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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TA Feb 05. 2018

미지근한 물

어떤 일이든 익숙해지면 '미지근한 물'이 된다

좁디 좁았던, 내 자리


나의 퇴사의 관한 이야기

===



2017년 4월 17일, 사직서를 썼다.
7년여의 회사생활을 정리했다.

어쩌면 입사 1~2년 차에 쓸 수도 있었을 텐데, 사직서를 쓰는 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입사 초기에 정말 이해불가 또라이들이 나를 힘들게 했고, 업무를 하면서 예상 밖에 사회의 더러운 면면을 마주하며, 퇴사에 대한 열망(?)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그런 점들은 익숙해져 갔고 내게 주어진 상황과 환경도 많이 변해갔다.  또라이들도 내 곁을 떠나갔고, 업무가 변경되면서 중간중간 리프래쉬 되는 순간도 있었다. 그래서 7년이라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시간들 중에는 만족스럽고 즐거웠던 순간들도 분명 있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사직서를 10년, 20년 뒤에 쓸 수도 있었을 것 같다. 7년을 다녀보니, 10년이고 20년이고 계속 회사를 다닐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게 가장 무섭다고 느낀 부분이었다. 그때가 되면 더더욱 회사를 그만둘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점점 '미지근한 물'이 되어갔고, 계속된 회사생활은 나를 계속 더 미지근하게 만들 것이라는 걸 직감했다.




어쩌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 가장 쉽고 편하다. 어렵사리 새로운 일을 시작하더라도, 또 언젠간 미지근해질 텐데 뭐. 그런데 그런 식의 생각이 더 이상 위안이 되지 않았다. 당장 '미지근한 나'를 새롭게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미지근해질 나'를 언제든지 건져 올려 줄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싶었다. 지금은 실패도 경험이 될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했다. 바로 지금, 퇴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막상 퇴사를 현실로 마주하니, 무섭기도 했다. 그렇지만, '회사에서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사람'이 나의 미래라면, 그것도 그다지 밝아 보이지는 않았다. 




이'말년'의 최후 ㅎㅎㅎ


회사생활을 정리하는데, 특별히 미련 같은 건 없었다. 조금 아쉽겠다고 느낀 건 월급뿐, 그 외 다른 건 없었다. 회사와 나의 심적 거리감은 딱 그 정도였구나 싶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생활까지 옆길로 한번 새어본 적 없었던 나에게 '퇴사'는 일생 처음 저지른 '일탈'로 느껴지기도 했다. 마지막 날 오후에 회사를 나오는데, 날씨가 정말 화창했던 게 기억이 난다. 사이렌이라도 울릴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생각보다 마음이 가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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