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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더 홀씨 Aug 14. 2019

창립기념일

광복절에 맞춰서 이틀 쉬려고 만든 8월 14일 창립기념일

오늘은 보통의연구소 창립 2주년이 되는 날이다. 복지가 좋은 많은 회사들이 창립기념일에 쉬길래 나도 이틀 연달아 쉬어보려고 8월 15일 광복절 전날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았다. 신청을 8월 14일에 한건지, 8월 14일에 맞춰 받으려고 일주일 전에 신청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그것도 벌써 2년전 일이 되버렸다. 요즘 참 많이 하는 말이지만 시간이 무척 빠르게 흘러간다.


아쉽지만 점심회식으로 대체하는 창립기념일


비록 쉬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창립기념일인데 맛있는 거라도 먹자는 말에 달래와 나는 각각 오전 미팅을 마치고 신세계 백화점 토끼정에서 만났다. 시간이 좀 넉넉하면 근사한 브런치라도 먹을텐데 밥먹고 곧바로 1시부터 또 미팅이라 시계를 분단위로 쪼개서 보면서 밥을 먹었다. 조금은 아쉬운 창립기념일의 소박한 점심회식이다.


올해 초 1월쯤이었나, 우리는 최초의 금융위기를 맞이했다. 근근히 들어오던 일들이 어느순간 끊어졌고 우리는 각자 100만원도 채 가져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버렸다. 겉으로는 덤덤한척 웃으며 금융위기다! 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심각했다. 각자 집에서 지출하는 고정비도 있었는데 이대로라면 정말 폐업을 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중에 우리는 대출을 받아 프로토룸을 열었고 프로토룸의 월세지출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눈앞이 캄캄한 한달이었다. 그때 어렴풋이 디자이너들이 창업을 하면 잘 망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는데 내가 겪어보니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디자인을 하는 것과 디자인으로 창업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때 우리에게는 비지니스 플랜이라는 것이 없었는데(지금도 사실.. 연구중이다) 단순히 의뢰를 받아 디자인을 해주고 돈을 받는 우리의 수익구조는 시장에서 콩나물을 파는 것보다도 말이 안되는 구조였다. 왜냐햐면 콩나물은 물건을 진열할 시장이나 마트같은 플랫폼이 있고 '주부'라는 타겟이 있으며 365일 삼시세끼 중 확율적으로 일정한 주기에 의해 팔릴 가능성이 있는 물건인데 반해 내가 하고자 하는 디자인은 '콩나물'과 같은 정확한 형태나 카테고리가 없고 그렇다보니 진입할 시장이 어딘지도 알 수 없고 내 디자인을 사용할 정확한 타겟도 잡기가 어려웠다.


그렇다보니 당장 다음달 월급을 위해 로고가 들어오면 로고를 만들고 리플렛이 들어오면 리플렛을 만들고 상세페이지 디자인이 들어오면 상세페이지 디자인을 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돈은 들어오지만 이것이 올바른 수익구조로 인해 발생하는 수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포트폴리오는 들쑥날쑥했고 우리가 정확히 어떤 디자인을 잘하는지, 우리가 무슨 회사인지 결과물들로 말하기는 점점 어려워졌다.


부산의 디자인 에이전시 모두 그런건 아니겠지만 내가 다녔던 곳은 포토샵 일러스트만 할 줄 알면 2D로 가능한 모든 디자인을 하는 곳이었다. 웹은 개발자가 있어야 가능한 특수성 때문에 예외였지만 명함부터 간판, 골프장 홀인원 기둥까지 정말 안해본 일이 없었다. 달래 역시 어묵회사의 디자이너로 근무하면서 스티커, POP, 패키지는 물론이고 매장에 들어가는 일러스트까지 다양한 경험을 해왔는데 특장점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다양한 경험들이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우리가 하나의 색을 정하는데 혼란을 주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조차 판단하기 어려웠다.


1월에 겪었던 금융위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고 어떤 디자인을 하는 회사가 될 것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다행히 기적처럼 2월부터 다시 일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더불어 로컬웨이브TV의 고정멤버가 되면서 수입은 조금 안정화가 되었지만 언제까지 운이나 기적을 바라며 일을 할 수는 없다.


한동안 비지니스 플랜에 대한 고민과 대화는 계속 될 것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명언처럼 파고 파고 또 파면 우리만의 길이 언젠가 나올 것이라 믿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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