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의 <댓글부대>
밤 11시에 시작한 생애 최초의 댓글배틀은 다음날 새벽 4시에 끝났다. 치열한 전투 끝 뜨거워진 총구처럼 스마트폰이 후끈거렸다. 손가락도 아팠다. 이 통증을 방아쇠 수지(Trigger finger) 질환이라 부른다고 한다. 적군의 아이디는 '책'을 뜻하는 외국어였다. 나는 분서갱유의 심정으로 댓글을 달았다. 300여 개의 댓글이 오가며 다섯 시간 동안 지리하게 이어진 공방. 전세는 '책'의 실수로 순식간에 뒤집혔다. 나의 적군이 그만 쌍욕을 시전한 것이다. 나는 그것을 문제 삼았다. 올바른 태도의 문제. 어릴 때 싸움은 '코피 나는 쪽이 지는 거'였듯이, 댓글배틀은 '먼저 욕하는 놈'이 지는 게임이다. 비속어 사용은 게시판 이용 규칙을 어겨 '신고' 대상이 되고, 신고 점수가 누적되면 '게시판 이용 정지'나 '강제 탈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댓글배틀을 지켜보던 관중들은 '책'을 신고했다. 며칠 뒤 그 아이디는 사라졌다. 그러니까, 흥분하면 지는 거다.
'책'이 사라지자 허무했다. 댓글배틀은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던 내게 신세계를 열어준 인연 혹은 악연.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무서워졌다. 국정원 직원이 아니라던 '좌익효수'가 사실은 국정원 직원이었음이 밝혀지던 시기. 혹시 '책'은 직원이 아니었을까? 그의 아이디를 검색해봤다. 그가 썼던 글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어쩌면 그가 그간 쓴 글들을 모두 지우고 사라진 건 회원들의 신고 때문이 아니라, 조직의 명령에 따른 것은 아닐까? 아님 전문 댓글부대 요원이었던 걸까? 내 아이디와 사용하는 단어들로부터 단서를 조합해 내가 누구인지 이미 파악 끝낸 건 아닐까? ... 온갖 개꿈 같은 잡다한 상상들이 마음을 괴롭혔다.
나도 내 흔적을 지우기로 결심했다. 댓글들을 한꺼번에 지울 수는 없게 되어 있어 하나하나 클릭해 삭제 버튼을 눌렀다. 지우면서 어쩔 수 없이 읽게 된 지난 전투의 흔적을 보니, 쪽팔렸다. 이게 뭐라고 밤을 새운 거냐. 엄지손가락이 다시 아팠다. 방아쇠 수지 질환인지 뭔지 알 수 없어도, 패배했다는 기분, 말렸다는 기분, 어쩌면 블랙리스트에 올랐을지도 모른다는 찝찝하고 불쾌한 기분, 이런 과대망상을 하고 있는 것 자체로 스스로 못났다고 느끼게 되는 기분만큼은 손가락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왔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댓글부대> 3장)
장강명의 <댓글부대>는 몇 개월 전 내가 겪었던 그 밤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내가 (부적절하고 꼬일 대로 꼬인) 열정을 품고 달려들었던 댓글배틀이 어떤 판인지를 망원경과 현미경을 동원해 관찰하게 된 느낌이랄까. 특히 <댓글부대>에 묘사된 댓글배틀은 내가 실제 경험한 것과 그 전개나 결론이 무척이나 유사할 정도로 자세하다. 작가 본인이 직접 댓글배틀을 해본 적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게다가 국정원이나 기무사 이후, 민간영역에서 자생한 '2세대 댓글부대'라는 설정을 쫓아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생각도 든다. '범죄사건 재연 프로그램이 모방 범죄를 양산한다'는 주장처럼, <댓글부대>를 모방한 진짜 댓글부대가 탄생할 것 같다는 섬찟한 생각.
소설은 '찻탓캇'이라는 민간 댓글부대원이 한 신문기자를 만나, 그가 벌여왔던 인터넷 여론조작 사건의 전모를 제보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찻탓캇과 기자의 만남은 녹취록의 형식으로 제시된다. 실제 검찰이나 경찰로부터 입수한 녹취록을 읽다 보면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등장인물이나 장소는 블랭크 처리되어 있는데, 소설 속 녹취록에도 군데군데 블랭크가 등장한다. 아주 작은 장치지만, 현실감을 더해준다.
국정원 등의 국가기관이 벌인 / 혹은 기관의 지시와는 무관하게 직원 개인이 일탈해 벌인 댓글 여론조작은 소설 속에서 이제 민간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인터넷 마케팅 팀의 외피를 하고 있지만, 실은 여론조작을 주 업무로 하고 있는 '팀-알렙'. 백혈병을 산재로 인정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가 개봉하자 해당 기업의 의뢰를 받아 영화 흥행에 찬물을 끼얹는 여론을 띄우는 데 성공한 이 팀은 그 역량을 인정받아 또 다른 프로젝트를 수주한다. 진보적인 정치성향을 띄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폐쇄 혹은 무력화. 정치적 동질성을 바탕으로, 인간적인 교류를 통해 집회 현장 밥차 보내기, 시청 앞 시위 함께 하기 등의 적극적인 행동을 즐기는 커뮤니티. 회원들 간 끈끈한 신뢰로 이어진 이런 커뮤니티는 대충 분탕질 치는 걸로는 쉽게 공략할 수 없다.
