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지 않는 찬스

모델링의 부재

by 교수엄마

오전부터 이어지는 마라톤 회의를 마치고 연구실로 돌아와 막 책상에 앉았는데 쌍둥이들 전화가 연달아 왔다.

부재중 전화도 두통이나 와있어서 급한일이 생겼나보다 내심 걱정이 되던 참이다.

첫째가 전화와 '엄마 엄마~' 다급한 목소리로 부르길래 '그래 무슨 일이 있니~?'라고 묻자 '아니야..'뚝하고 전화가 끊긴다.

일이 분쯤 지났을까. 이번에는 둘째가 전화와 '엄마.. 있잖아요. 우리 오늘 찬스 써도 될까요~?' 하고 묻는다. 찬스..

우리 꼬맹이들한테는 자기들이 정한 찬스가 있다.


유아기. 아동기에는 일상 속에서의 규칙적인 습관 형성이 중요하다. 아이들은 자신과 친밀한 성인 즉 부모나 교사의 행동이나 언어 등을 모방하고 연습과 반복을 통해 학습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부모나 교사의 모델링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학습이 이루어진 행동양식은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면화, 습관화가 되었을 때 성인기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쌍둥이에게 규칙적인 학습습관을 길러주고 싶었다. 쌍둥이들과 가족회의를 통해 평일 아침에 10분 정도 분량의 학습 활동을 하기로 했다. 활동 내용은 대략 수학 문제 한 페이지, 국어 글 읽기 한 장 정도이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알람까지 맞춰가며 일어나서 부지런히 학습활동을 하였다. 잘하고 있어.. 이대로 가면 학습습관이 잘 형성되겠구나 내심 기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두어달 때쯤 지났을까.

가족회의 때 첫째가 '엄마 활동을 하지 못하는 날도 있을 수 있으니 일요일에 활동을 미리 해서 찬스를 만들어놓고 활동을 못하는 날 찬스를 쓰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좋은 생각이구나. 미리 하는 건 좋은 거지..' 나는 활동을 하기 싫은 날은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서 찬성표를 보냈다.

'엄마 나 찬스 2개 만들었어요.'

그 다음주도 '엄마 나 찬스 3개 만들었어요.'

차곡차곡 쌓인 찬스가 5개쯤 되었을 무렵 멀리사는 사촌 형들의 방문소식이 들렸다. 놀고 싶은 아이들은 이때야말로 찬스를 쓰겠다며 '엄마 우리 찬스 쓸게요' 한다.

늦잠을 잔 날도 '엄마 우리 찬스요'

다른 학교 숙제가 있는 날도 '엄마 찬스요'

찬스를 남발한지 한 달쯤 되어 찬스는 동이 났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엄마 찬스요'라고 한다.

뭔가 잘못되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방향이 틀어진 거지.. 탄력적으로 대처한 게 문제였을까. 가족회의에서 찬성표를 보내지 말았어야 하나..


좋은 습관은 바람직한 모델링이 중요한데 내가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이들이 매일같이 열심히 활동하는 그 시간에 나는 잠을 자고 있었다. 거기서부터 단추가 틀어졌구나..

야행성인 나는 밤에 책을 보고 아침에는 침대와

한 몸인데도 아침부터 책을 봤어야 하나 후회가 밀려왔다.. 내일부터 일찍 일어나 책을 펼쳐야지 다짐해본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따로 논 나의 행동은 아직도 습관화가 안되었으며 우리 아이들의 마르지 않는 찬스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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