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꽃을 꿰는 고사리손과 필연적 고독을 상상하며

by 마디


얼마 전, 서울 공예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금기숙 기증 특별전을 보고 왔다. 친구가 <우리 거기 가기로 했었잖아 언제 갈래?>하고 보낸 메시지에 그랬었던가...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았지만, 그와 함께 보러 가는 전시는 언제나 좋았기에 그런 건 비밀로 하고 날짜를 잡았다.


며칠 후였던 약속 날이 금방 다가오고, 별 생각 없이 박물관 앞에 도착했다. 바로 앞 광장이 생긴 후엔 올 때마다 새로 생긴 곳이 아닌가 하는 생경함이 든다. 거대하고 규칙적인 디자인을 가진 이국적인 외관의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는 건 처음이었다.


친구와의 대화조차 기억하지 못했듯 큰 기대 없이 전시장에 들어섰지만, 전시 맨 첫 공간에 거대하고 굳건하게 서 있는 드레스 작품에 시작부터 마음을 빼앗겼다. 더 자세히 다가가 보니 서 있는 게 아니라 천장에 매달린 것이었다. 드레스를 이루는 건 원단이 아니라 여러 가닥의 뒤엉킨 철사였는데, 화려하게 빛나는 드레스에 가까이 가 들여다보니 틈틈이 같거나 다른 비즈와 묶인 자투리 천이 눈에 띄었다. 철사 한줄한줄이 엮여 완성된 아름다운 실루엣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유일무이한 방식을 생각해 낼 수 있었을까? 실제 입었을 때 음영이 지는 부분엔 비즈의 밀도와 색감을 다르게 꿰어 변화를 주는 디테일이 작품의 입체성을 더욱 살렸다. 철사가 주재료인 옷이지만, 마치 지금 당장 입을 수 있을 것 같이 부드럽게 느껴졌다.


전시의 막바지엔 금기숙이 걸어온 패션아트의 길을 잠시 엿볼 수 있는 구간에 도달한다. 한쪽 벽면에 가득한 그가 직접 손으로 그린 스케치부터 직접 도맡아 진행했던 여러 프로젝트의 과정이 담긴 파일도 열어볼 수 있다. 그 안엔 계약시 작성한 서류부터 모델들의 사이즈, 각 의상의 도식화, 원단 디테일, 완성된 작품을 착용한 사진 등을 비롯해 식대와 여비, 각종 영수증까지 매우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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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아트 전시인 만큼, 보다 보니 의상디자인을 공부하던 대학교 때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내겐 그토록 부담과 비교와 자괴감의 원천이었던 패션이란 분야가 그에겐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필드인듯 보였다. 자신이 선택한 길을 묵묵히 걸어와 어느새 그 분야를 거시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고, 타인이 만들어놓은 표본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투영시킨 한 작품을 만들어낸 그의 모습은 내게 묘한 감정을 이끌어냈다. 잘하려는 마음에 덜컥 부담감을 갖고 도망쳤던 모습이 떠올라서 였을까? 진정 내 속에 있는 무언가를 나만이 아는 방식으로 세상 밖에 내놓았을 때, 타인의 평가가 부정적이라고 해서 모든 과정과 결과 또한 부정되는 것이 아닌데. 그럼에도 믿어줄 수 있는 단 한명의 사람이 바로 나란 걸 그땐 왜 몰랐을까.

생각한 것을 손으로 직접 실현해 내는 일은 나만이 할 수 있다. 그 과정을 흡수하기 위해선 계속해서 반복해야 할 것이고, 오롯이 내 마음과 머리와 손을 거쳐야만 마침내 하나의 완성품이 탄생할 것이다. 전시의 마지막 공간 한편에 설치된 화면에선 그의 얼굴과 음성이 담긴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작업실에 서서 하염없이 철사를 엮어내고, 쭈그려 앉아 천을 자르고 촘촘히 묶는 그의 모습을 보니 묵묵히 견뎌왔을 고독함을 감히 상상하게 되었다. 그 과정을 상상해 보니 경외감이 훅 다가왔다.

그는 관람객들에게 2018년도 평창 올림픽 의상감독으로 일하던 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피켓 요원의 의상을 제작하기 위해 수 날 동안 철사를 엮고 비즈를 꿰다 문득 어릴 적 엄마와 감꽃을 꿰던 장면이 떠올랐다고 한다. 어머니가 무명실을 고사리손에 쥐여주면, 하나둘씩 꿰어 무명실 한가득 채우고, 그걸 자랑하면 어머니는 양 끝을 묶어 목에 걸어주셨다는 이야기. 그때 쥐던 무명실이 지금은 철사가 되었고, 감꽃은 구슬과 리본이 되었다. 그의 어린시절 이야기가 끝나고 나뭇가지에 열매가 가득 달린 작살나무와 마가목처럼 보이느 사진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작품이 나왔다. 그 시퀀스는 이 전시에 더욱 빠져들게 되는 순간이되었다. 금기숙은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긴다. "뭐든 10년은 해보세요."



친구 연과 오랜만에 만나 혼자 하는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혼자 여행하는 것엔 딱히 관심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거 진짜 맛있다, 여기 되게 멋있다 하며 감상을 곧바로 나눌 수도 없을뿐더러 나중에 돌아와 그 여행을 함께 추억할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함께한 사람이 내가 완전히 잊은 여행의 한 조각을 기억하고 있을 때의 재미도 쏠쏠하다며 공감했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를 보며 혼자 하는 여행도 어쩌면 색다른 매력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작엔 예술은 필연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이 있어야 비로소 원하는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거란 깨달음이 있었다. 금기숙은 어린 시절 감꽃을 꿰던 이야기를 하며 '내가 이걸 하려고 그때 그렇게 감꽃을 꿰었구나'하고 혼자 웃었다고 한다. 작업실 속 금기숙을 보며 '얼마나 고독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그럼에도 그 시간을 견뎌내며 이 결과에 당도하기까지 어떤 내가 있었는지를 하나둘씩 만날 수 있었겠구나' 싶었다. 누구에게 배울 수 없는, 오롯이 내 안에서 파생되어 나만이 실현해 낼 수 있는 그 결과물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 정답은 내가 해냈을 때만 만날 수 있는 것. 그걸 향해왔고, 앞으로도 갈 한 사람을 만난 이 경험은 실로 특별했다. 그 고독한 시간을 거쳐 탄생한 하나의 작품엔 그의 모든 감정과 이야기와 손짓이 한데 담겨 이야기를 만들어낼 테니,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관객과 마주할 때 모두가 기억할 수 있는 사건이 될 테니 말이다. 역작이라는 말은 마땅히 탄생할 수밖에 없는 단어였을 것이다. 금기숙의 손을 거친 역작의 향연 속으로 하염없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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