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모임에 다녀왔다. 모임에 나가기 시작한 지도 어느새 반년이 지났다. 글을 쓰며 만난 친구와 그의 동료들이 합심한 덕분에 매달 그들을 만난다. 달이 지날수록 그 얼굴들을 바라보는 것이 익숙해짐을 느끼며 모임에 나가던 첫날의 긴장감보다 훨씬 편안해진 마음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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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쨍쨍하던 지난여름, 친구와 에어컨이 빵빵한 전시장에서 나와 차마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로비에 있는 카페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여느 때와 비슷하게 요즘 하는 생각이 화두였고, 읽고 싶은 책은 있는데 혼자서는 시작하기가 쉽지 않을 때가 많다는 내용이 주였다. 원인은 독서 중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몰이해와 다 읽었을 때 어떤 식으로든 감당하게 될 후폭풍을 미리 예견해 자꾸만 읽기를 미루게 되는 것이었다. 그날 우리가 내린 해결책은 바로 독서 모임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읽는 모임을 만들면 좋겠다는 것. 그 말미에는 일단 함께 읽기로 약속한 사람들이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읽게 될 것이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몇 명 더 머리를 맞대면 조금 더 해볼 수 있지 않겠냐는 기대가 담겨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는, 비슷한 생각이 있던 다른 친구를 만났다고 했다. 그와 그의 동료들까지 합세해 머릿속 상상은 머지않아 현실이 되었다. 바라던 바를 실현하는 건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았다. 원하는 마음과 그만치의 추진력, 비슷한 결을 가진 몇 사람의 마음만 있다면 가능하다.
첫 모임부터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곳까지 떠났다. 그렇게 떠난 이야기들은 전혀 다른 분야의 책에 닿았다. 자의론 절대 선택하지 못했을 분야의 책을 펼쳐볼 기회로 이어졌다. 개중에 어떤 소설은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혼자 읽었다면 일단 재미없게 계속 읽거나 잠시 멈춘단 핑계로 영원히 책상 위에 올려졌을지 모르지만, 이번엔 달랐다. 사람들과 함께 읽는다는 사실은 어떤 책임감과 집요함을 불러일으켰고, 인물 관계도를 찾아보며 점점 이해하는 과정은 매우 흥미로웠다. 그 책을 다 읽어내는 동안 책과 친해질 방도를 강구하는 나를 신기해했다. 또 하나 신기한 사실은, 그렇게 읽고 나눈 책이 벌써 일곱 권째라는 것이다.
누군가의 입을 통해 듣게 되는 책의 일부가 때론 너무나 생경하다. 분명 언젠가는 읽고 지나쳤을 부분이지만 이토록 다른 온도로 기억된다는 사실이 매우 신기하다. 다른 사람의 감상이 담겨 다가온 문장은 '왜 이제 알았을까?' 싶을 만큼 좋다. 혼자선 닿지 못할 곳에 미리 가본 사람이 내 손을 붙잡고 데려다주는 것 같아 마음이 설렌다. 그곳이 어쩔 땐 낯설고 어딘지조차 모르겠지만, 또 어쩔 땐 내가 기다려온 곳인 것처럼 자유롭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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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모임을 기대할 땐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하나 있다. 나의 고질적인 문제, 발화하는 순간이 두렵다는 것이다. 여럿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 자연스럽게 돌아오는 그 순간은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순간이다. 단순히 책을 읽으며 어땠는지 말해보는 것뿐인데, 내 입은 마치 발설해선 안 되는 비밀을 품은 것처럼 묵직해진다. 왠지 나보다 훨씬 다양한 지식과 풍부한 감성을 지닌 듯 보이는 저들이 나의 얄팍함을 눈치채고 소스라치게 놀라진 않을까 하며 의기소침해지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어색한 표정과 때때로 떨리는 안면 근육을 들킬 것 같다. 그렇지만 잘하든 못하든 일단 내뱉어야 한다.
때때로는 내 감상이 너무나도 따분하고 진부한 이야기가 될까 말을 아끼게 된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마음을 숨기고 있을 때면 마침 누군가가 내 마음의 소리를 듣고 대신 말해주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비슷한 생각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럴때면 엄청난 공감되고 반가우면서 동시에 그 사람의 솔직함이 너무나도 부러워진다. 아! 그냥 말할걸! 부러움은 어느새 용기로 변한다. 그 용기엔 어느 말이든 뱉어볼 가치가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독서 모임은 책 한 권을 이해하는 것에서 나아가 나와 사람들을 이해하는 시간이 된다. 두 시간이 좀 넘는 시간 동안 비단 책 내용뿐 아니라, 나에 대한 고찰과 사람들을 보고 놀라웠던 것, 배우고 싶은 점들을 자연스레 품는다. 집에 돌아가는 길엔 그런 생각 보따리를 차근차근 풀어보다가 두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좀 더 말하지 못했단 사실에 아쉬워하고, 그래도 뭐든 내뱉었단 사실에 안심하는 것이다. 그치만 한마디씩 쌓여 언젠가는 조금 더 말하고, 나아가 행동할 수 있게 될 것이란 기대감 또한 가지게 된다.
어떤 부분이 좋았다, 싫었다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입을 바라보는 순간이 좋다. 어떤 감상이든 말로 꺼내어지면 가능해진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내게서 너로, 네게서 나로 옮겨지는 시점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