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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더 홀씨 Feb 25. 2019

사양산업의 디자이너로 독립이라니

그것도 부산, 이 좁은 동네에서-

나는 11년차 편집디자이너다. 편집디자인이란 정보를 종이에 인쇄하는 시각디자인 분야를 말하는데 산업디자인 분야에서도 대표적인 사양산업에 속한다. 책이 없어진다는 이야기는 내가 이 일을 시작한지 4년정도 되었을 때부터 들려오기 시작했고, 실제로 해가 갈수록 점점 일은 줄어들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은 달력이었다. 달력 인쇄의 부수는 해마다 꺾은 선 그래프가 곤두박질 치듯이 줄어들었고 그나마 달력을 계속해서 찍는 곳은 은행과 관공서 뿐이었다. 자연히 경쟁은 치열해졌고 마지막으로 만난 인쇄소 사장님은 달력입찰이 마이너스인걸 알지만 그래도 실적을 남기려면 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다음은 각종 인쇄물의 부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것이었다. 10년 전만해도 전단은 기본 4천장, 리플렛도 기본 2천장, 그 이하는 단가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찍어주는 곳도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기술이 놀랄정도로 발전했고 디지털 출력기가 옵셋인쇄와 맞먹을 정도로 잘 나오기 때문에 소량인쇄가 가능해졌다. 그래서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수량도 많게는 100장, 적게는 20장을 찍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아예 인쇄는 진행하지 않고 디자인만 해주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는 독립을 했다. 모든 퇴사자들이 그렇듯이 무언가 대단한 결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부산의 가볼만한 회사는 다 가보았고 기혼이라는 점과 나이로 인해 회사에 들어가 불가항력적인 약자가 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잠시 쉬는 사이에 운이 좋게 프리랜서 일을 시작하게 됐고 지금이 '때'인가, 라는 마음으로 무작정 사업자등록증을 냈다.


처음 한해는 그럭저럭 돈벌이를 했다. 굶지 않을 정도였고 때로는 회사를 다닐 때보다 형편이 좋은 달도 있었다. 사양산업이라고 하지만 왠지 나는 될 것 같은 운명론자가 되어 한 해를 흘려보냈다. 그러다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일하던 동생이 나와 합류했고 우리는 작은 회사가 되었다.




동생이 합류하고 직원이 생긴다는 것, 입이 두 개가 된다는 건 나 혼자 먹고 살때와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나 혼자 벌때에는 이번달에 조금 덜 벌어도 다음달에 돈이 빨리 들어오면 대충 메꾸며 살면 되는 것이었는데 직원이 생기니 그럴 수 없는 일이었다. 방법을 찾지 않으면 동생이 울면서 회사에 다시 들어가야할 것만 같은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창업한지 2년차, 비지니스 플랜이라는 걸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의 비지니스 플랜은 무엇일까. 그걸 생각하고보니 내가 하고 있는 디자인분야가 사양산업인데 이걸로 비지니스를 하겠다는 내 말이 무척 어패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건 마치 요즘 시대에 성냥을 팔아서 돈을 벌겠다는 것과 똑같은 말이 아닌가. 아무도 원하지 않는 성냥을 어디에 가서 누구한테 팔겠냐는 말이다.


사양산업이라는 편집디자인 전문에 서울도 아닌 부산이다. 안그래도 좁은 이 시장에 잡초처럼 동생과 내가 몸을 비집고 들어가 싹을 틔웠다. 사람들이 회사를 왜 차렸냐고 말했을때 '좋은 디자인회사의 선례를 남기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선례를 남긴다는 것은 내가 살아남았을 때 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그래서 이제 살아남을 방도를 찾아야 한다.


사실 살아남을 수 있을지, 울면서 회사에 다시 들어가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가능하면 살아남아보고 싶다. 4차산업 시대에 성냥 같은 사양산업 대표 디자이너로서, 그래도 아직 디자인이 필요한 곳은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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