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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ana Apr 23. 2023

해열제

 대여섯 살까지는 아이가 열감기에 자주 걸리곤 했다. 약 많이 먹이면 안 된다라는 신념 때문에 38도 가까이 열이 오르는 아이를 밤새 물수건으로 닦이며 날을 새곤 했다.


  첫째만 낳았을 때는 초보 엄마여서 육아에 대한 융통성 없는 확고한 고정관념과 신념 때문에 아이와 나 둘 다 힘든 시간들을 보내곤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날밤을 새고 에너지 고갈로 아무것도 할 기운이 없는 아침을 맞이했던 기억이 있다. 차라리 어느 정도 열이 올라서 아이가 힘들어하면 해열제 도움을 받아 편안하게 해 주는 편이 아이도 나도 서로 덜 힘들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새 학기 시작하고 근 한 달은 잘 지나갔다. 아이는 작년보다 더 좋은 담임선생님을 만났고, 친한 단짝 친구들과 한 반이 되어 새 학년 출발이 괜찮았다. 한 학년 올라가니 회장선거도 나가보고 싶다며 의욕도 넘쳤고, 단원평가 봐온 점수도 제법 잘 받아왔다. 오후에 과제나 숙제도 그럭저럭 많이 힘들지 않게 해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편안한 한 달이 지나갔고, 병원에 정기검진 받으러 가게 되었다. 약 처방을 조금 조정할 참이었다.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는 자기 조절이 가능하다면 약을 굳이 늘리지 않는 방향으로 해보자고 하시는 분이다. 약 용량을 늘리려면 체중이 늘어야 하는데 아이 몸무게가 크게 느는 편은 아니어서 근 1년간 총 40mg  안에서 약을 조절하고 있었다. 자기 전에는 스트라테라, 아침에는 메디키넷, 오후에는 페니드정을 복용하고 있었다. 작년까지는 담임선생님 영향도 있었는 건지 약이 안 맞았던 건지 학교에서의 피드백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올해 첫 한 달은 무난한 것 같아서 학교에서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오전약을 더 늘릴 수 있는지 여쭈어보았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밤에 먹는 스트라테라를 아예 빼고 오전에 먹고 있는 메디키넷 용량을 올려보자고 하셨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그간 스트라테라의 용량을 조금씩 줄이고는 있었는데 이번에 완전히 먹지 않는 방향으로 바뀐 탓이었을까 집에서 오후에 아이와 함께 과제를 봐주는데 그렇게 에너지가 많이 들 수가 없었다. 책상에 앉히기까지도 너무 힘들었고 책상 앞에 앉아도 아이는 딴짓하느라 여념이 없다.  


 “ㅇㅇ아, 집중 좀 해보자”

 “엄마 나도 집중하고 싶은데 내 생각이 저기 책장에 가 있는 거 같아. 지우개에도 가 있고, 식탁에도 가있고 해서 가져와야 해.”

 한다. 그러면서 아이는 해맑게 손으로 자기 정신을 하나하나 끌어다가 머릿속에 집어넣는 시늉을 한다. 나만 속이 타고 아이는 그저 천진난만하다.


 집으로 오시는 학습지 선생님이나 과외 선생님도 수업시간 내내 진도 나가기보다는 아이를 자리에 앉히느라 진을 다 빼시는 모습을 보자니 나도 그런데 선생님들은 오죽하실까 싶었다. 약 처방은 3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다시 받아왔는데 이렇게 3개월을 보낼 순 없었다. 집에 아직 남아있던 스트라테라는 그전 처방대로 다시 바꾸어 먹는 게 나은 것 같았다.


 아이와 씨름하는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 때면 내가 깨진 항아리에 물을 붓고 있는 건지 콩나물시루에 물을 붓고 있는 건지 알 길을 없는 느낌이다. 나름 애쓰고 있지만 흐르는 물만으로도 쑥쑥 자라주는 콩나물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가득한데 이렇게 보내는 시간들이 그런 의미일지 모를 뿐이다.


 그렇게 예전 처방대로 며칠 변화를 지켜보고 빠르게 병원 예약을 변경해서 다시 처방을 받았다. 그리고 집에서 추이를 보면서 조절이 가능하도록 최소량 캡슐로 처방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용량이 큰 캡슐로 받아오면 내용물을 눈대중으로 나눠서 먹여야 해서 힘들기 때문이다. 캡슐 없이 먹을 경우 약이 빠르게 흡수되어서 효과를 제대로 얻기도 어렵다.


 약을 조절하고 마치 어렸을 때 해열제로 평온이 찾아온 것처럼 아이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선생님들의 피드백도 3월 초에 많이 힘들었던 것에 비하면 좋아졌다고 했다. 약을 먹어도 힘든 건 마찬가지지만 소모되는 에너지의 강도가 약했다. 아이에게 높였던 잔소리도 낮아졌다.


 조용한 adhd는 신경 써서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아서 남들은 잘 모른다. 엄마인 내가 힘들다고 말해도 공감받기도 힘들다. 약도 병원에서 처방해 주는 그대로 먹기보다는 약효를 잘 관찰해서 조절할 필요를 캐치하는 것도 엄마의 몫이다. adhd는 나을 수 있고, 속도가 좀 느릴 뿐 해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걱정되고 막막한 감정을 감당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괜찮다. 아이도 잘 자라고 있고, 나도 잘하고 있다. 다독이자. 잘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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