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에 올라오면서 쌍둥이들은 끊임없이 아빠와 엄마에게 퀴즈를 낸다.
범인을 찾아내는 추리 퀴즈, 인천 앞바다 반대말과 같은 난센스 퀴즈를 내기도 하고 심지어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퀴즈를 지어내기도 한다.
'엄마, 사람이 일생동안 가장 많이 하는 소리는 뭐게요~?'
'글쎄.. 사랑해~? 고마워~?'
'숨소리요'
'엄마, 가난해도 부자, 넉넉해도 부자라고 불리는 것은 뭐게요~?'
'글쎄.. 마음 부자~?'
'아버지와 아들이요'
아이들이 내는 퀴즈 정답의 대부분을 나는 놓친다. 아이들은 깔깔대며 '형아 누나들 가르치는 교수엄마면서 이런 문제도 못 풀어요?' 라며 놀린다.
교수엄마.. 그래 난 교수엄마였지..
순간 둘째 아이의 눈가에 깊이 박힌 흉터가 눈에 들어왔다.
쌍둥이를 키우면서 논문을 써나가는 과정은 때때로 울고 싶을 만큼 힘든 시간이었다.
밤마다 카페에서 논문을 쓰다 집에 늦게 가곤 했는데 하루는 둘째가 베란다 창문 모서리에 다쳐 깊은 상처가 생겼다.
밤에 집에 돌아와 피가 흥건한 거즈를 보며 많이도 울었다.
둘째는 1년 가까이 붕대를 하고 다녔고 지금도 깊은 흉터가 눈가에 남아있다.
내 탓이 아니야 라고 생각하다가도 주홍글씨처럼 새겨진 아이의 흉터를 볼 때면 논문을 쓰려는 내 이기심에 아이가 다친 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밀려온다.
직장을 다니는, 공부를 하는 엄마라면 대부분 가슴속에 아이에 대한 미안함이 한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다만 함께하는 절대 시간이 부족했더라도 사랑의 크기는 절대 부족하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부모와 아이들과의 상호작용은 양육의 시간보다 양질의 양육이 중요하다는 선행연구 결과들을 위안삼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