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브랜드데이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 오후, 피플의 디자이너들은 회사를 떠나 부산 시내에서 경험할 수 있는 브랜드를 찾아 떠나는 디자인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경험과 관점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분야인 만큼 잠시 컴퓨터 앞을 떠나 여러 브랜드를 실제로 경험하며 서로 다른 관점을 나누어보는 과정은 앞으로 우리가 만날 다양한 디자인 작업에 입체감을 더해줄 것입니다.
오늘은 피스앤플렌티의 대표 겸 디자이너인 홀씨님의 브랜드데이 기록입니다. 최근 부산 기장에 새로운 카페가 많이 생기고 있지만 주말에는 많은 인파가 몰려드는 까닭에 좀처럼 방문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평일 오후에 떠나는 브랜드데이의 장점을 활용하여 기장에 새로 생긴 대형 카페, 칠암사계를 다녀왔습니다. 피플의 디자이너들이 근래에 가본 대형 카페 중에 가장 좋았다는 평을 남길 정도로 후한 점수를 주고 온 칠암사계, 홀씨님의 기록으로 전해봅니다. 즐겁게 읽어주세요!
4년 전쯤인가, 기장에 환상적인 바다 뷰가 펼쳐진 대형 카페 웨이브온이 처음 생기고 주말, 주중 가릴 것 없이 넓디넓은 주차장이 손님들의 차로 가득 채워지는 것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기장의 해안선을 따라 꾸준히 대형 카페들을 오픈하고 있다. 부산 새로운 카페를 알려주는 홍보채널들을 팔로우해서 보고 있노라면 거의 매주 1개씩 오픈하는 느낌인데 올라오는 피드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새하얗고 거대한 건축물에 밖으로 보이는 것은 파란 바다 뷰, 판매하는 빵의 종류는 소금 빵, 크로플, 앙버터, 까눌레를 파는 형태가 다들 무척 비슷하다. 그래서 이번 브랜드데이는 많은 기장 카페들 중에서 콘텐츠가 확실하고 바다를 이야기하지 않는 카페 두 군데를 찾아가 보았다.
늘 그렇듯 점심식사 역시 중요한 경험이므로!
오늘의 점심은 기장 칠암에 위치한 '미도식당'으로 정했다. 해안가와 잘 어울리는 해초비빔밥, 전복볶음밥, 감바스 등의 메뉴 구성이 좋았고 역시 인스타그램을 많이 신경 쓴 느낌의 플레이팅에서 '인증샷'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도 여느 손님들처럼 탑뷰를 사수하기 위해 식사 전 일어서서 사진을 찍는 경건한 의식을 치르고 식사를 시작했다.
제과명장 이흥용 X 고성호 건축가
베이커리 카페 칠암사계
기장에는 붕장어마을로 유명한 칠암리가 있다. 사실 칠암사계를 가보기 전에는 여기가 붕장어로 유명한 마을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장 칠암리는 부산시내에서 울산방향으로 한참 올라간 곳으로 부산시내보다 오히려 울산 간절곶이 더 가까울 만큼 부산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사무실이 수영교차로에 있으니 비교적 기장을 자주 와봤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장 칠암은 무척 생소한 곳이었다.
여기가 맞아?
인스타그램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것과는 다소 아담해 보이는 외부에 우리는 여기가 맞는지 한참 두리번거렸다. 입구에는 칠암의 봄을 알리는 유채꽃 컬러의 그래픽이 눈에 뜨였고 조금 들어가 보니 작고 귀여운 마당이 등장했다.
칠암사계는 2021년 여름, 칠암이라는 지역의 사계절을 콘셉트로 설계된 베이커리 갤러리 카페이다. 칠암사계는 부산사람들에게는 신세계 센텀시티 백화점 지하 1층에 위치한 베이커리로 익숙한 이흥용 과자점의 카페로 지역의 건축가인 고성호 건축가와 함께 협업하여 만든 공간이라고 한다. 별도의 홈페이지는 없어서 보다 자세한 내용을 찾아볼 수는 없었지만 공식 인스타그램은 운영 중이라 아래에 링크를 통해 여러 소식을 받을 수 있다.
https://www.instagram.com/chilamsagye
칠암사계의 입구에는 이렇게 칠암사계의 브랜드 경험을 확장시킨 다양한 굿즈를 판매하는 아트샵이 있다. 칠암사계가 위치한 칠암은 아래와 같은 유래가 있는 마을이다.
