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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더 홀씨 Dec 29. 2021

굿올'데이즈 호텔에서의 하룻밤

10월의 브랜드데이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 오후, 피플의 디자이너들은 회사를 떠나 부산 시내에서 경험할 수 있는 브랜드를 찾아 떠나는 디자인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경험과 관점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분야인 만큼 잠시 컴퓨터 앞을 떠나 여러 브랜드를 실제로 경험하며 서로 다른 관점을 나누어보는 과정은 앞으로 우리가 만날 다양한 디자인 작업에 입체감을 더해줄 것입니다. 


이번 달의 브랜드데이는 부산을 찾는 여행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호텔 '굿올'데이즈'에서 머물고 온 호텔 투숙기입니다. 중앙동에 위치한 굿올'데이즈 카페 & 호텔은 피스앤플렌티에서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진행한 장기 프로젝트였습니다. 호텔을 소개하는 문장 하나부터 판매되는 굿즈의 그림 하나하나까지 직접 만든 공간에서 보내는 특별한 하룻밤에 대한 이야기,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굿올'데이즈 대표님을 만난 건 2020년 해가 넘어가던 12월, 어설프게 만들어놓았던 홈페이지의 디자인 문의 게시판에 올라온 문의글을 통해서였다. 중앙동에 호텔을 만들 예정인데 로컬의 콘텐츠가 담겨있고 엽서가 메인인 호텔의 브랜딩을 의뢰한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우리처럼 작은 회사에 호텔 브랜딩이라니?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대표님께 전화를 걸었고 우리가 그동안 여기저기 조금씩 적어놓은 우리의 글들을 모두 읽고 오셨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시작으로 우리 모두 부산이라는 아름다운 도시에 매료되어 부산사람이 되었다는 공통분모를 발견하며 굿올'데이즈의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브랜딩 개발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다음 다...음에... 



굿올'데이즈 호텔은 부산 중앙동에 위치해 있다. 도시철도 중앙역 1번 출구를 나오면 바로 보이는 곳이며 사방이 빌딩으로 둘러 쌓여 있는 도심 한가운데 있다. 같은 빌딩 숲이어도 중앙동은 센텀(해운대)과는 사뭇 다른 풍경인데 센텀은 외벽이 유리로 된 빌딩이 많아 차가운 느낌의 빌딩들이 많다면 중앙동은 7, 80대부터 지어진 빌딩들이 많아 비교적 풍경이 다채롭고 따뜻하다. 

거리 곳곳에는 새로 생겨나는 가게들과 오래된 노포들이 뒤섞여 있는데 그 풍경 또한 매력적이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아주 느린 시간으로 변화하는 곳, 부산에 살면서 내가 바라본 중앙동은 그런 곳이었다. 그래서 브랜드 스토리를 다듬어나갈 때 중앙동을 아침, 점심, 저녁으로 오가며 거리를 걷고 풍경을 관찰하다 굿올'데이즈의 브랜드의 핵심 메시지인 '시간'이라는 키워드를 발견했다. 





호텔에 들어가기 위해 카페 입구에 멈춰 서자 처음 작업을 시작했을 때 확인차 들렀던 현장에서 생각보다 큰 호텔의 규모에 놀라 우리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부족했던 경험치의 자리는 순식간에 두려움으로 채워졌기에 그 두려움을 몰아내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달님과 나는 굿올'데이즈 대표님과 수줍은 체크인을 하고 우리가 만든 카드키를 들고 룸으로 향했다. 객실에는 호텔을 방문하는 손님을 위한 웰컴 키트가 침대에 놓여있었는데 호텔을 이용하면서 어려움이 없도록 안내하는 이용안내문과 퇴실 시 가져갈 수 있는 호텔 굿즈들로 구성되어있다. 


호텔의 굿즈와 엽서, 투숙객을 환영하는 정성 가득 손글씨가 담긴 웰컴 키트
내가 쓴 브랜드 스토리를 만나는 신기한 경험
굿올'데이즈의 서비스를 한눈에
굿올'데이즈의 무드를 담은 엽서




Today is the day that you will miss someday.
Make a record of this moment.
언젠가 당신이 그리워할 그날은 바로 오늘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남기세요.
 




객실에 비치된 문구류들. 대만의 Ystudio의 필기구가 준비되어 있다.



굿올'데이즈는 아날로그 감성을 가진 호텔로 객실 내에 TV가 없다. 대신 태블릿 거치대가 있어 가지고 온 휴대폰이나 패드를 거치하여 볼 수 있는데 굳이 TV나 유튜브를 보지 않아도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가 많이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우리는 부산사람이라 국제시장이나 남포동 관광 대신 인근에서 간단하게 밥만 먹고 들어갔는데 룸 안에 비치된 책도 읽고 LP로 음악도 듣고 미니바에 준비된 맥주도 마시고 안주도 먹느라 정말 쉬는 타임 없이 계속 움직였다. 





잊혀지지 않을 손맛, 아날로그 경험 

굿올'데이즈 호텔은 아날로그 경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객실 내에 캡슐커피 머신 대신 핸드드립 커피가 준비되어 있고 블루투스 스피커 대신 LP플레이어가 준비되어 있다. 살짝 터치하면 모든 것이 간편하게 시작되는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가 주는 잊고 있던, 혹은 경험해보지 못한 기다림의 시간은 신선한 자극을 준다.