<댓글부대>는 공략법을 친절하게 제시한다. PC(Political Correctness, 참고-나무위키 '정치적 올바름' 항목 ), 즉 정치적 올바름을 무기 삼아 게시판 여론을 교묘하게 쪼개기. 예를 들어
"찻탓갓: 음......기억이 나는 게...... 이런 식이죠. 류현진 선수 별명이 류뚱인 거 아시죠? 누가 글을 올려요. '류뚱 오늘 11승.' 그러면 축하한다, 잘 봤다, 그런 댓글이 달릴 테죠? 거기에 슬그머니 끼어드는 겁니다. '아무리 다른 데서는 류뚱 류뚱 한다지만 은게에서조차 선수 별명을 그렇게 부르는 건 아니지 않나요? 엄연히 외모 비하인데.' 그리고 다른 아이디로, '솔직히 저도 그 별명 들을 때마다 좀 불편했습니다. 옥주현더러 옥떨메라고 하는 것만큼요'라고 남기고. 이렇게 되면 함정이 만들어진거죠. '뭘 그렇게까지 과민하게 받아들이시나요'라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답을 달아주죠. '제가 이곳의 정치적 감수성을 너무 높게 평가했었나봅니다. 뭘 그렇게까지 과민하게 받아들이느냐는 타박이 세상 모든 폭력과 편견을 유지하는 큰 축이죠. 언제나.'(79쪽)
이런 식으로 글의 내용과 상관없이 사용하는 단어나 태도 등을 문제 삼으면 회원들 스스로 편이 갈린다. 그 과정에서 거친 댓글들이 오가고 행여 누가 반말을 하거나 욕설을 하면 신고를 먹고, 짜증이 나고, 또 말이 거칠어지고...그러다가 결국 '정들었던 이 곳을 떠납니다'라는 한 줄 남기고 커뮤니티를 탈퇴하는 거다. 당장 어디 가서 써먹을 수 있는 전략이 자세하고 실감 나게 전개되는 <댓글부대>를 읽고 있노라면, 댓글부대를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은 근거 없는 착각에 휩싸인다. 아니, 적어도 댓글배틀에서 지지는 않을 것만 같은 (쓸데없는) 자신감은 생긴다.
재미있다고 읽는 게 아니라 유명해야 읽더라
<댓글부대>는 집중해서 읽으면 2시간, 이것저것 다른 생각하면서 천천히 읽어도 한 나절이면 넉넉히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가독성이 높은 소설이다. 문장은 기사를 읽듯 간결하고 속도감 있게 작성됐다. (장강명 작가의 전작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의 문체는 <댓글부대>와는 꽤 다르므로, 기사를 작성하던 기자생활의 습관에 의탁해 <댓글부대>를 쓴 것 같지는 않다.) 또 녹취록, 인터넷 게시판 댓글, 카카오톡 대화 등의 익숙한 형식을 소설 곳곳에 녹여내고 있어 실재감을 극대화한다. 당장 인터넷 검색창에 책 문장의 일부분을 검색하면 원본이 튀어나올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현실이 반영돼 있다.
11년간 동아일보 기자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출입처였던 국회 기자실을 뛰쳐나와 아내에게 전화해 "전업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는 장강명 작가. 최근 <한국이 싫어서>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더 유명해진 그는, 이미 문학 공모전에서는 상금 킬러로 유명했다고 한다. 몇 군데 문학상에서 받은 상금 총액이 1억 5천만 원. 공모전을 노린 이유는 '유명해지기 위해서'라고 어느 인터뷰에서 밝혔다.
"어떡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생각했다. 한국 소설 독자들이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연구했더니 '유명한 사람이 쓴 책을 좋아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재미있다고 읽는 게 아니라 유명해야 읽더라. 일단 유명해져야 했다. '상을 타서 유명해지자' 싶었다. 그래서 응모했다."
조선닷컴 인터뷰
장강명 작가의 '독자층 분석' 혹은 '소비자 공략법'은 냉소적이다. 재미있어야 읽는 게 아니고, 수상작이니까 읽는다니. 하지만 그게 어느 정도 사실인 걸 부인할 수가 없다. 작가의 이런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는 독자도 있을 텐데 그는 솔직하다. 짧지 않은 기자생활을 통해 '취재'한 내용에 자신이 있다는 말이기도 한 것 같다. 그리고 그의 작품 <댓글부대>는 그 자신감을 증명하듯 치밀하고 거침없이 달려간다. 특히 소설이 다 끝나고 등장하는 챕터 <출처에 대하여>에서 작가는 자신이 어떤 책과 인터넷 사이트를 참고했고 영감을 받았는지를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마치 논문 주석 달듯이 세세하게 언급되는 그 실제 자료들을 찾아보고 싶어 질 정도로 <댓글부대>는 재미있고 실용적이기까지 하다.
<댓글부대>를 읽던 중 뭔가 영감을 얻은 나는, 내가 종종 찾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들어가 작가가 소설을 통해 제시한 '커뮤니티 분란 일으키는 전략'대로 한 편의 글을 쓰고 댓글을 달아봤다. 그랬더니 정말 (찻잔 속 태풍에 불과했지만) 분란이 일어났다. 찬반이 120대 90으로 갈리는. 댓글에선 사람들이 싸웠다. 새로고침 할 때마다 쌓여가는 찬반 숫자와 댓글들을 보며 약간의 희열과 그보다 더 큰 무서움을 느꼈다. 왠지 진짜 선수들... 그런 댓글부대가 분명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
그러고 보니... 곧 총선이다.