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의 브랜드데이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 오후, 피플의 디자이너들은 회사를 떠나 부산 시내에서 경험할 수 있는 브랜드를 찾아 떠나는 디자인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경험과 관점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분야인 만큼 잠시 컴퓨터 앞을 떠나 여러 브랜드를 실제로 경험하며 서로 다른 관점을 나누어보는 과정은 앞으로 우리가 만날 다양한 디자인 작업에 입체감을 더해줄 것입니다.
2022년 2월의 브랜드데이는 피플의 새로운 식구가 된 라비님을 따라 전포동의 옥천사세탁과 KT&G 상상마당에서 열린 '유미의 세포들'을 관람하고 왔습니다. 평소 계획성 있게 스케줄을 짜서 움직이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피플의 구성원이 되어 브랜드데이 코스를 짜고 후기를 작성하는 낯선 작업까지 최선을 다해준 라비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2월의 브랜드데이도 즐겁게 감상해주세요!
피플에 입사하며 가장 나를 심란하게 만들었던 브랜드데이의 내 차례가 다가왔다. 멀리 해외여행을 때나 일정과 코스 같은 것을 짜보았을까. 평소 계획성 있게 움직이는 타입이 아니었던 나는 이번 브랜드데이가 내심 걱정이 되었다. 평소 어딘가를 갈 때에도 지인들에게 추천을 받거나 우연히 본 게시글 등을 보고 마음 내키는 대로 ‘여기 가볼까?’하고 움직이는 슈퍼 P형이었는데 감사하게도 이런 나를 위해 회사에서는 내가 입사하기 전에 예매해 두었던 '유미의 세포들'전시를 남겨주었기에 냉큼 받아서 그 주변으로 움직이는 코스를 생각해보기로 했다.
브랜드데이의 시작은 언제나 점심으로 시작하는 전통(?)에 따라 전포동에서 식사를 하기로 결정! 오늘 내가 선택한 곳은 '옥천사 세탁'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레스토랑이다. 이곳은 아주 오래전에 전포동을 지나가다 우연히 보았던 식당이었는데 파스타를 파는 레스토랑 이름치고는 몹시 특이해서 이번에 한번 가보기로 하였다.
옥천사세탁은 1956년도에 실제로 세탁소로 운영되던 공간으로 새롭게 세탁하여 레스토랑이 되었다는 위트 있는 문구가 공식 인스타그램에 올라와있다. www.instagram.com/okcheonsa_setac
옥천사세탁은 옥천사세탁이 1호점, 2호점 프렌즈클럽, 3호점 피플스, 4호점 브루티마부오니까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도장깨기 하듯 다니는 것 같은데 모두 맛있다고 평이 좋다. 보통 식당의 경우 하나가 잘 되면 같은 이름으로 체인점처럼 분점을 내는 경우가 많은데 옥천사세탁의 브랜드들은 모두 다른 브랜드와 그에 맞는 메뉴와 인테리어로 개성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오히려 사람들이 한 군데를 가보고 다른 곳도 가보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어떤 연유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러한 시도가 전포동의 매력을 더 다채롭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창가에 바로 보이는 곳엔 여러 사람이 같이 앉을 수 있는 큰 테이블이 있었고, 그 안 작은 방이 하나 더 있었는데 우리는 안쪽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오픈 시간에 맞춰 갔는데 벌써 창가 쪽에는 사람들이 있어서 사진을 찍어올 수 없었다. 내부의 인테리어는 1956년 세탁소로 운영되었던 곳인 만큼 곳곳의 인테리어가 세탁과 관련된 것들을 볼 수 있었는데 공간이 협소하고 오래된 소품들이 많아 마음 놓고 사진을 찍기는 조금 어려웠다. 그래서 소개할 수는 없지만 인테리어 요소로 사용된 사진이나 포스터들은 전혀 한국적이지 않다는 것이 묘한 매력이 있었다. 꼭 실제로 가서 보시길!
메뉴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인 시루님, 달님이 있기 때문에 혹시 육류 메뉴만 있을지도 몰라 미리 블로그 검색을 해보았고 인기 메뉴들을 토대로 주문서를 완성. 영수증 같이 생긴 주문서에 체크를 하고 카운터로 가져다주는 방식이었는데, 가끔 특이한 생각을 자주 하는 나는 문득 ‘한 가지 메뉴를 2개 시킬 땐 어떻게 체크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도 일을 하면서 발생하는 소수의 경우를 디자인에 모두 반영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알기에 빠르게 생각을 흘려보내고 메뉴를 주문했다.
