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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녀의 서재 Dec 01. 2019

깊은 외로움의 결말

우아한 거짓말


그녀는 일주일에 한 시간만은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자 노력했다. 오늘은 그 첫 시간이었다.

상담사의 말처럼 그 시간은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어야 했다. 그 시간에는 자격증 공부도 해서는 안되고 일을 생각해서도 안된다. 마음을 비우고 자연을 보고 햇빛을 느끼고 주변의 소중한 것만 생각하라고 했다.

'말은 쉽지.' 그녀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할지 결정할 수 없었다.


회사 근처에 도서관이 있다는 것은 그녀의 지리한 직장생활에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결국 자연과는 친해지지 못하고 그녀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6시면 일반 열람실 문을 닫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그녀는 별로 손이 가지 않던 문학칸 앞에서 계속 서성이고 있었다. 고전을 보자니 책이 낡아서 싫었고 요즘 베스트 셀러라는 인기도서는 웬지 너무 가벼운것 같아 선뜻 눈이 가지 않았다.

다시 영어, 자격증 코너에 갔다. '그래 여기가 편해. 이번에는 무슨 자격증을 따야하나. 요즘 애들은 토스는 기본이라는데. 하지만 이 나이에 컴퓨터랑 얘기하고 평가 받아야 한다니.'


"언제까지 그렇게 사실건데요?"

오늘 상담사가 그녀에게 한 말이었다. 그녀는 직장에서 실시한 검사에서 '우울증 선고'를 받았다. 다행히 윗사람들한테 보고 되는 내용은 아니라고 했지만 믿을 수 없다.


그녀가 맨처음 우울증 증세를 보인 것은 지하철을 타고 퇴근길에 아무 이유없이 눈물이 똑 떨어지더니 급기야 수도꼭지 물 새어 나오듯 줄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을 때였다. 스스로 지쳤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그녀가 우는 횟수는 늘어갔다. 누워만 있고 싶었다. 그렇게 누워있다보면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에 화가났다. 그녀는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졌다. 그렇게 스스로를 닥달하며 나는 너무 지쳤노라 이제 힘이든다 가족들에게 직장 동료들에게 알아달라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우울이 스스로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가 왜 그러는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 지쳐있었으므로...


상담사는 그녀에게 병원치료를 강력하게 권했다. 그리고 목표가 없으면 살수 없는 본인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그녀 마음 속에 뭔가 인정받고 싶은 대상에게서 인정받지 못해 좌절한 경험. 스스로에게 휴식을 용납하지 못하는 여유없음. 그에 따르는 인간관계의 피곤함. 그녀의 내면 깊은 곳에 아이는 분명 상처를 받았고 상담을 통해 그 아이의 상쳐를 스스로 위로 해주어야만 행복해질 것이라고 했다. 뭔가 계획하고 실천하고 자격증을 따고 자격증에 잠시 만족하고 또다시 밀려드는 허무함에 무너지는 것을 언제까지 반복하겠느냐고 했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모두들 그렇게 살고 있는거 아닌가? 그리고 화가났다. 그녀가 열심히 산 결과는, 치열하게 보낸 나의 하루하루의 결과는 결국 우울증이란 말인가!


그녀는 다시 문학코너로 돌아갔다.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 아무 책이나 집어들고 도서관을 나왔다.

'우아한 거짓말' 제목이 예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운 꽃중년의 여배우가 생각나는 제목이었다.


오늘은 아이 아빠가 일찍오는 날이어서 아이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그녀는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았다. 커피가게 그녀에게 그런 것은 사치였다. 남들은 그런 그녀를 지지리 궁상이라고 부르지만 그렇게 하고 싶은거 다하고, 먹고싶은거 다먹고 언제 돈을 모으고 집을 사겠는가?

그렇게 그녀는 또 다시 스스로에게 인색하게 굴었다.


제목과 달리 읽을 수록 그녀가 기대했던 내용이 아니었다. 그녀는 중, 고등학교 시절을 기억할 수 없다. 하기 싫은걸지도 모른다. 그녀는 고등학교 3년 왕따 생활을 했다. 여중 여고를 다닌 그녀는 고등학교 2학년 ,1년을 맨 뒷자리 혼자 앉았다. 그녀는 교실에서 전염병 환자 같이 취급받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꽃같은 나이. 하지만 그녀의 고등학교 시절은 지옥과도 같았다. 


그녀는 그때의 선생님, 친구들 대부분을 기억하지 못했다. 굳이 기억할 필요도 없었다. 그 책은 그 꽃같은 나이 그녀와 같이 지옥같은 삶을 살았던 한 아이와 그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녀는 그 책을 차마 읽을 수 없었다. 싫었다. '책을 잘 못 골라왔네. 내일 반납해야겠다.'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집에 들어갔다. 애써 밝은 척 '엄마 왔다!' 밝게 외쳐 보았지만 아빠와 게임에 빠져있는 아이가 말했다.

"엄마 왔어? 나 아빠랑 놀게"

"그래..."


방에 들어가 누웠다. 스마트 폰을 켜니 요전에 자살한 설리에 대한 기사가 가득이다.

그 연예인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관종증 환자 정도로 생각했던 그녀는 갑자기 다른 세상으로 떠난 그녀가 몹시도 가여웠다. 기사 중에는 설리가 전날 식료품을 주문했고 새로 방송을 시작했다고 했다. 자살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자살이야.'

그녀는 그렇게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그 예쁜 아이. 설리는 발버둥을 쳤던 것이다.

외롭기 싫어서.

혼자이기 싫어서.

스스로를 사랑해주고 싶어서.

살고 싶어서.

그녀가 늘 그런 것 처럼.


'이렇게 살아서 뭐해. 이제 그만 해도 되지 않을까? 내가 없어도 이세상은 잘 돌아가는데. 지쳤어. 그만 멈추고 싶어.' 눈을 감는다.


"우앙~! 아빠가 잘 못했자나. 내가 힘들여 열심히 만들었는데 아빠가 부셨자나! 엄마한테 이를거야."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무서웠다. '내가 무슨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지?'

그녀는 얼른 일어나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어두컴컴한 방에서 나갔다.


다음날,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기 전에 작가의 말을 펼쳐보았다.

작가 역시 죽고 싶었던 청소년기 그녀를 잡아준 것은 이모의 진심어린 "잘 지내니?" 라는 한마디였다고 했다.

그녀는 털썩 주져앉아 울었다. 눈물이 자꾸 자꾸 흘려내렸다.


'잘 지내니? 아픈데는 없고? 밥은 잘 챙겨 먹니?'

그녀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또 눈물이 났다.

그녀 스스로에게 안부를 물어본 것이 언제 였던가. 그런 적이 있기나 했었나.

그녀는 알것 같았다.

남들이 선고해준 그녀의 병. 우울증의 원인을

그건 그녀 스스로 아껴주는 법을 몰라서라는걸. 자기를 사랑할 줄 몰라서라는걸.


그녀는 도서관을 나왔다.

회사에 입사했을 때 그녀가 그토록 좋아했던

해지기 전의 주황빛으로 물든 하늘을 다시 보았다.

어디선가 밥짓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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