칠암(七岩) 마을 앞에는 검은 바위가 있는데, 이를 옻바위라고 한다. 옻바위가 한자로 칠암(漆岩)인데, 칠(漆) 자가 쓰기 어려워 ‘일곱 칠(七)’ 자로 바뀌었다고도 하고, 마을 앞에 7개의 검은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칠암 마을 [七岩-]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여기서 말하는 검은색 옻바위는 칠암사계의 전체적인 브랜딩에서 강력한 시각적 요소로 활용되고 있었다. 주먹 모양의 검은색 돌 모양은 그 형태를 그대로 활용하여 인센스 홀더로 사용되기도 하고 매장 내에서는 시그니쳐 빵인 '만쥬'의 형태로도 활용된다. 그래서 전체적인 스토리텔링과 시각적인 요소들이 억지스럽지 않고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것처럼 매끄럽고 자연스럽다.
그리고 그래픽에서도 칠암의 검은색을 많이 차용하여 사용하였는데 그레이 컬러와 돌의 패턴, 둥근돌의 쉐잎까지 일관성 있게 활용해 전체적으로 브랜딩에 몰입할 수 있도록 잘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굿즈류는 일반적인 엽서, 스티커 외에도 커피와 베이커리의 특성을 살린 텀블러, 테이블 매트, 에코백 등을 활용하여 커피와 빵이 함께 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대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제안하고 있었다. 여느 카페가 그러하듯 빵과 커피가 함께 하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가 되길 바라는 브랜드의 바람이 느껴지면서도 단순히 유행하는 아이템이 아니라 칠암사계의 무드에 잘 어울리는 디자인과 소재를 활용한 제품들이라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킬 만큼 퀄리티가 높았다.
그리고 칠암의 사계절을 콘셉트로 하는 만큼 사계절을 그래픽으로 표현하고 있었는데 스타일이 독특하고 예뻐서 다음 시즌이 무척 기대가 되었다. 요즘 브랜딩 작업을 할 때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것이 브랜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고객들이 재방문할 수 있는 이유를 만드는 것인데 칠암사계는 항상 돌아오는 사계절을 항상 매력적으로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감만으로도 고객들의 재방문을 유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봄의 그래픽을 보고 있는 내가 벌써 다음 여름이 기대되는 것처럼 말이다.
무려 3층짜리 건물이었다니!
칠암사계는 1층부터 3층 루프탑까지 총 세 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하 1층에서는 빵을 주문하고 구매할 수 있고 2층에서는 취식, 3층에서는 일부 취식이 가능하고 바다 전망을 볼 수 있는 루프탑이 있다. 전체적인 아이덴티티는 심플하고 깔끔하며 군더더기 없는 느낌이었다.
매장 곳곳에는 브랜드에 대한 친절한 안내를 담은 리플릿과 먹고 남은 빵을 가져갈 수 있는 봉투와 장갑, 그리고 보관방법까지 상세하게 안내하고 있어 마지막 남은 빵까지 맛있게 먹길 바라는 브랜드의 진심이 가득 느껴졌다. 근래에 만나는 많은 대표님들이 이런 종이 인쇄물에 대한 인식이 다소 부정적인 경우가 많이 있다. 직원, 인스타그램, 홈페이지 등이 있는데 굳이 버려질 인쇄물을 만들 필요가 있나요?라고 물어보시지만 나는 여유가 조금 있으시다면(사실 여유가 없더라도 이 정도 낱장 인쇄물은 정말 저렴한 가격에 만들 수 있다) 꼭 만들기를 제안드린다. 왜냐하면 아무리 친절한 직원이라도 하루에 수백 명씩 밀려드는 손님들에게 브랜드의 이야기를 다 전할 수 없고 반드시 알아야 하는 여러 가지 이용방법에 대해서도 모두 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종이 인쇄물들은 어쩌면 직원들을 대신해서 브랜드의 가장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 소비자를 더욱 가깝게 응대하는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칠암사계는 그런 면에서 친절한 느낌이라 직원들과 직접적인 대면을 하지 않았지만 친절한 응대의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이 하나둘 씩 모여 나뿐만 아니라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칠암사계는 다정하고 친절한 빵집으로 기억될 것이다.