두 분이 고기를 먹지 않는 관계로 바질 크림 파스타 위 프로슈토 햄은 전부 내 차지.
로제 리조또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메뉴들이 성공률이 높았던 것 같다. 반숙 계란이 올라간 오일 파스타는 약간 매콤했는데 매운맛이 딱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정도의 매운맛이었다. 크게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 정도로 맛있었는데 다만 내 입맛에는 김가루 맛이 너무 강하게 느껴져서 다음에 먹을 땐 김가루 빼고 주세요. 하고 싶은 정도였다는 것뿐. 우리가 다녀간 이후에 신메뉴 바질 크림 뇨끼 파스타가 나왔더라. 그래서 다음엔 친구들과 다시 와보는 것으로!
지나는 길에 발견한 '슬로우뮤지엄'이라는 액세서리 가게는 전포동의 아날로그 감성을 모조리 흡수하고 있는 가게처럼 골목길에 잘 어울렸다. 여자 셋인 우리는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참새들처럼 쪼로로 들어가 각자의 감성에 맞는 액세서리를 구매하고 KT&G 상상마당으로 향했다.
오늘 일정의 하이라이트.
‘유미의 세포들 부산전’
상상마당에 입장하며 유미의세포들 팬인 시루님과 달님은 무척 설레어했다. 애석하게도 나는 유미의 세포들 웹툰도 드라마도 안 본 사람이지만 평소 이것저것 덕질해본 경험이 있어서 좋아하는 작품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어하는 마음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보통 서울에서 한번 전시를 하고 부산으로 내려와 전시를 하는 경우에는 대부분 전시규모가 반토막 나는 경우가 많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규모나 작품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어서 이번 전시도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입장했다. 아마도 1층이나 2층 정도에서 열리겠지, 하며 올라갔는데 예상외로 전시는 5층에서 개별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전시는 일방적으로 유미의세포들을 단순히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사랑하는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다. 팬들이 평소 궁금해하는 질문들에 대한 답이라던가, 웹툰을 본 팬이라면 도전해 보고 싶을 모의고사 코너, 나의 프라임 세포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설문 코너, 수많은 유미의 세포들 중 가장 좋아하는 세포를 뽑는 인기투표 코너, 웹툰의 댓글들에 캐릭터가 직접 답변하는 코너 등 직접 몸으로 체험하며 유미의 성장과 추억들을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된 것이 정말 대단했다.
전시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훨씬 훨씬 넓었고 곳곳에 체험존, 촬영 존이 가득했다. 유미의 구 남자 친구들의 출몰 지역부터 하나하나 나누어져 구성되어 있었고, 웹툰의 인기가 상당했던지라 웹툰 작가의 인터뷰들도 심도 있게 다루고 있었다. 작품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어떠한 고민들을 했는지도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고 특히 첫 화부터 최근까지 3등신이었던 유미가 순정 만화체로 거듭나는 과정도 볼 수 있어 웹툰을 보지 않았던 나도 역사를 실감할 수 있었다.
특히 지하 1층의 유미의 시그니처 곡이라고 할 수 있다는 자우림의 노래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유미의 방은 미디어 아트를 재밌게 접목시킨 공간이었다. 이곳은 들어갈 수는 없고 바깥에 서서 좌우 사방에 나타나는 유미의 영상들을 지켜보기만 했지만 문득 유미의 침대에 나란히 누워보면 재밌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평소 협소하게 진행되던 전시들을 생각하며 1시간이면 다 둘러볼 것이라는 달님의 예상과는 다르게 유미의세포들 전시는 알차고 재밌었다. 평소 상상마당에서 하는 전시들을 인스타로 보기만 하고 가본 적은 없었는데 규모와 정성에 굉장히 감동했다. 앞으로도 부산에서 이런 전시를 많이 열어주는 공간으로 사랑받기를 바란다. (없어지면 안 돼!)
이후 일정은 원래 롯데백화점 지하의 시시호시를 다녀올 예정이었지만 유미의세포들에서 체력을 방전하고 근처 블랙업 커피에서 특이한 이름의 해 수염 커피(콜드 브루 아인슈페너)를 마시며 일정을 마무리했다. 셋 다 MBTI가 'P'라서 가능하다며 웃으며 끝난 나의 첫 번째 브랜드데이. 입사 3개월 차에 기획해 본 브랜드데이라서 아직은 조금 어색하고 낯설지만 덕분에 부산 곳곳에 새로 생기는 핫플, 전시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에도 모두와 좋은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을 열심히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