거야. 그거야 말로 이율 백프로 확실한 돈모으는 방법이지." 그녀는 스마트폰은 뒤집어 버렸다.


남편이 아이들을 재우러 가고, 그녀는 그녀의 서재에 있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까 봤던 유투브의 김미경씨 말을.. 그리고 부의 추월차선을... 김미경씨의 말 역시 그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김미경씨 역시 '부의 추월차선'의 저자 엠제이 드마코씨와 다를바 없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이 두사람의 말의 전제는 자유와 좋아하는 일 이다. 그녀는 노트를 꺼냈다. 그리고 '부자란...'. '부자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버는 사람.' 이라고 적었다. 그녀의 정의에 따라 이세상에 부자가 몇명이나 될까?


그녀는 다시 펜을 들었다.

'Life goes on.

산다는건 그냥 하루하루 겪어나는 것이지

많이 웃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게 진짜 부자지.

그래서 오늘도 그냥 웃지요.'


그리고 노트를 다시 바라보았다.

너무나 뻔한 결론에 그녀는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화끈한 뭔가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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