칠암사계의 빵들은 봄의 콘셉트에 맞추어 모두 귀여운 꽃을 하나씩 품고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본 유채꽃 같은 노란색과 꽃 모양은 아트샵을 거쳐 빵에 이르기까지 모두 일관성 있게 표현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칠암사계의 디렉팅은 누가 했을지 무척 궁금해졌다. 어떻게 이렇게 시작부터 끝까지 섬세하게 잘 브랜딩 할 수 있었을까? 또한 나는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지 내심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기회가 된다면 개인적으로든, 프로토 커뮤니티를 통해서든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시간이 담긴 찻잔에 마시는 좋은 차 한잔, 더 가마
우리는 칠암사계를 나와 기장에서 송정으로 이어지는 입구로 이동했다. 더 가마는 칠암사계만큼이나 생소한 곳에 위치해있었는데 동부산으로 가는 길목에 '여기는 펜션 단지인가?'라고 생각했던 고급 주택단지 안에 있었다.
더 가마는 처음에 단순히 전통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인 줄 알았는데 실은 범일동에 위치한 노진 한복과 깊은 연관이 있는 브랜드였다. 홈페이지 소개에 따르면 더 가마는 조선시대 다완과 한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오래전부터 '다완'이라는 전통 차 그릇에 매료되어 한 점, 두 점 모으기 시작한 것이 단순한 개인 소장으로 보기에는 그 양이 방대하여 지금의 더 가마를 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더 가마는 3대째 이어져 온 역사가 있는 한복 브랜드인 '노진한복'을 계승하며 한복문화를 시대성에 맞게 재해석하여 전통을 이어가는 패브릭 디자인 업체이기도 하다고 한다.
내부에는 다완에 대한 소개문구들과 판매되고 있는 차에 대한 설명도 친절하게 비치되어 있다. 칠암사계와 마찬가지로 곳곳에 브랜드에 대한 애정과 진심이 가득 느껴졌다.
날이 좋아 우리는 야외에 자리를 잡았는데 주문을 하고 나면 이렇게 번호표를 주신다. 진열된 찻잔들을 보니 실제 차도 저런 잔에 나오는걸까 궁금했는데 실제로 손님들께 내어주는 찻잔도 마찬가지로 오래된 귀한 잔들이라 직접 자리로 가져다 주셨다. 요즘은 대부분의 카페가 셀프서비스라 이것조차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차를 주문하면 차에 대한 안내문과 차를 마시는 방법, 그리고 브랜드 스토리가 담긴 페이퍼를 함께 세팅해주신다. 이 부분이 나는 무척 마음에 들었는데 단순히 차만 마시고 간다면 차의 향이 어땠는지, 떫었는지 달았는지 정도에서 그칠 나의 경험이 브랜드 스토리와 함께 확장되는 느낌이 들었다. 돌아가서 나는 나의 지인들에게 더 가마는 이러이러한 곳이라는 이야기를 전하게 될 것이고 블로그를 하는 다른 디자이너들은 블로그에 쓸 콘텐츠가 풍성해질 것이다. 고객이 우리 브랜드에 대해 할 이야기가 많아지게 하는 것, 요즘 우리가 브랜드 일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번 브랜드데이는 내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점검해보는 느낌으로 다녀왔다. 그동안 여러가지 일들을 진행했던 피스앤플렌티가 이제 브랜드 디자인 스튜디오로 본격적인 방향성을 잡으면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 그 일을 어떻게 하는 사람들인지에 대한 스스로의 점검이 필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칠암사계와 더 가마는 좋은 예시가 되어주었고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사이 부산에도 이렇게 매력적인 공간이 많아졌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리고 부산이라고 해서 뻔한 것을 생각하지 않도록, 훨씬 다양한 관점으로 가치를 발견할 줄 아는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우리가 만들어갈 많은 브랜드도 부산에서 '바다'라는 뻔한 이야기 말고 보다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게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