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그렇게 완벽해?
아니? 넌 생각보다 완벽하지 않아.
아직 세상 밖으로 나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하지 않은 일이 많다. 시작조차 하지 않은 일이 너무 많다.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사라진다. 그동안의 나도 함께 흩어진다.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공허함에 속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답답해졌다.
나는 지금까지 뭘 했지. 뭘 위해 움직이고 있었지.
머릿속은 순식간에 대학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디자인을 전공하던 시절, 예상치 못하게 받은 높은 성적은 뿌듯함보다 이상한 부담감으로 먼저 왔다. 이 점수를 놓치면 더 이상 인정받을 수 없게 되겠지. 교수님 눈에 들기 위해 애쓰다 보니, 정작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을 꺼내 보이는 일은 자꾸 미뤄졌다. 사실은 부정당할까 봐 두려웠다. 내보였다가 내가 통째로 부정당한다고 느끼게 될까 봐. 보이기에 좋은 것만 따라다니다 흥미는 서서히 사라졌고, 창작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단단히 오해했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이 뭘까. 그런 게 있기는 한 걸까.
두려움에 단단히 둘러싸인 마음은 생각을 자꾸만 다른 길로 새어 나가게 했다. 내가 좋아하는 건 분명 따로 있다고, 어딘가에 꽁꽁 숨어있는데 못 찾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걸 찾기 위해 가장 먼저 시도한 건 여행이었다. 나를 옭아매는 것과 가장 멀리 떨어질 수 있는 기회. 그 많은 자극들을 생동감 있게 간직하게 해 준 건 글이었다. 황당함, 외로움, 즐거움, 설렘. 그날의 일과 감정을 적으며 유독 기쁜 날을 즐기고, 슬픈 날을 버텼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코로나 유행으로 급하게 귀국했다. 어디론가 떠나는 일이 불가능해진 자리를,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가 채웠다. 자연스럽게 상담이란 직종에 관심이 생겼고, 자격증 시험에 합격해 상담사로 일하게 되었다.
직업 상담은 사람들의 크고 작은 고민을 들어주는 일부터 직업을 찾기까지의 과정을 함께하는 일이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엄마와 비슷한 나이의 한 내담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래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나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던 사람. 최대한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을 이어갔지만, 속으로는 수십 번 망설이고 있었다. 내가 건네는 말이 이 사람의 몇 달, 길게는 몇 년을 바꿔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항상 그날의 상담이 따라왔다.
퇴근 후 나를 위로해 준 건 책이었다. 위로받는 곳에 또다시 누군가의 이야기가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고 느끼면서도 자꾸만 펼치게 됐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구나 싶어 공감하고, 이해받으며 하루 종일 만난 사람들에 대한 감정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그 무렵 좋아하는 작가가 생겼고, 더 이상 책은 위로의 수단만이 아니었다. 그 작가의 다른 책이 궁금해져 하나둘씩 읽다 보니 새로운 장르를 알게 되고, 책에 나온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에세이로 시작된 독서는 시집, 소설, 인문까지 넓어졌다. 계속된 읽기는 자연스럽게 쓰기로도 이어졌다. 문장을 옮겨 적다 보니 조금씩 내 이야기를 적는 행위로 발전한 것이다. 특히 쓰는 행위는 생각보다도 더 큰 기쁨과 성취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덕분에 서점에서 새롭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주변 가득 둘러싸인 책은 힘들어도 견딜 이유가 되어주었다. 서점에서 일하며 꾸준히 써온 글로 나만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새로운 꿈도 생겼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다 보니, 생각지 못한 것들이 길고 견고한 끈처럼 이어지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정말 없었던 건 아니다. 분명히 있었다. 다만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말로, 아직은 아니라는 말로 자꾸만 미뤄두었을 뿐이다.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질 날을 기다리다 보니 시작은 늘 뒤로 밀렸다. 그치만 이젠 안다.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는 날은 오지 않는다는 걸. 시작은 두려움을 없애고 나서 하는 게 아니라, 두려움을 상쇄시킬 기회라는 걸.
멈춰 있는 시간이 조금씩 짧아지고 있다. 그걸로 충분하다. 거창한 확신이 생겨서가 아니다. 지금부터 한 번 해보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완벽해지고 나서 시작하는 일은 없다. 무언갈 계속하다 보면 나만의 특별한 방식을 체득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조금 부족한 채로 그냥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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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 매일의 나에게
이제 그만 완벽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자. 직관을 행동으로 옮기자. 하고 싶은 걸 그냥 하자. 타인의 시선을 우선순위에 두지 말자. 내 말을 듣자. 머리보다는 마음의 소리에 집중하자. 속을 뻥 뚫리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