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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더 홀씨 Aug 12. 2019

자매 디자이너

이렇게 오래 붙어있을 줄 알았다면 그때 조금 덜 울었을 것을.

보통의연구소는 민들레, 달래 두 자매가 운영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말이 스튜디오지 아직은 뚜렷한 색이 없이 여러가지 물감을 짜 놓은 듯한 팔레트의 모양이다. 이 색을 조금 더 칠해볼까 하면 저 색이 아깝고 저 색을 칠해볼까 하면 확신이 없는 그런상황. 하지만 나름대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며 2년을 넘기는 중이다.


민들레는 언니이자 사장이며 달래는 동생이고 자칭 대리이다. 마지막 회사를 그만둘때 대리였기 때문에 그 직급 그대로 대리인 셈인데 내년에는 과장으로 승진할 예정이라고 한다. 승진시험도 승진평가도 없는 자진 과장승진. 모양새가 웃긴 회사가 되었다.


우리는 똑같은 명함을 쓰고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출근한다. 처음에는 센텀의 또라이들이 될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유니폼을 정하고 나니 일상생활의 스트레스 한가지가 사라졌다. 매일 아침 뭘 입고 가야하나 고민하고 옷이 없어 슬프고 쇼핑을 하면 돈이 없어서 슬펐는데 회사 돈으로 각자 셔츠원피스를 두벌(겨울에는 체크원피스)을 사서 입고 출근하니 쇼핑을 하면서 회사에 입고 갈 옷 따로, 일상생활에 입을 옷 따로 사지 않아도 되니까 편하고 좋았다. 그렇게 1년 가까이를 지내보니 행색은 조금 초라해졌지만 회사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서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클라이언트를 만나러 갈때는 조금 부끄러울 때도 있다.


그래서 이번에 달래가 제안한 여름 유니폼은 린넨 수트 세트(?) 였다. 화장실에 가는데 사무실에서부터 화장실까지 따라오며 브리핑을 해주는걸 보니 정말 무척 입고 싶었던 모양이다. 위에는 자켓, 아래는 반바지로 된 린넨수트를 회사에서 사주고 안에 티셔츠만 개인이 사자는 이번 제안은 꽤 솔깃했다. 가을에는 정장 수트로 바꾸자고 하는데 그전에 반드시 해야하는 일은 내가 살을 빼는 일인 것 같다.

우리의 첫 출근복


오늘의 업무는 우리가 회사 외에 또 소속되어있는 유튜브 콘텐츠 회사 로컬웨이브TV의 촬영이 있었고 오후에는 영화의전당에서 미팅이 있었다.그렇게 두건의 업무를 보고나니 어느새 6시, 서둘러 밥을 먹고 오후에는 우리가 운영하는 프로토의 광복절 기념프로젝트 투봉작업을 했다. 퇴근하니 10시. 오마이갓.


짧지만 길었던 오늘, 틈틈히 우리는 회의를 했다. 회의는 사실 주말동안 내가 생각한 것들에 대한 브리핑에 가까운데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느 회사 사장님들처럼 혼자 생각을 엄청하고 거의 매일 새로운 비전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한달 단위로 갱신되고 수많은 기획들이 내 입을 통해 나왔다가 사라진다.


오늘 나온 이야기들 중에서 내가 급하게 실천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을 이렇게 기록해보자는 것이었다. 우리가 아직 세상에 짠, 하고 근사한걸 내놓을 순 없지만(사실 영원히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정말 끈질긴 자매의 연으로 붙어있다 못해 이젠 퇴사가 없는 회사에 입사해버린 자매들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와 성장할 보통의연구소의 이야기를 매일밤 기록해보고자 한다.


달래가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취업했을때, 나는 부산의 원룸에서, 달래는 서울의 고시원에서 페이스타임을 켜놓고 밥을 먹던 기억이 난다. 달래를 보러 서울에 갔다가 헤어지는 버스정류장에서 둘다 얼마나 울었는지. 지금 이렇게까지 붙어있을 줄 알았다면 그때 그렇게까진 울지말걸... 어쨌거나 부산에서 우리의 시너지는 어디까지 커질 수 있는지 매일 성장하는 우리를 누군가는 지켜봐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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