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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녀의 서재 Dec 01. 2019

질풍노도의 시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나를 안다는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요즘들어 본 가장 아리까리한 질문들이었다. 재미삼아 시작한 테스트에 그녀의 고민은 점점 커져갔다. 그녀는 지금 MBTI검사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냥 심리테스트 정도로 생각하고 편안하게 답하시면 되요. 본인에게 가장 맞다고 생각하시는 걸로 선택하시고 그래도 고민스럽다 하면 1만큼이라도 더 끌리는 쪽으로 답변하세요."


그런데 앞쪽에서의 끌림과 뒷쪽에서의 끌림이 자꾸 바뀌니 문제였다. 그녀는 이러다 결과지에 우울증 +a 가 나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었다. 앞쪽에서 그녀는 스스로를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체크했는데 뒷장에서는 현실을 보는 시각이 논리적이기 보다 감정적이다 라고 체크를 하는 식이었다.


'모두 베르테르 때문이야.' 그녀는 요즘 읽고 있던 책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생각했다. 유명한 책인거 아는데 사랑때문에 자살까지 하는 그 이상스런 심리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느날 파란 가을 하늘, 발끝에 차이는 은행잎에 그녀는 스스로 진짜 사랑을 해본적이 있었나?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괴테라는 대 문호의 작품치고 표현방법이 너무 거칠고, 뭐랄까 겉멋만 잔뜩 든 어울리지도 않는 아이돌을 따라하는 중2병 같다고 생각했다. 줄줄줄 이어지는 자연의 찬미, 요즘 세상에 맞지 않는 어투의 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책을 읽는 동안은 스스로 베르테르가 되었다. 베르테르의 로테에 대한 사랑의 감정묘사는 그녀가 짝사랑에 빠졌을 때 느꼈다 바로 그감정 그대로 였다. 거칠지만 순수한 사랑말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괴테가 4번째 사랑에 빠졌을 때 자신의 모습과, 유부녀를 사랑하다 결국 자살을 하고만 친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25세의 나이에 14주만에 쓴 작품이라고 했다. 베르테르의 너무도 예민한 감성과 행동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베르테르의 말 속에서 베르테르보다 한 참을 더 살아낸 그녀 스스로 표현할 수 없던 감정들이, 베르테르의 입을 통해 고스란히 나타나있었다.


인간이란 어디서나 다 만찬가지니까 말야. 사람들은 대개 오로지 생계를 위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하다가 약간 남아 돌아가는 자유 시간이라도 생기면, 도리어 마음이 불안해져서 거기서 벗어나려고 온갖 수단을 다 쓴단 말이다.  
 5월 17일


그랬다. 이건 딱 그녀의 이야기였다. 그녀만이 이렇게 스스로를 닥달하며 스스로를 옭매며 살아가는 줄 았았다. 하지만 베르테르는 인간 모두 그렇게 살아내고 있다고 했다. 허나 베르테르의 이말에 그 스스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듯 전지적 시점에서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가 만약 그의 앞날을 조금이라도 예측할 수 있었더라면 그는 결코 이런말을 자신만만하게 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우울증이란 꼭 게으름과 같다고 할 수 있지요. 그것은 게으름의 일종입니다.                                                                                                                     ... ...
우울증이란 자기가 보잘것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에 대한 내심의 불쾌감, 자기 불만이라고 할 수 있고, 어리석은 허영심의 사주를 받은 질투심이 항상 결부되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지도 못하면서, 행복한 사람들을 보면 못 견뎌하는 그런 것입니다.       
 7월 1일


이렇게 자신만만하던 베르테르는 결국 어찌 되었나. 그의 이 자신만만함은 아직 알베르트, 로테의 약혼자가 나타나기 전이었고, 그가 로테를 떠나 직장생활이라는 것을 하기전 이었다. 그녀는 이런 젊은 베르테르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녀에게도 이렇게 자신만만한 때가 있었겠지. 있었나? 기억도 가물가물했지만 누군가를 내 사람으로 만들수 있다는 희망과 확신이 있었을 때, 그때 그녀도 자신감에 가득차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자신만만하던 베르테르에게도 알베르트가 돌아오면서 사랑의 질풍노도의 시기가 찾아왔다.

이 세상에서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라는 소위 양자 택일의 방식으로 처리되는 일은 아주 드물다. 매부리코와 납작코 사이에도 수많은 단계가 있는 것처럼, 인간의 감정이나 행동에도 가지가지 음영(陰影)이 있는 법이다.
                                                                  ... ...
자네가 주장하는 이론은 이것이지. 즉 로테에 대해서 희망을 걸 수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없는가, 이 두 가지 중의 하나이다. 좋다! 희망이 있다면, 어디까지나 희망을 버리지말고 그 소원을 이루도록 노력하라. 그러나 만일 희망이 없다면 용기를 내서 그 모든 정력을 소모시키는 비참한 감정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최선을 다하라, 이 말이지. 그러나 말하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8월 8일


누군가 짝사랑에 대해 고민상담을 해온다면 그녀 역시 아주 현실적으로 빌헬름처럼 대답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왜! 그녀는 지금 베르테르가 되어있는지. 이것은 베르테르의 말 처럼 실천하기란 정말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비단 사랑뿐만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지만 이루어질 가능성이 희박할 경우 머리는 현실적으로 생각하라고 외치지만, 가슴 속이 짓눌리듯 답답함과 불안감. 이것은 사람의 숙명이 아닌가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고민이 되었다.MBTI테스트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체크해야하는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라면 그녀는 현실을 직시할 줄 알고, 이성적인 생각과, 모든일을 분석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은 베르테르처럼 지극히 감성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감정적인 부분을 숨기고 스스로를 속이며 살았을 뿐.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사람 알베르트와 감정에 너무도 충실한 베르테르.

