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인간형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되나

by RITA

“그래도 학교는 가야지. 조퇴를 하더라도.”
열이 펄펄 나고 몸살이 나도, 토할 것 같이 속이 안 좋아도, 초등학생인 나에게 했던 엄마의 대답은 늘 단호했다. 교통사고로 3개월 간 입원했었던 중학교 3학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개근상을 받았는데, 그건 나에게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부모님이 나에게 물려준 가치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고 회사생활을 할 때에도 그 ‘근면성실’의 면모는 유감없이 발휘됐다. 대학 때 낮술은 먹더라도 출석은 빠지지 않았으며, 아침 8시 58분에 사무실 책상에 앉는 한이 있더라도 뛰고 또 뛰었으며 결근은 내 사전에 없는 얘기였다. (갑자기 성실의 의미가 이상해지네 킄) 20대 내내 대학 과제도 회사 보고서도 원고도 성실하게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부모님이 그랬듯이, 꾸준하게 성실함을 무기로 살아왔다.


image_599607331516704578085.jpg 성실함의 메카(?), 도쿄 진보초



문제는 퇴사하고 나서다. 언젠가부터 죄책감 또는 불안감 비스무리한 감정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내가 갖게 된 시간적 여유에 대해 불안해했다. 심지어 감기 기운이 있어서 오전을 소파에 누워서 보내는 날에도 그 모습이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되나? 이래도 되나?”

회사에 있을 때 일만 한 것도 아니었으면서 (동료들과 커피타임은 물론이고, 퇴근시간을 기다리며 무의미한 웹서핑을 반복했던 시간도 많았었다.) '회사 안'에 있다는 것과 '회사 밖'에 있다는 것, 이 차이가 이토록 다른 감정을 가져다주었다. 지금의 생활을 기존의 회사생활에 자꾸 대입하고 비교하려 들었다. 쓸데없는 데 시간 낭비하는 회사생활을 청산하겠다고 해놓고선.



image_3823660401516704578087.jpg 아무래도 넌 회사원 타입인가봐 (아니야)


게다가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퇴사 후 짧은 기간 동안 생각보다는 많은 일을 벌였고, 지금도 벌이고 있더라는 거다. 그걸 자각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얼마 전에 만난 친한 지인이 나에게 이런 얘길 했을 때 새삼 깨닫게 됐다.

"나는 퇴사하면 아무것도 안 할 거야. 너도 그럴 줄 알았는데 이것저것 하는 거 보면 신기하다니까. 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 부지런한 인간이었어."

그렇다. 뭔가 하고 있다. 생각보다 열심히.
'성실'의 가치가 이상하게 나를 옭아맸던 건 아니었는지, 퇴사 후 미처 마음의 여유를 찾지 못했던 건 아니었는지 뒤돌아보게 됐다. 지금의 생활은 회사생활과 다르다.(달라야 하고,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지금 '성실하게' 그것에 적응 중이다. 남이 혹은 사회가 정해준 스케줄이 아니라, 내 나름의 생활패턴을 찾아가자.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씩 마음도 편해졌다.



image_2112966181516704578087.jpg ※ 두번째 사진과 같은 고양이 맞습니다. (많이 컸드랬죠)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발전하게 되어 있고 적응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길 위에서 나이가 조금 더 들었고,
이제는 불안한 소년에서 담담한 어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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