우리의 밤을 풍성하게 해 주었던 턴테이블



객실에서 만나는 부산 

인심 좋은 대표님들이 운영하는 굿올'데이즈 호텔은 아무 준비 없이 방문해도 1박 2일은 거뜬히 보낼 수 있는 호텔이다. 미니 냉장고에는 부산에서 만드는 인어아지매 건어물, 삼진어묵, 부산 수제 맥주가 준비되어 있고 TV가 없는 대신 가까운 거리의 작은 독립서점에서 추천하는 감성 가득한 책들이 준비되어 있다. 킥오프 미팅 때 중앙동을 알리는 민간 외교관이 되고 싶다고 하셨던 대표님들 답게 객실 내 디퓨저와 배스밤까지도 부산의 브랜드들과 협업한 제품들로 갖추어져 있다. 



중앙동 주책공사의 추천도서
커피 말고도 '좋은차'도 있다.



중앙동과 상생하는 호텔, 굿올'데이즈 

호텔 1층 카페에는 노포를 알리는 노포카드가 진열되어 있다. 굿올'데이즈 대표님이 호텔 오픈 전 직접 중앙동 인근의 노포를 방문하여 찍어오신 사진과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총 15종의 노포카드를 제작했다. 앞면에는  사진이, 뒷면에는 노포의 이야기와 위치 등 간단한 정보가 담겨있는 이 카드는 처음엔 호텔 투숙객들에게만 제공되는 키트 용도로 기획되었다. 하지만 지역과의 상생을 중요하게 여기는 굿올'데이즈인 만큼 카페 방문객들도 부산의 노포를 손쉽게 만날 수 있도록 무가지 형태로 배포하시길 제안드렸다. 굿올'데이즈 카페를 방문하신다면 무료로 배포되는 노포카드에서 점심 메뉴를 정해 보는 것은 어떨까.





잊혀지지 않을 추억이 된 하룻밤  

굿올'데이즈 호텔에 대한 후기를 보면 '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할 수 있는 곳이라는 내용이 많았는데 하룻밤 머물러보니 그 마음들이 무슨 마음인지 이해가 되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마음 깊숙한 곳을 두드리는 듯한 LP의 깊은 사운드가 참 좋았는데 음악을 들으면서 그동안 복잡했던 마음과 생각들을 차분히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퇴실하는 날 아침에는 8시가 조금 넘으면 이렇게 조식 바구니가 방 앞으로 배달된다. 꽤 묵직한 조식 바구니에는 두 사람이 든든히 먹을 수 있는 양의 스콘, 그레놀라, 삶은 계란 등이 들어있다. 그레놀라는 매장에서 파는 것과 같은 제품으로 정말 맛있어서 우리도 퇴실할 때 한 봉지 구매했다. 




미래로 보내는 엽서 

여행지에서의 감동은 일상으로 복귀함과 동시에 빠르게 휘발된다. 굿올'데이즈 호텔은 그렇게 사라져 버리는 시간을 기록해 간직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행자들에게 '엽서 쓰기'를 추천한다. 호텔의 메인 콘텐츠인 '미래로 보내는 엽서'는 최대 3년 후 미래까지 지정하여 보낼 수 있는데 카페를 방문하면 1장당 1,000원에 이용할 수 있고 호텔 투숙객들에게는 웰컴 키트에 2세트(엽서+봉투+우표)가 무료로 제공된다. 우리도 엽서를 적어서 보내고 퇴실했다. 



누구에게 써야 할지 고민된다면 마스킹 테이프에서 골라보세요.
달님의 손맛이 담긴 스탬프
다 쓴 엽서. 실제로는 직원분에게 드려야 한다. 






굿올'데이즈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때쯤 우리에게도 좋은 소식이 있었는데 바로 월간디자인 8월호에 부산의 크리에이터로 인터뷰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굿올'데이즈 호텔을 건축한 건축사 사무소 디자이너분들도 함께 인터뷰이로 잡지에 실리게 되어 부산을 대표하는 크리에이터 5팀 중 2팀으로 나란히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에 분명 좋은 기운이 있었다고 믿는다. 


http://mdesign.designhouse.co.kr/article/article_view/101/82611


http://mdesign.designhouse.co.kr/article/article_view/101/82605



그리고 이제 스테이폴리오에도 굿올'데이즈를 만나볼 수 있다. 브랜딩 작업을 할 때 '브랜드 스토리'라는 것은 가끔 낯간지럽고 그냥 말 뿐인 말이 아닌가 스스로를 의심하게 될 때가 많았는데 이번 스테이폴리오에 올라온 소개글을 읽어보니 굿올'데이즈를 위해 적어 내려 간 브랜드 스토리들이 사람들의 마음에 잘 안착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안심이 되었다. 



https://www.stayfolio.com/preorder/goodoldays-hotel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묶는다면 디자이너들은 카테고리가 하나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디자인에는 무수히 많은 카테고리가 있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브랜드와 패키지를 전문으로 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만지고 경험할 수 있는 오프라인 작업물로 대부분의 일들이 마무리되는데 우리가 모니터로만 보던 제품과 서비스를 실제로 경험하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프로젝트에서 부족했던 부분들도 모른 척 지나칠 수 없기에 마무리된 프로젝트를 실제로 경험해보면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나는 편집디자이너로 오래 일했기 때문에 새롭게 도전하게 된 브랜드 디자인 분야가 정말 어렵고 어딘지 모르게 뜬구름 같은 느낌이 자주 들었는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좋은 디자인은 좋은 클라이언트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굿올'데이즈를 진행하며 또 한 번 확신하게 되었다. 우리의 잊지 못할 첫 호텔 브랜드 개발 프로젝트 굿올'데이즈.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부산의 매력을 알려주는 호텔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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