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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TA Feb 20. 2018

성실한 인간형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되나

“그래도 학교는 가야지. 조퇴를 하더라도.”
열이 펄펄 나고 몸살이 나도, 토할 것 같이 속이 안 좋아도, 초등학생인 나에게 했던 엄마의 대답은 늘 단호했다. 교통사고로 3개월 간 입원했었던 중학교 3학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개근상을 받았는데, 그건 나에게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부모님이 나에게 물려준 가치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고 회사생활을 할 때에도 그 ‘근면성실’의 면모는 유감없이 발휘됐다. 대학 때 낮술은 먹더라도 출석은 빠지지 않았으며, 아침 8시 58분에 사무실 책상에 앉는 한이 있더라도 뛰고 또 뛰었으며 결근은 내 사전에 없는 얘기였다. (갑자기 성실의 의미가 이상해지네 킄) 20대 내내 대학 과제도 회사 보고서도 원고도 성실하게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부모님이 그랬듯이, 꾸준하게 성실함을 무기로 살아왔다.


성실함의 메카(?), 도쿄 진보초



문제는 퇴사하고 나서다. 언젠가부터 죄책감 또는 불안감 비스무리한 감정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내가 갖게 된 시간적 여유에 대해 불안해했다. 심지어 감기 기운이 있어서 오전을 소파에 누워서 보내는 날에도 그 모습이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되나? 이래도 되나?”

회사에 있을 때 일만 한 것도 아니었으면서 (동료들과 커피타임은 물론이고, 퇴근시간을 기다리며 무의미한 웹서핑을 반복했던 시간도 많았었다.) '회사 안'에 있다는 것과 '회사 밖'에 있다는 것, 이 차이가 이토록 다른 감정을 가져다주었다. 지금의 생활을 기존의 회사생활에 자꾸 대입하고 비교하려 들었다. 쓸데없는 데 시간 낭비하는 회사생활을 청산하겠다고 해놓고선.



아무래도 넌 회사원 타입인가봐 (아니야)


게다가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퇴사 후 짧은 기간 동안 생각보다는 많은 일을 벌였고, 지금도 벌이고 있더라는 거다. 그걸 자각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얼마 전에 만난 친한 지인이 나에게 이런 얘길 했을 때 새삼 깨닫게 됐다.

"나는 퇴사하면 아무것도 안 할 거야. 너도 그럴 줄 알았는데 이것저것 하는 거 보면 신기하다니까. 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 부지런한 인간이었어."

그렇다. 뭔가 하고 있다. 생각보다 열심히.
'성실'의 가치가 이상하게 나를 옭아맸던 건 아니었는지, 퇴사 후 미처 마음의 여유를 찾지 못했던 건 아니었는지 뒤돌아보게 됐다. 지금의 생활은 회사생활과 다르다.(달라야 하고,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지금 '성실하게' 그것에 적응 중이다. 남이 혹은 사회가 정해준 스케줄이 아니라, 내 나름의 생활패턴을 찾아가자.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씩 마음도 편해졌다. 



※ 두번째 사진과 같은 고양이 맞습니다. (많이 컸드랬죠)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발전하게 되어 있고 적응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길 위에서 나이가 조금 더 들었고, 
이제는 불안한 소년에서 담담한 어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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