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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ana Jul 08. 2023

브레이크

 하루하루 바쁘게 지내다 보면 차분히 아이를 찬찬히 들여다봐줄 수 없는 날이 허다하다. 그러다가 한 번씩 브레이크를 밟고 다시 돌아봐야 한다고 머리를 스칠 때면 모든 것을 잠시 멈춘다.


 아이와 이야기의 물꼬를 튼 날이 그런 날이다.


첫째는 책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줘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나의 고된 의지의 결과라고 생각했었는데 착각이었다.


 아이 말에 유치원 때 처음 도서관에 갔을 때 조용해서 좋았다고 한다. 그렇게 책꽂이에서 책을 한 권 꺼내어서 읽었는데 이야기에 빠져들어서 주변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단다. 그 시간을 오래 가지고 싶어서 짧은 책에서 점점 긴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이는 본인 특유의 어수선함은 아는지 모르는지 학교 교실의 아이들 뛰는 소리, 떠드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울 때면 책을 읽는다고 한다. 요즘은 교실마다 학급문고라고 책을 구비해 두는데 학급문고 책꽂이 앞에서 책을 읽으면 그 모든 어수선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아이는 학교를 오갈 때면 나뭇잎들이 바람에 삭삭 스치는 소리가 좋다고 한다. 책장 넘기는 소리랑 비슷해서 길 가다가 눈 감고 그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사회성 빠른 친구들에게 끼지 못해 참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또래보다 2~3년은 미숙하게 행동하는 아이의 모습이 성숙한 친구들에게는 어려 보였나 보다. 본인 마음은 다가가고 싶은데 오해를 받으니 아이에게는 상처가 컸던 것 같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럴 때면 나도 참 마음이 아프다.


 2학년 때 이사로 인해 전학을 하고는 다행히 정말 좋은 친구와 단짝이 되었다. 아직까지도 둘은 돈독한 친구사이다. 그 친구는 사회성이 좋고 리더십도 있다. 서툰 것 많은 우리 아이가 그린 그림이나 작품을 보거나 마구 떠오르는 생각들을 수다스럽게 털어놓아도 아이디어가 너무 좋다며 감탄을 해 준다. 고마운 친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짝친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예전의 기억이나 마음이 있었나 보다. 친구에게도 엄마에게도 절대로 말하지 않았는데 오늘 처음 이야기 한다고 했다.


 '단짝친구는 인기가 많지만 나는 그 친구만큼 인기가 없어. 친구들은 나의 단짝 말은 듣지만 내 말은 듣지 않아. 일부러 괜찮은 척, 밝은 척 행동하는데 그 모습은 내 진짜 모습이 아닌 것 같아.'


 앞뒤생각 없이 그저 털털하고 천진난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나름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 말로는 혹여나 친구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볼일까 싶어서 일부러 다른 아이들과 다르거나 독특한 생각을 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 아이들이 자기를 더 특별하게 볼 것 같았다고 한다. 그래서 미술시간이나 글쓰기 시간에 다른 친구들이 한 것들을 보고 아이들이 하지 않은 그림이나 글을 쓰려고 한다고.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또 항상 늦어져서 느리다고 또래들에게 한 마디씩 들었던 모양이다.  


 그럴 때면 학교 위클래스에 가서 심리상담을 받으러 간다고 한다. 아이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고 했다. 요즘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는 MBTI나 심리테스트 같은 것이 유행인 것 같다. 위클래스 학교상담소도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어도 언제든지 가서 놀 수도 있는 듯했다. 그래서 아이는 내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상담센터도 찾아가고 있었다.


  5학년이 되면 또래 상담을 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꼭 지원을 해보고 싶단다. 자기처럼 고민하는 친구를 상담해주고 싶다고 했다. 아이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가고 있었던 거다.


 또 새 학년이 되는 건 항상 기대가 된단다.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한다고 했을 때도, 전학을 왔을 때도 그랬다고. 그래서 학교 가는 것이 너무 신난단다. 자신에 대해 전혀 몰랐던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고 한다.


 친구에게 상처도 받았지만, 또 새로운 친구를 통해서 치유받아 가는 아이 나름의 삶의 방식을 칭찬해주고 싶다.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만의 해소법을 찾아낸 것도 기특할 뿐이다. 아직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작은 머릿속에는 참 많은 이야기와 생각이 있었다.


 하루 중 해야 할 일과가 쌓이면 그것들 처리하기에 바빠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아이에게 조금만 틈을 주면 말이 많아지고 실낱같은 집중력으로 빼앗기는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일상을 달리면서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일부러 브레이크를 잡으려 한다. 아이의 마음을 읽어줄 시간은 속도를 늦춰야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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