둘의 첫번째 충돌은 자살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었다.


'당신네 같은 인간은' 하고 나는 소리쳤다. '어떤 이야기를 할 때 그것은 좋다, 그것은 나쁘다, 등등 잘라서 말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모양인데 대체 그런 말을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요?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어떤 행동의 내부적 관계를 모두 규명하고 연구했단 말인가요?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되었는지 당신들은 그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나요? 만일에 그것을 설명할 수 있다면 그렇게까지 성급하게 판단을 내리지는 않을 거요.'
                                                                              ... ...
어떤 사람이 강하다 약하다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일이건 육체적인 일이건 간에 자기의 고통의 한도를 견디어낼 수 있는가 없는가가 문제지요. 따라서 나는 자기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사람을 비겁하다고 부르는 것은 마치 악성 열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을 겁쟁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8얼 12일


그녀는 요전에 들었던 자살방지 교육이 생각났다. 우리나라 자살 몇건... 그들의 자살은 원인은 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그 교육을 듣는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았다. 자살이란 그저 신문지 상에 나오는 사건사고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그들을 나약하다. 그들의 선택은 잘 못되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당연하게 생각해던 것들이 다시 보이는 순간이었다. 우리의 삶에 이거 아니면 저거로 무베듯 자를 수 있는 일이 과연 몇 가지나 될까?


베르테르는 로테를 잊기 위해 다른 지방의 하급직 관리로 취직을 한다. 그곳에서 이름만 남아있는 귀족 아가씨에게 정을 품기도 하지만 백작의 파티에서 쫓겨나고, 신분상의 이유로 귀족아가씨의 외면 등을 경험한다. 로테를 잊기위해 떠났던 베르테르에게 로테는 더욱더 이상적 여인으로 자리잡고, 그녀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만 키우는 계기가 된다.


다시 로테에게 돌아온 베르테르는 스스로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메달린다. 그 자신만만하던 젊은이는 사라지고 이미 알베르트의 아내가 된 로테라는 이룰 수 없는 희망에 깊은 우울감에 빠지게 된다.


질풍노도의 시기

질풍 노도란 '강한 바람'과 '성난 파도'라는 뜻. 청소년기의 격동적인 감정 생활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된다. 즉, 청소년은 어른도 어린이도 아닌 주변인이므로, 여러 면에서 좌절과 불만이 잠재하여 극단적인 사고와 과격한 감정을 곧잘 가지며, 정서적인 동요가 심하다. 그래서 '질풍 노도의 시기'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질풍 노도의 시기 (Basic 중학생이 알아야 할 사회· 과학상식, 2007. 2. 20., 이안태)


그녀는 책의 해설에서 청년 괴테의 '젊은베르테르의 슬픔'은 <질풍노도의 시대>를 이끌었다는 설명을 읽고 생각했다.


'왜? 질풍노도의 시기는 청소년, 청년들만 겪는다고 생각하지?'

주변인이므로, 여러면에서 좌절과 불만이 잠재하는 시기. 이게 꼭 청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그녀 역시 아직 삶의 주인공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삶에 좌절하고 불만을 느꼈다. 그렇다면 그녀도 질풍노도의 시기아닌가? 이놈의 질풍노도의 시기는 언제 끝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헛웃음이 나왔다.


아마도 누구나의 인생에 언제든지 닥쳐오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지만 극단적 사고와 과격한 감정으로 치닫지는 않는다. 자신의 격렬한 감정을 어른이라는 옷으로 누르고 감추고, 속으로 삭히기에 어른에게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말하지 않는 모양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나는 내 마음을 병든 어린애처럼 다루고 있다. 아무리 응석을 부려도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둔다
5월 13일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수 있었던 베르테르가 부러웠다. 어쩌면 저런 베르테르의 태도가 그녀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베르테르의 얇은 어른의 옷은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찢겨지고 헤져 그는 불행해졌다. 하지만 그녀의 어른의 옷은 그녀 스스로 감당하기에 너무 두툼하여 무거웠다

그녀는 이 어른의 옷을 겨울용에서 봄의 산뜻한 옷으로 갈아입는다면 삶이 더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괜찬다고 생각했다. 앞쪽에서 현실적이라고 선택했어도 뒤쪽에서 지극히 감성적으로 선택해도 말이다.


MBTI 검사 결과는 이주일 후에나 받을 수 있을테지만 그녀는 스스로를 질풍노도의 삶에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멋진 사람으로 결론지었다. 그녀는 파란하늘과 떨어지는 낙옆에 사랑을 생각하는 스스로가 참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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