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랜더 홀씨 Mar 16. 2019

누군가의 시작을 만드는 순간, 명함 디자인

작지만 중요도 100의 디자인

일본 디자이너이자 무인양품의 디자이너로 유명한 하라 켄야의 디자인 에세이 '포스터를 훔쳐라'에는 그가 신입시절 전차표(JR티켓)를 디자인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나는 그 에피소드를 참 좋아하는데 누구도 관심 없을 작은 전차표에 들어가는 정보를 디자인하면서 고민하는 그의 모습과 디자인에 크고 작음이나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이 대하는 디자이너로서의 마인드에 존경심과 공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하는 디자인 중에서 명함 디자인을 가장 좋아한다. 명함 디자인은 브랜드 디자인 분야에 속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편집디자인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름, 전화번호, 주소를 손바닥보다 작은 종이에 오밀조밀하게 담아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다. 글자가 크면 잘 보이지만 촌스럽고 글자가 작으면 세련돼 보이지만 연령대가 높으신 분들은 명함의 전화번호도, 사무실 위치도 읽기 어려워하신다. 내가 누구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할 것인가를 잘 고려해서 만들어야 하고 명함을 주고받는 날은 언제나 '첫 만남'의 순간이기 때문에 좋은 첫인상을 줄 수 있게 디자인해야 한다.


최근에 만든 명함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두유 카페 '두시'의 명함 디자인이었는데 두부공장을 하시는 부모님을 이어 따님이 운영하는 두유 카페의 브랜딩을 하면서 제안을 했던 명함 디자인이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명함의 연락처는 임의로 기재하였습니다



어머니와 따님이 함께 운영하신다고 해서 각자의 명함을 다르게 디자인을 해드리면 어떨까? 생각하고 제안해본 두 가지 디자인. 두 분이 응대하실 손님들의 연령대를 고려해서 카피를 적어보았는데 어머니의 경우 응대하실 고객의 연령대가 중장년층 고객일 것이라 예상하여 카피도, 전화번호도 큼직하게 넣어 디자인을 했다. 그리고 뭔가 '엄마'가 만든 수제 두유라면 믿고 먹을 수 있고 맛도 깊을 것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아서 사장, 대표, 이런 직책 대신에 '딸'과 '엄마'로 넣어보았다.


시안은 여러 번 수정되어 이 명함을 사용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명함이 전해질 풍경을 그려가며 디자인을 해던 프로젝트라서 '명함 디자인'이라고 하면 항상 가장 먼저 떠오른다.


명함 디자인은 엄청난 아이디어나 화려한 그래픽은 없지만 담백하게 자기 할 일을 하는 모습이 디자이너로서의 내 모습과 유사한 것 같아서 나는 명함 디자인이 참 즐겁고 이 일을 하는 나에게 자부심이 있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큰 일을 하는 디자이너가 아니어도, 좋아요가 몇만 개가 되는 디자인 결과물이 아니어도 디자인이 꼭 필요한 곳에 필요한 디자인을 하고자 하는 지역의 소박한 디자이너인 내 모습과 꼭 닮았다.


소박하고 담백한 우리 명함과 명함 케이스(CUECLYP)






작가의 이전글 사양산업의 디자이너로 독립이라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