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앤롤! 일요일은 하루 종일 락의 정취에 심취해 있었다. 오랜만에 친구와 간 페스티벌은 정신이 아득할 만큼 재미있었다. 참여 가수 대부분이 헤드라이너여도 손색없을 라인업은 우리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매력 있었으리라. 3개의 구역으로 나뉜 공연장은 한 곳도 빠짐없이 사람들로 들어차 있었다.
공연 날이 다가오기 전부터 일찌감치 숙지해 둔 타임테이블에 따라 가장 먼저 보고 싶었던 아티스트의 무대로 향했다. 오랫동안 걸어온 장르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그녀의 공연에선 오랜 내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성량이나 음색 등 라이브의 완성도는 말할 것이 없고, 무엇보다 좋아하는 걸 하는 사람의 눈빛과 표정은 저리도 빛나는구나 싶어 보는 내내 자꾸만 눈물이 차올랐다. 무대 앞 관객들에게 가득 전달되는 기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고 아름다웠다.
무대가 끝나갈 때쯤, 벅차오르는 감정을 채 정리하지 못한 채 분주히 움직였다. 독특한 음색을 가진 알앤비 가수의 공연이 또 다른 홀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한 번 쯤 들어봤을 노래의 라이브는 누구나 궁금한 법. 다음 공연장으로 들어가기 위한 줄은 길게 늘어지는 걸로도 모자라 몇 번이고 꺾여 있었다. 겨우 들어간 공연장에선 조금이라도 더 좋은 시야를 확보하려는 관객들의 발소리와 펜스에 가까이 붙지 말라는 안전요원 말소리의 연속이었다. 사람들의 열정을 확 실감한 우린 앞으로 남은 공연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공략할 수 있을지 골몰했다. 본디 보고 싶던 무대는 5개가 남아 있었지만, 동선의 효율을 따져보니 역시 한 무대는 포기해야 겠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래. 과감히 포기하자!
일단은 보고 있던 공연장에서 여유있게 벗어나 다음 공연이 예정된 스테이지로 향했다. 다행히 아직 그리 북적거리지 않는 분위기였고, 꽤 좋은 시야에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다음 가수는 유독 활기찬 에너지를 가졌기에,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뛰어다닐 모습을 상상하다 키득거렸는데, 예상대로 완전히 들어맞았다. 공연이 시작되고 호응이 점점 커지자, 점프와 뜀박질에 심지어는 물병과 수건까지 던지며 신남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덩달아 신난 관객들도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폴짝폴짝 뛰었다. 무대 뒤 커다란 스크린 영상의 퀄리티, 음향, 조명, 팀워크, 라이브 등 무대를 이루는 요소는 참 많지만, 무엇보다도 길이길이 남을 무대인가를 결정짓는 요소는 가수의 몰입도라는 것을 확실하게 실감했다.
*
오후까지 보고 싶던 공연을 모두 끝내고, 간단하게 요기하며 저녁 공연을 위한 마음가짐을 다잡았다. 이 페스티벌에 오게 된 결정적 이유인 무대들이 줄줄이 이어질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여유로운 시간이었지만, 포기한 무대를 뒤로하고 기다리는 공연이 이루어질 스테이지로 향했다. 거의 맨 앞에서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보람을 느꼈다. 먼저 순서로는 미국에서 온 밴드의 공연이 있었다. 전혀 몰랐던 팀의 음악을 라이브로 접해볼 수 있다는 게 바로 페스티벌의 매력. 활짝 웃으며 노래하던 보컬과 심취한 몸짓으로 기타를 치던 연주자, 두 멤버가 무대 한중간에서 두 눈을 마주치던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기다리던 공연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사람들은 일제히 기대의 환호성을 보냈다. 워낙 특이한 개성을 가진 그룹인 만큼 첫 무대부터 심상치 않았다. 가려졌던 스크린이 걷혀도 음악만 들릴 뿐 그들의 모습은 없었다. 인트로가 끝나자 까만 커튼 앞으로 하나둘씩 등장하더니 대열을 맞추고 마치 곡예사 같은 기이한 몸짓을 선보였다. 그들의 랩과 보컬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낯설어할 틈 없이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공연은 어느새 절정으로 치달았고, 히트곡의 전주가 흘러나오자 몸이 절로 움직였다. 기다릴 땐 경쟁자처럼 느껴졌던 양 옆의 사람들은 마치 원래 아는 사이였던 듯 같은 템포로 점프했다. 이름도 성격도 모르는 사람들과 아무런 약속 없이 합심할 수 있다는 건 바로 페스티벌을 계속해서 즐기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이 공연 뒤에도 기대되는 두 무대가 연속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하나 되었던 사람들은 히트곡이 끝나갈 쯤 서서히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나가는 문 앞엔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이곳은 뭉쳤다 흩어지는 것이 이토록 자유로운 곳이란 걸 다시금 실감했다.
나오자마자 발걸음을 바삐 움직였다. 이미 흥이 오를 대로 오른 터라 차는 숨에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한껏 웃음을 머금고 다시 돌아온 메인 스테이지는 이미 꽉 차 있었고, 대망의 헤드라이너를 기다렸다. 옆 사람과 떠드는 작은 음성들은 마치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처럼 웅성였다. 7년 만에 페스티벌 무대에 서는 그들을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은 아마 모두 같았을 것이다. 인디음악이 대중성을 얻는 데 큰 영향을 주기도 한 이 팀은 몽환적이고 감각적인 음악뿐 아니라 패션센스로도 언제나 주목받아 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공연 때마다 매번 다르게 착용하는 특이한 모자가 재미있는데, 이번엔 빨간색, 뾰족모자, 색깔 비니 등 화려함에 눈이 갔다. 그러던 중 첫 곡의 반주가 들렸고 모두들 열렬히 환호했다. 하루 종일 제 몫을 달성하느라 바빴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 팀의 음악을 경청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경이롭게 느껴졌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뭐든 가능하게 한다. 사람들의 입에선 어렵지 않게 영어 가사가 새어 나왔다.
모든 공연이 끝나고 나가는 길, 공연장 밖은 앵콜곡을 따라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덩달아 따라 부르는데 왠지 마음이 벅차오르는 동시에 이루 말할 수 없이 짜릿했다. 각자 다른 스타일의 옷을 입고 다른 팀의 슬로건을 목에 둘렀지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모두 한마음이었다. 아무런 약속도 없이 시작한 흥얼거림이 모두의 노래가 될 때, 입가에 하나같이 미소가 번 있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커다란 원을 그리며 돌던 사람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다만 빨갛게 반짝거리던 조명처럼 뜨거운 마음을 품기 전으로 돌아갈 순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